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그날 현성이와 읽은 책은 『시간이 흐르면』이었다. 윤곽이 뚜렷한 그림과 간결한 글로 '시간이 흐르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시간이 흐르면,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지". 그리고 이어서 신발 끈을 묶는 어린이 모습이 등장한다.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라는 문장과 함께. 어쩐지 뭉클해져서 현성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나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히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김소영 저자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소영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어린이들과 함께 읽고 말하고 쓰고 만나는 독서 선생님입니다. 어린이책을 만들고, 독서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책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쓰셨고요.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를 환대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출간하셨습니다. 김소영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어린이라는 세계』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기다렸어요. 특히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긴 칼럼 있잖아요. 그게 매수가 어느 정도 되는 칼럼이었죠?
김소영 : ‘어린이 가까이’는 한 회당 원고지 25매 분량입니다.
김하나 : 상당히 긴 분량인데, 연재 텀이 어떻게 됐었죠?
김소영 : 4주에 한 번씩 실리고 있어요.
김하나 : 지금도 연재를 하시는 거죠?
김소영 : 네, 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4주에 한 번씩 ‘어린이 가까이’라는 칼럼이 연재될 때마다 제 주변이 들썩들썩했어요. ‘이번 글도 너무 좋아서 쓰러지겠다’ 이런 반응들이 워낙 많았는데, 그 글들도 묶이고 이전에 쓰셨던 여러 글들도 묶인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책을 받아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김소영 : 일단은 ‘이 책이 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서 너무너무 기뻤고요.
김하나 : 보세요, (표지에) 본인 성함이 이렇게 박혀 있습니다.
김소영 : 금박입니다, 여러분(웃음).
김하나 : 금박으로 박혀 있는(웃음).
김소영 : 그 전에 편집자님께서 표지 이미지를 보내주셨을 때 박이 들어갈 거라고 말씀은 해주셨는데, 책이라는 것을 실물로 볼 때의 감회가 있잖아요. 그리고 표지 그림도 제가 파일로 봤을 때보다 손에 잡았을 때 훨씬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너무 좋았고요. 이전에 냈던 두 권의 책도 제 나름의 관점이 드러나도록 열심히 썼고 물론 사랑하지만, 에세이는 처음 내는 거여서 마치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저 자신이 너무 많이 드러났을까 봐 걱정도 들고. 오히려 책을 내고 나서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작가님 자신이) 너무 많이 드러났습니다(웃음). 그래서 너무 좋아요!
김소영 : 다행입니다(웃음).
김하나 : 책을 받아들고, 제가 기대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책의 만듦새가 너무 좋고요. 디자인도 너무 좋고, 아까 강조하신 대로 금박인 것도 너무 예쁘고요. 임진아 작가님의 그림이라든가 이 책의 두께, 무게, 모든 것이 ‘이 책은 너무 좋다’ 싶었는데요. 읽어 보고서 땅을 쳤어요. 제가 요새 ‘올해의 책’ 이런 걸 많이 선정을 하고 어디에서 보내달라고 하면 여러 책을 선정해서 보내기도 하는데, 그걸 보내자마자 이 책이 나온 거예요. 만약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나왔으면 그런 의뢰가 있었을 때 무조건 『어린이라는 세계』를 제일 처음에 써놓고 다른 책을 선정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올해의 책’입니다.
김소영 : 감사합니다!
김하나 : 이제 12월이지 않습니까? 12월에 선물할 데가 많잖아요. 저는 이 책으로 다 통일하기로 했어요. 어린이 관련 책이라고 하면 어린이와 함께 사는 어른들이라든가 아니면 어린이 관련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 또는 어린이에게 선물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쓸 때 이 책을 읽을 사람을 상정하셨어요?
