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교양』이란 이름의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용택: 어느 대학이든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으로 나눠서 교육하잖아요. 만약 전공교육만 실시한다면 직업훈련기관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대학마다 교양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본 소양이기 때문입니다. 교양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그런 교양에 ‘생존’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단어들 중에서 그 역사와 의미를 꼭 알았으면 하는 단어를 선정했다는 뜻입니다. 목차를 보면 다들 아는 단어들이 많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단어들마다 그 속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깊은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생존교양』은 32년 차 기자와 12년 차 기자가 의기투합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 두 분의 콜라보가 이루어진 건가요?
이용택: 12년 전, 취재 부장과 신입 기자로 같은 부서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김경미 기자가 처음 기자 생활을 할 때 저를 만나 글 쓰는 방법과 취재 요령 등을 배우게 됐지요. 하지만 청출어람이라고 요즘은 김 기자가 더 뛰어나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합니다.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한 것은 2~3년밖에 안 되지만 지금도 가장 마음이 잘 맞는 후배라고 생각합니다. 『생존교양』을 쓰기로 결심한 후 김 기자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것도 그래서입니다.
김경미: 대선배의 제안이니 저로서는 그저 감사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못 쓴다고 혼나지는 않을까, 부담도 되긴 했지만 제안 자체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 제가 비교적 젊고 여기자이니 단어 선정이나 글의 시각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기자라는 전문직은 드라마, 영화 등에서 그동안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자 또한 월급 받는 직장인이잖아요. 직장인으로서의 기자의 하루, 월급쟁이의 소회 등등 전문직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기자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경미: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소개되는 기자는 ‘권력에 결탁하는 나쁜 기자’ 혹은 ‘정의를 추구하는 민완 기자’ 두 가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서겠죠. 하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그야말로 ‘프로페셔널’ 글쟁이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어떠한 주제와 소재에 대해서도 데드라인(마감시간)에 맞춰 읽을 만한 글을 써내는 사람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도 비슷한 부류라고 볼 수 있지만 저희는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도 그럴싸하게 써낸다는 점에서 좀 더 ‘급여 글쟁이’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세간에서 생각하는 기자란 직업은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업무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온라인 뉴스 시장이 커지고, 속보 경쟁도 치열해져서 하루에도 적게는 한두 꼭지, 많이는 서너 꼭지의 기사를 써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지만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사수하기에는 시간도, 기력도 많이 부족한 상태죠. 요즘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런 팍팍한 업무 환경 속에서 불거진 부작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절룩거려도 내일은 괜찮은 기사를 쓸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거죠.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어려운 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요약, 설명해주는 서머리 콘텐츠(summary contents)가 유행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는 물론이고 이제 책과 TV 프로그램도 그 열풍에 합류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기자의 시각이든, 또는 한 개인의 시각이든 서머리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경미: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 편하라고 지식을 떠먹여 주는 느낌인 건데요.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머리로 충분히 소화될 수 있는 지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지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어떤 경제·사회·정치 신조어 등은 그저 그 단어의 뜻풀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철학에서 탄생한 개념어라든가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표현 등은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된 용법을 쓰기 위해 깊이 있는 접근을 해야 하겠죠. 그걸 구분해내기 위해서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용택: 서머리 콘텐츠만 보다 보면 그 저변에 담겨 있는 많은 역사와 사연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생존교양』이 단순 서머리 콘텐츠 서적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어, 단어마다 다양한 역사적 의미와 사건, 유사 사례 등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IT 기술의 발달로 한두 번의 검색만으로도 웬만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교양을 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러기 위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신 점이 있을까요?
이용택: 교양이나 인문학 서적은 당장 돈이 안 되는 학문일지라도 삶이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자존감을 되찾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삶이 피폐해지고 경쟁이 심화될수록 인문학 서적의 필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뿐 아니라 IT 기술이나 4차 산업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것이니만큼 인간의 삶이 녹아 있는 인문학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할 것으로 봅니다.
김경미: 저는 IT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위키피디아를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 링크를 타고 가다 보면 끝없는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죠. 그런데 위키피디아가 쏟아내는 지식은 그야말로 너무도 방대해 자칫 길을 잃기도 쉽습니다. 즉, 이런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찾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종의 기초체력 같은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기초지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인터넷보다는 책이 낫습니다. 인터넷 세상에 정신없이 흩뿌려져 있는 지식의 정수만을 골라 담아놓은 것이 책입니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뒤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효율적입니다. 게다가 책 속 정보는 인터넷 속 정보보다 잘 정제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팩트 체크를 한번 거친 정보들이랄까요. 지금 설명에 딱 맞는 책이 바로 『생존교양』이네요. (웃음)
책을 쓰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용택: 하루에 한 단어씩 그 단어의 역사와 의미를 쓰기로 결심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도 많았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담을 참고자료와 사례가 많지 않아 몇 줄 써놓고 며칠을 그냥 보낸 적도 많습니다. 또 글을 썼는데 재미도 없고 잘 쓰지 못한 것 같아 버린 원고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왜 이 고생을 하지’란 생각에 그냥 접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죠. 재미있던 기억은 매트릭스란 단어를 쓸 때입니다. 관련 서적과 논문을 찾아봤지만 매트릭스가 인쇄기판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관련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글 쓰는 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쓰면 독자는 더 이해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나름 이해를 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습니다.
김경미: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웃음) 사실 처음에는 부담 없이 시작했는데 막상 글을 써보니 한 꼭지를 쓰는 데도 최소 반나절이 꼬박 걸렸습니다. 잘 안 풀리면 하루 온종일 집중해야 했고요. 그러니 주말, 연휴, 휴가 등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올해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강제 집콕 생활을 했던 것도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면, 꼭지당 원고지 8매 정도로 분량을 맞췄는데 제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끽해야 4매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지식에 다른 이의 지식을 채우고 덧대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됐는데요. 그 덕분에 지난 여름과 가을, 집중적으로 독서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의 수확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독자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이용택 : 『생존교양』을 쓰면서 적지 않은 페이지에 한쪽 측면이 아니라 양쪽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부엉이는 낮에는 장님이지만 ‘밤의 제왕’입니다. 밤에 생활하도록 창조됐지요. 만약 장님이라고 비아냥댄다면 이는 인간의 시각일 뿐입니다. 어느 쪽에서 바라봐야 맞을까요. 부엉이의 시각에서 보면 밤의 제왕입니다. 어느 것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다른 쪽에서 바라보는 고민을 먼저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경미: 즐겁게 읽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이용택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32년간 서울경제신문에 몸담으면서 최연소·최장수 취재부장을 지냈다. 그 덕분에 기업을 취재하는 산업부에서부터 증권부·부동산부·금융부·사회부·국제부·생활산업부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IMF 금융위기 같은 역사적 사건 현장을 체험하고 내로라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이 내용들을 30년 넘게 거의 매일 기록하며 소중한 자산으로 보관 중이다. 이번에 출간한 『생존교양』은 그 기록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김경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2월 서울경제신문에 입사했다. 부동산부에서 수습기자를 시작, 사회부·문화부·바이오IT부·생활산업부를 짧고 굵게 거쳤다. 현재는 증권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와중에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을 졸업했고, 『퇴근길 인문학 수업』 집필에도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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