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신지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이다. 일상에 밑줄을 긋는 마음으로 자주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적는다. 10년 동안 잡지 에디터로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작은 시골마을 외딴집에서 나고 자랐는데, 함께 놀 것이라고는 바깥으로 나가면 자연, 안으로 들어오면 책밖에 없었어요. 글을 깨친 뒤로부터 책이 제게는 친구이자 세상이었습니다. 책 표지만 열면 매번 새로운 세상, 낯선 세상, 내가 닿아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진다는 게 설레고 좋았어요. 외딴집에서 자란 탓인지 더 자라면, 어른이 되면 이 마을을 떠나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어린 시절엔 책이 그 마음을 달래주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제게는 떠나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서였던 것 같아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어렸을 때와 비슷한 이유인데요. 실제로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떠나고부터는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지만, 여행보다 산책을 좋아하게 된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책만 펼치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하나의 삶밖에 살 수 없는데, 책을 펼치면 여러 개의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는 기분이 들어요. 예닐곱 살 무렵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신기합니다. 피곤한 하루를 마감할 때, 비 오는 날 카페 창가에 앉아 있을 때, 책만 펼치면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사실이요. 무엇보다 책 읽는 시간이 제게는 회복의 시간이 되어줍니다. 바쁜 하루를 사는 동안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던 내가 비로소 '나'라는 사람으로 다시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내 시간, 내 감정, 내 생각을 가진 존재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동안 서서히 차오르는 충만함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가장 휴식이 되는 순간은 자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인데요. 산멍, 강멍, 바다멍처럼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에 사두고 아직 못 읽은 책으로는 기후 위기에 대해 다룬 『시간과 물에 대하여』와 동물권에 대한 에세이 『살리는 일』이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의 아도르노 강의를 담은 『상처로 숨쉬는 법』도 자기 전 몇 페이지씩 읽고 자려고 머리맡에 두었어요.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부제는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인데요. 프롤로그에 이런 문장을 썼어요. “어떤 하루의 끝에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한테 중요한 것들은 정작 따로 있는데,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불행해지고 만다는. 이런 마음을 내내 안고 살지 않으려면, 나한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잊지 않도록 어디든 적어두어야 했습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읽고 좋았던 책, 오래 간직하고 싶은 문장뿐만 아니라 내 삶의 풍경을 이루는 어떤 순간들이나 만남들, 내가 나로 살아서 느끼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잘 붙잡아두고 싶어졌어요. 기록을 이어가면서 마음이, 일상이 좀 더 평온해졌고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불안하고 매일이 고단하다면, 기록하는 습관을 추천 드리고 싶어요.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습니다. 책에 썼듯이 “시간이 쌓인 기록은 사실 그게 무엇이든 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란 건 원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니까요.”
정혜윤 저
살아가는 데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인에게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채집하는 것 또한 훌륭한 기록이겠지요. 저는 새해가 될 때마다 허튼 다짐 대신 이 책을 읽습니다. 새롭게 살고 싶어서요. 한 번뿐인 생을,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요.
김소영 저
‘어린이’ 에 대해 쓰인 가장 사려 깊고 정확한 책. 처음으로 부모가 된 친구, 조카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른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을 뿐인데 어째서 이리도 삶을 향한 뭉클한 용기와 애정이 차오르는 걸까요.
김애란 저
김애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20대를 보냈습니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생일선물로 저에게 이 소설집을 사주었습니다. 책에 실린 모든 얘기가 저의, 제 친구들의, 어쩌면 그 시절 모두의 20대 같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수록작인 <서른>은 아직도 강렬하고 묵직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금희 저
『제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소설 「조중균의 세계」 작가노트를 읽던 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런 마음을 지닌 이여서 이런 세계를 그리는구나’ 생각하며 속절없이 빠져들었지요. 이듬해 동일한 작품집에 연이어 실린 『너무 한낮의 연애』 작가노트는 또 얼마나 좋던지요. 그 두 작품이 실린 이 소설집은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저
이야기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소설 읽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던 책입니다. 종이책이란 물성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감탄하면서 보았어요. 10대의 저에게 『자기 앞의 생』 모모가 있었다면 20대의 저에게는 이 책 속의 오스카가 있었습니다. 모모와 오스카의 행복을 빌 때, 제 안의 무언가가 분명 자라났어요.
대니 그레고리 저
‘내가 지금까지 본다고 믿었던 것은 다 무엇일까?’ 본다고 보는 게 아니고, 살아있다고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가르쳐준 책입니다. 그때부터 일상을 찬찬히 또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기록하는 삶의 영감이 되어준 책이기도 합니다.
숀 탠 저
아끼는 그림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각별한 책이에요. 숀 탠이 그려내는 세계는 낯설고 기이하고 환상적이면서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선 감동을 줍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영화관에서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불이 켜지도록 좀처럼 일어날 수 없던 순간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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