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2016년, 김창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간'의 한 소절이다. 누군가는 생을 아직 맞이하지도 않았을 기나긴 시간 동안 바라본 삶, 그 속에서 부유하던 사랑과 그리움을 녹여낸다.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37년 만의 솔로 정규 앨범이다. 쓰리고 아름다운 '시간의 문'이 열렸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노래한다. 그 시선은 건조하면서도 따뜻하고, 단출하면서도 세련됐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낮게 울리는 보컬이 앨범 전반을 담담하게 이끈다. 삶을 한 바퀴 훑으며 뒤편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곡 '시간'의 내레이션은 배우로서의 김창완이 감상을 돕는다. 노래와는 또 다른 운율감이 마음에 닿는다. 소박하고도 정갈한 사운드는 구어로 꾸며진 노랫말의 자연스러움과 맞물려 지난 세월을 관조한다.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청춘을 위한 사랑의 지침서다.
앨범의 화자는 철저히 김창완 자신이거나, 혹은 동시대의 노년이다. '이제야 보이네'는 삶의 절반 이상을 살아낸 뒤 바라보는 부모님의 죽음을 초연히 노래한다. <기타가 있는 수필>의 '꿈' 속 왕자와 예쁜 공주가 현현(顯現)했다고 밝힌 '노인의 벤치'는 우상이었던 여인을 마주했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마이너한 기타 연주와 담담히 읊조리는 김창완의 목소리는 결코 설렘이나 순수함이 아니다. 노년의 길목에는 쓸쓸함이 주된 정서로 자리 잡는다.
'먼길'과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는 고립과 외로움으로 덮여있는 2020년의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냉정한 세상 끝에서 누구 하나 도움도 없이 / 아픔은 내가 지고 갈게 너는 행복해라(먼길)'라는 가사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랑한다고 / 당신이 잠든 밤에 혼자서 기도했어요'라는 가사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토닥여준다.
코로나 시대 속 활동의 여백이 탄생케 한 이 앨범은 '시간'이라는 공통된 부제로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통찰, 오랜 생을 살고 나서야 보이는 사랑의 귀중함, 처연함이 담겨있다. 김창완의 시간의 문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사랑과 이별을 이으며, 기쁨과 슬픔을 잇는다. 노년이 노래하는 청춘과 인생의 평온이 이 앨범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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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