상식에 맞지 않는 법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아 검경 블랙리스트에 오른 변호사가 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등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다. 나쁜 법,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 사회적 약자를 위해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낸 덕에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판례는 기득권의 논리일지도 모른다며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하는 게 일상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법원의 주인은 판사가 아니라 국민이다.”
진짜 주인인 국민에게 법원의 자리를 돌려놓기 위해 오늘도 그는 권리 쟁취를 위한, 상식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비합리적인 검찰의 결정과 법원의 판결에 눈 감지 않고 저항한다. 이렇게 출간된 『불량 판결문』은 부조리함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삶 자체다.
법조인으로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의도적 눈감기’의 카르텔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라 하셨는데요. 이런 마음을 먹은 계기와 함께 독자님들께 짧은 인사도 부탁 드립니다.
『불량 판결문』 작가 최정규입니다. 이렇게 <채널예스>를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보고 ‘투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텐데, 저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이고, 그저 제가 서 있는 현장에서 만나는 부조리에 대해 ‘꼼지락’ 수준의 소극적 저항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점심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시험에 저항하기 위해 김치김밥을 꺼내 먹은 일화를 책에 담았는데요. 그런 심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각 및 막말 판사, 법원의 불편한 민원 서비스 등 법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본문에 다수 등장합니다. ‘국민을 위한 법원’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점은 어떤 부분일까요?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약속 날짜를 미루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판사 한 명당 처리하는 사건 수가 많아 일정 시간 재판이 지연되는 건 국민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겠죠. 하지만 지금의 법원처럼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공판 기일을 앞두고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그저 재판부 사정으로 기일을 변경하는 건 정말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판례는 기득권의 논리일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게 된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어느 재벌총수가 수십 명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이끌고 재판에 참석했다는 뉴스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단순히 참석만 수십 명이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변호사들이 머리를 모아 논리를 개발하고 그 논리로 재판부를 설득해가는 것이죠. 저희 법률사무소도 노동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하며 대형 로펌과 맞설 때가 있는데요. 상대 입장에 선 제가 볼 때도 대형 로펌이 제출하는 서면이 정말 잘 쓰였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습니까? 변호사 한 명 선임하기가 어렵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기가 어렵습니다. 판사들도 그런 주장들을 처음 접하게 되니 ‘듣보잡’ 취급하기 마련이죠. 판사는 매우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들이지만,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결국 본인들이 자주 보는 논리에 익숙해지게 되고, 이런 내용이 결국 판결문에 반영된다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떠올랐죠.
“판례는 기득권의 논리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우리의 주장이 담긴 판결문이 아직까지 법원에서 생산되지 않았다고 해서 위축될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건 우리 주장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껏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니까요.
불량 판결에 대한 사례가 본문에 많이 나오는데, 직접 담당하셨던 사건 중 가장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직접 경험한 개별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담았는데요. 그것보다 저는 청구한 금액이 3,000만 원이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액사건’ 딱지를 붙이고 판결 이유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소액사건’의 문제가 가장 부조리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3,000만 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 않나요? 법원 마음대로 소액사건의 범위가 결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 판결의 이유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게 더 문제죠. 이렇게 판사가 마음대로 판결 이유를 생략하는 사건이 전체 민사사건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간 법원에서 ‘더’ 억울해지는 이런 부조리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죠. 그래서 여러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기획소송을 해볼 생각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제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춤’은 못 추더라도 제 삶에서 『불량 판결문』 ‘실천편’은 꼭 써 나가겠습니다.
법원의 주인은 국민!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활동 중이십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법원까지 문제를 가져가는 국민들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마음으로 법원을 찾아가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법원에서 판사가 내 사건을 소중하게 다뤄주기를 바랄 텐데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속이 상하실 겁니다.
제 경험상 여러 사람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재판과 그렇지 않은 재판에서 판사들의 집중도는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관심을 가지는 기자 100명이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바라봐주면 참 좋겠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우리가 의기소침하지 않아도 될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녹음속기 신청’입니다. 현재 법원에서는 증인신문 등 아주 제한적으로만 녹음속기가 이루어지고 대부분은 그냥 변론(공판)조서에 판사가 남기고 싶은 말만 남겨지고 있죠. 그래서 아주 가끔은 판사 입에서 “귀가 잘 안 들리십니까?”라는 막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절대 기록으로 남겨지지는 않죠.
현행법상 녹음속기신청은 당사자가 신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받아들여지도록 되어 있고, 녹취록 또는 녹음파일 제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리 신청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가시면 든든하실 겁니다. 기자 100명 방청의 효과, 바로 이 신청으로 가능합니다.
‘이 책은 함께 투쟁을 외치자는 그의 삶 자체다’, ‘이 책은 법원의 부조리들을 발견해낸 흔적이다’, ‘이 책은 끈질기고 세심한 한 변호사의 분투기다’ 등 추천사에 『불량 판결문』을 정의하는 문장들이 많았는데요. 작가님이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불량 판결문』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법원의 주인이 국민”임을 알리는 선언문이다. 국민의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민 스스로 쟁취한 것이죠. 사법개혁 또한 기다린다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 행세하는 판사들을 그저 불평할 게 아니라 우리가 주인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 이 책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는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법원에 가서 사건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방청석에 앉아 있다 보면, 앞 사건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소송을 하니 서투르겠죠. 그러다 보니 판사에게 일종의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저는 이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법원의 권위는 존중해야 하지만, 그 권위에 억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국민들이 법정에서 주눅 들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나홀로 법원에 가야 하는 국민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법원의 주인은 바로 당신!”이라는 진실을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최정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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