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리워하는 대상이 있다. 그리움이란 모든 인간이 이 땅에 오는 순간 가지고 태어나는 필연적인 것이므로 모두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그리움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그저 막연히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겠거니 여길 뿐이다.
『관계의 물리학』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유한 림태주 시인이 이번에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의 신간 『그리움의 문장들』은 일평생 그리움을 연구해 온 시인이 쓴 그리움에 대한 생태보고서이다. 살면서 무언가를 그리워해 본 이들과 오늘 하루 일터로 출근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겼다.
『관계의 물리학』 이후 약 3년 만에 『그리움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을 내셨어요. 특별히 ‘그리움’에 관해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물리적인 거리두기가 일상화됐잖아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따로따로 지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보고픔과 그리움이 커진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렸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게 됐고요. 사람들과 떨어져서 지내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연결돼 있고 다른 방식으로 교류하며 살고 있죠. 나는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콜레라 시대에 사랑이 있었듯이 코로나 시대에 그리움을 소환해 보고 싶었습니다.
책에서 스스로를 ‘그리움 학위 소지자’라고 칭하셨던데요.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듯합니다. 유독 그리움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는 체질적으로 식물성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강하고 역동적이고 경쟁적인 것보다는 연약하고 무용하고 무해하고 정적인 것에 끌리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그리움이나 연민이나 후회 같은 감정에서 인생을 더 많이 배우고 깨닫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그리움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책 내용 중에 “처음부터 가슴 뛰는 꿈은 없어. 그건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수사일 뿐이야.”라고 쓴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꿈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죠. 자신의 삶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요. 그래서 기적 같은 걸 바라게 되고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찾게 되고,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고 믿죠. 꿈이라는 영역에서도 두근두근 가슴 뛰는 일이 있다고 믿는 거죠.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그런 꿈꾸는 삶을 살라고 부추기고요. 사는 일, 혹은 사랑하는 일에는 좋고 나쁜 것들을 견디는 힘이 필요하거든요. 좋고 나쁜 일들의 반복이 우리의 삶이니까요. 좋은 것만, 가슴 뛰는 것만 찾아다닐 수도, 그것만을 사랑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어요. 견디는 마음이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죠.
꿈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 이 삶을 부지런히 반복하다 보면 좋아하게도 되고, 견디는 게 훨씬 부드러워지게도 되죠. 무슨 꽃이 좋을까 궁리하느라 봄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꽃씨를 뿌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요?
독자들의 리뷰나 구매평을 보면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답다는 평들이 많습니다.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은 독자들이 많을 텐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없을까요?
은유를 많이 사용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요. 또 오랫동안 시를 써와서 시적인 문장이 몸에 배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표현이 섬세하고 새로운 어휘가 많이 나오는 책을 골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도 방법이고요. 글 쓰는 시간대나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차분하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두고 쓰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뮤즈가 약속된 시간과 장소로 방문하기가 좋으니까요.
본인을 생계형 책바치라고 소개하셨어요. 책에서도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이 잘 드러나는데요. 출판사를 운영하시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영향력 있는 저자들을 놓치는 일이죠. 그리움과 기다림의 크기보다는 자본의 크기가 사람의 마음을 더 강력하게 끌어당기니까요. 그래도 세상의 한 귀퉁이를 그런 무용한 것들이 지탱하고 있어서 순환하는 거라고 믿으며 삽니다. 아직도 시스템이나 규모보다는 사람의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저자들도 많으니까요.
SNS에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계시던데요. 작가님에게 SNS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글을 메모하거나 저장해 두는 기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용도로도 씁니다. 또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탐색해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직업정신이 발동해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기도 하고, 유의미한 기획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SNS는 정말로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책이고 거대한 도서관입니다.
지금까지 출간하신 4권의 책이 모두 에세이인데요. 다른 분야의 책을 낼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직 하지 못한 얘기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요. 에세이는 틈나는 대로 계속 써나갈 생각입니다. 다른 집필 계획도 있는데요. 에세이스트로 내 글도 쓰고, 직업상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을 하다 보니 꽤 오랫동안 글쓰기 강의나 수업을 할 기회들이 많았어요. 쌓인 콘텐츠들이 얼추 책 한 권 분량이 됐고요. 나만의 글쓰기 비법이랄 것이 없겠지만, 작가로서 편집인으로서의 경험을 담아 조금은 색다른 글쓰기 책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림태주 문장수집가다. 아름다운 문장에 끌렸으나 언제부턴가 그리운 문장에 매료됐다. 사람 냄새가 나서였다. 그리움을 수집하러 바닷가 우체국에 가는 일이 잦다. 허탕 치는 날엔 직접 문장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리움의 연금술사가 되는 걸 일생의 각오로 삼고 있다. 생업은 책바치다. 남의 글을 고르고 가다듬어 책을 펴낸다. 밥을 벌기 위해 나무를 베는 참혹한 일에 종사한다. 저작권자의 원고지에서 쓸 만한 문장을 발견할 땐 견딜 만한데 그러지 못할 땐 맑은 술잔처럼 외롭다. 밉지만 삶에서 도망친 적은 아직 없다. 한때 시를 사랑했다. 시가 되지 못한 문장들을 모아 『그토록 붉은 사랑』을 엮었다. 사람 사이의 감정에 작용하는 은유를 모아 『관계의 물리학』을 펴냈다. 이 책 『그리움의 문장들』은 그리움에 미친 남자가 그리움이라는 종교를 세워 스스로 사제가 되고 교도가 되고 말씀이 된 이야기다. 자칫 빠져서 물들면 고해성사로도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 지상에 낙원은 없다. 오직 그립고 그리워하는 존재가 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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