김소영 : 일단은, 너무 당연하게도, 맨 처음에 쓸 때는 제가 읽으려고 썼습니다(웃음). 제가 어린이 이야기를 양육의 입장이나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그냥 어린이라는 존재, 어린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데 그런 책이 없어서 제가 썼고요(웃음). 사실은 쓰면서 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저는 성공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물론 어린이를 실제로 돌보고 가르치시는 어린이 주변의 어른들이 읽어주시는 것도 좋죠. 그러면 같이 의견도 보탤 수 있고 새로운 어린이 이야기, 제가 읽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점은 아주 환영하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평소에 나는 어린이랑 전혀 관련이 없다, 나는 어린이를 만날 일이 없다’, 혹은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나는 어린이를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서 ‘나도 어렸을 때 이랬지’ 하는 걸 떠올리셔도 좋고 ‘그러고 보니까 우리 옆집에 어린이가 있었지’ 이런 걸 한 번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욕심은, 연말이기도 하고 특히 새해에는 여기저기에서 어린이 어린이 하는 말이 많이 들리면 좋겠고, 어린이 이야기를 곳곳에 심어놓고 싶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하나 : 『어린 왕자』의 서문에 생텍쥐페리가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아이였다’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 책에도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우리가 어린이라는 존재를 ‘또 다른 존재’,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전의 미흡한 존재’, ‘준비 중인 단계’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기도 하고 그 어린이가 우리 안에 있기도 하고 그리고 어린이가 현재 우리 주위에 늘 있잖아요. (이 책이) 그 어린이들의 한 세계를 열어주는 엄청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선물을 하고 싶고, 누구에게나 선물을 해도 좋을 것이 우리는 한때 어린이였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책이 너무 좋은 게요,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른입니다. 어른스러워서 좋고요. 어린이를 품고 있는 어른이라서 좋아요.
김소영 : 제가 이런 이야기 들을 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담담하게 들으라고 김하나 작가님한테 배웠는데요. 차마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고 듣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저는 아직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견뎌내셔야 됩니다. 견디세요(웃음).
김소영 : 감사합니다, 그렇게 읽어주셔서.
김하나 : 아까 (칼럼 ‘어린이 가까이’가) 25매라고 하셨는데, 쓰기에 꽤나 부담스러운 분량이잖아요. 일간지 지면이라고 하면 더더욱 부담스럽기도 하고. 의뢰를 받으셨을 때 수락하기 전에 망설이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어요?
김소영 : 맨 처음에 기자님께서 제안을 주셨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어린이 이야기가 한 군데라도 더 나오면 좋겠다’, ‘어린이라는 단어가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건 늘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쓰기로 했는데요. (연재 전에) 제가 블로그에 썼던 글들은 15~20매 정도가 되거든요. 그런데 원고지 25매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죠. 20매 이전과 이후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된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게 사실은 (경향신문) 토요판에 나오면 5단 광고를 빼면 한 면을 다 차지하는 글이에요. 어떤 선생님께서 저의 걱정을 들으시고 ‘이게 돈으로 치면 얼마짜리 광고인지 모른다, 어린이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부족한데 어린이 이야기를 광고한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많이 써라’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한 번씩 글이 막힐 때나 약간 부담이 될 때 그 말씀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김하나 : 그 말씀은 누가 해주셨나요?
김소영 :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김하나 : 김지은 선생님이 정말 많은 분들, 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많은 분들에게 정말 힘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특히나 김소영 작가님께는 그런 말씀이 더 필요한 게 ‘내가 내 이야기를 꺼내놓을 명분이 세상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김지은 선생님과 함께, 이렇게 김소영이라는 세계를 열어주신 것이 이전 책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면 너무 좋지 않을까 싶고요.
김소영 : 이전에는 독서 교육이라는 것을 공부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과 같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실용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성실하게 쓴다는 마음으로 썼다면, 이번 책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왜 어린이를 만나고 있고 이 이야기를 왜 자꾸 하고 싶은지를 떠올리게 됐어요. (김하나) 작가님이 점쟁이처럼 제 마음을 꿰뚫어 보셨는데(웃음), 계속 자문을 하는 편이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발행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양육자도 아니고 학교에서 어린이를 직접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 저 나름의 소명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은 성실하게 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하고 힘을 내려고 하고 있는데요. 오늘 작가님께 말씀을 들으니까, 나중에 또 쓰다가 회의가 들 때 마음이 약해질 때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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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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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