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우리네 삶.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만남을 피해야 하는 언택트 시대를 살아내느라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더 거리를 두고 더 멀리하며 서로의 차가워진 가슴을 닫느라 더 단단히 옷을 여민다. 삶이 정지된 것 같은 코로나 블루 시대는 하루하루 입을 막고 숨쉬기도 겨워하며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거나 혹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늘 불안감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내고 있기에 조용한 무리 속에서 혼자 덩그러니 곪아 아프고 우울한 슬픔의 사람들이 더 자주 목격되고 선명하게 드러난 한 해이기도 하다. 이방인으로 독일에 혼자 사는 멍작가 또한 이 시대의 혼란이 너무 외롭고 크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작은 여유가 필요하다”고.
독일 쾰른에 사는 그녀의 사소한 일상은 참으로 편하고 따뜻하다. 멍작가의 바다 건너의 일상과 그래도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의 추억들,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에는 오늘을 버틸 위로를 준다.
에세이 『나만 그랬던 게 아냐』를 통해 함께 공감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작은 여유와 행복을 선물하는 멍작가를 만나보자.
멍작가님 첫 번째 책은 퇴사하면서 유럽에서 지낸 이야기를 다룬 『잘할 거예요, 어디서든』이었잖아요. 그 후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이번 에세이 『나만 그랬던 게 아냐』는 어떤 책인가요?
언젠가 한번쯤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워낙 맛있는 음식이나 술 한잔하는 걸 즐기는 데다 무엇보다 살아가면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반짝이는 즐거움의 발견’이에요. 너무 소박해서 조금은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게 제 일상 안의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썼어요. 앞으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우리를 버티게 해줄 힘은 바로 이런 단순하고 사사로운 기억들일 테니까요.
사실 코로나 시기라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혹시 여행을 대신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루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다들 뭔가 특별히 더 재미나고 신나게 사는 것같이 느껴져도 실상은 모두가 매일매일이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 독일은 코로나 때문에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는 것도 안 되고 만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어요. 자칫하면 한없이 어두운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기 쉬운데 이럴 때일수록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올해 여름 집 한구석에 작은 텐트를 펼쳐 담요를 앞에 깔고 화분들을 모아 놓고는 가스버너에 냄비를 올리고 라면을 끓여 먹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치우기도 귀찮게 굳이 왜 그런 일을 벌이냐 할 수도 있지만 막상 하고 나면 캠핑을 떠난 느낌도 나면서 또 어렸을 때 했던 이불 놀이같이 왠지 아늑한 기분이 들거든요.
요즘은 저녁에 보들보들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노래를 틀어놓고 따듯한 카페모카를 직접 만들어 먹는 순간을 좋아해요. 그러면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귀여운 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맞추기도 하고요.
책에 소재가 된 에피소드들은 모두 그때그때 메모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쓸 때 기억을 더듬어 끄집어내서 쓰는 편인가요?
뭔가 글로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면 웬만하면 곧장 휴대폰 메모장에 간단하게라도 적어 놓아요. 대부분의 글이 제가 경험한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라 그때 느꼈던 생각이나 재미있었던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는 편이죠. 한 번씩 잠을 못 자고 뒤척일 때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불을 켜고 메모해야 성이 풀려요. 이런 메모 덕분에 『나만 그랬던 게 아냐』는 생각보다 작업이 수월했던 것 같아요.
책에 음식 레시피가 종종 나오는데, 평소 요리를 즐겨하시는 편인가요?
한국에 살 때만 해도 고작 계란프라이, 아니면 햄을 굽거나 라면을 끓이는 정도밖에 못 했어요. 심지어 나는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유럽에 와서 살면서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양손에 프라이팬과 주걱을 쥐게 된 거죠. 이틀 이상 밥을 먹지 못하면 못 견디는 토종 한국인 식성인 데다 한식이 먹고 싶지만 외국에 있는 한국음식점들은 너무 비싸거나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 보니 맛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엄마에게 여쭤보거나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 그대로 따라 하면서 요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웬만한 음식은 기세 있게 눈대중으로도 간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어요.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 책에서도 소개한 맵고 짠맛이 특화된 멍작가표 라면과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그리고 참치고추장찌개입니다.
작가님 책을 읽으면 글이나 그림에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되는 그런 따듯함이 느껴져요. 원래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학창 시절엔 자진해서 회장 선거에 나가 직접 선거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외향적이었어요. 지금 친구들이 들으면 전혀 믿지 않겠지만요. 그러다 이십 대가 되면서 조금씩 낯을 가리게 되고 첫인상이 차갑다는 말도 듣곤 했어요. 처음 유럽에 왔을 땐 적극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에 스스로 엄청 밝게 보이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하면 그땐 왜 그렇게 나 자신을 힘들게 괴롭혔는지 모르겠지만요.
지금은 한 번씩 마음의 결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집순이가 되었어요. 예전엔 이런 내 모습을 애써 부정하며 일부러 약속을 잡고 어색한 모임들을 찾아다녔어요. 지금은 아, 나란 사람은 이럴 때 제일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하는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것도 내 성격의 한 부분이고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도 전부 제 모습이니까요.
독일에 계신 작가님의 일상을 보면 사회의 시선이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럽거든요. 그렇게 살기로 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저도 한국에서 태어나 쭉 자랐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정형화된 삶을 좇느라 바빴어요. 대학을 가고 졸업 후엔 포스트잇을 만드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해서 일했죠. 그러다 금융위기가 터졌고 같이 일하던 몇몇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어요. 매일 실적 압박에 야근을 반복하다가 큰맘 먹고 떠난 일주일간의 스페인 여행이 제 인생을 바꿔놓을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자유롭고 행복했던 그곳으로 떠나야겠단 생각이 정말 간절했거든요.
그렇게 유럽에서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세상에는 한 길만이 아닌, 너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특히 지금 당장은 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지만 사실 난 뮤지션이야, 난 작가야 하고 당당하게 본인을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직도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할 때면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할지 망설이는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멍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멀리 돌아서 지금에야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은 다양한 분야들에 관심도 많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느 한 틀 안에 두고 아, 난 이 정도의 일을 하는 사람이야 하고 단정 짓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만들고 외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온라인 매거진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 1월이 창간호라 지금 정신없이 일하면서도 많이 설레며 작업하는 중입니다.
*멍작가 (강지명) 스물아홉의 여름,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를 만들던 회사에서의 5년차 마케터 생활을 접고 훌쩍 유럽으로 떠났던 그날의 뜨거웠던 햇살을 잊지 못한다. 유럽 곳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재치 있는 글과 유쾌한 그림으로 기록하여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은 독일 서쪽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지만 자잘한 욕심이 있어 이런저런 재밌는 걸 해보려고 분투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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