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대신 언니를 믿는 세상의 이야기
『언니 믿지?』 김서령, 송순진, 최예지 외 5인 저자 인터뷰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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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시리즈를 꾸준히 내고 있는 폴앤니나가 여성 작가들의 단편선 『언니 믿지?』를 출간했다. <여성연대>를 테마로 한 이 단편선에는 김서령, 송순진, 최예지 등 8인의 여성 작가가 참여했다. 

『언니 믿지?』를 기획한 소설가 김서령은 처음 일곱 명의 작가들을 섭외했지만 한 편 한 편 도착하는 연대의 소설을 보며 마음이 들썩거려, 결국 자신도 그사이에 끼고 말았다. 그래서 책에는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고, 애초 기획보다 더 두꺼워졌다. 김서령 소설가가 나머지 일곱 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기자에서 청소년소설 작가로, 이제 소설가로 세 번째 변신을 하셨어요. 최순영이라는 매력적인 주인공과 함께요. 서른여덟 살 최순영의 삶을 그리는 연작소설 중 그 첫 번째 단편이라고 하는데, 뭔가 찌질찌질하면서도 귀엽고 발랄한 인물이에요. 최순영에 대한 소개를 작가님께 직접 듣고 싶어요.

송순진: <할머니는 엑소시스트>의 최순영은 제 30대 시절의 일부이자 2020년을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한국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있고, 또 너무 흔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죠.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매일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늘 열심히 고민하고 계산하는 인물이에요. 사실은 매일 머릿속에 뜬구름 잡는 엉뚱한 생각이 떠돌기 때문에 부러 세속적인 고민을 더욱 열심히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정체가 엑소시스트라는 것을 순영이만 알게 되는 것도, 순영이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순영이를 찌질하지만 귀엽고 발랄하게 봐주신다면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첫 소설집 『애비로드』에서도 여성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셨어요. 소소하지만 다정한 연대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작가님에게 있어 여성들의 연대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요. 

최예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가 있어요. 내놓고 떠들면 크게 경을 칠 얘기도 전부 털어놓게 되는데, 되게 묵묵히 들어줘요. 필요하면 욕도 같이 해주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제가 한풀 가라앉은 걸 확인하고 나면, 거의 반드시…… 그걸 진짜 웃긴 농담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저를 막 조롱해요. 상호 합의에 따라 ‘조롱기’의 도래를 늦출 수는 있지만, 어쨌든 그 시기가 반드시 오죠. 그러니까 그들이 제 인생의 일부를 함께 겪는 대가로 저는 항상…… 약간의 수치를 감내해야 하고…… 결국에는 저도 웃기니까 웃게 되는데요. 저는 이게 연대의 핵심이 아닐까 해요. 세상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많지 않잖아요. 그래도 같이 웃어줄 수는 있거든요. 그게 끝내 웃고 말 일이 되기까지 긴 고비를 함께 넘는 거죠. 그런 웃음에는 신뢰가 담겨있어요. 제가 드디어 농담의 시선을 빌려 지난 일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는, 적당히 안전한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믿음요. 

아주 흔한, 두 달에 한 번쯤 만나는 대학 동기 같은 주인공 한여름이 등장해요. 결혼을 할 생각도 없고, 아기를 낳을 생각도 없으면서, 난소가 늙고 있다는 검진 결과에 떠밀려 난자동결을 결심하는 재미난 인물이에요. 한여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어요?

김지원: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남 같지 않은 사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내 친구 여름이’가 현실의 저만큼이나 나사 빠진 구석이 많아서, 저도 소설을 쓰며 때때로 당황했어요. 하지만 뭐 어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름이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돈 없고 든든한 보호자도 없이 세상 살기 힘든 건 팩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빡세게’ 달려보았다면 그거 참 괜찮은 삶 아닌가요. 평범한 듯 조금은 모자란 여름이를 통해, 당장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나와 너’를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여성을 이야기할 때, ‘엄마’를 빼놓기가 참 어려워요. 가장 가깝지만 가장 알 수 없었고, 가장 비밀이 없지만 가장 비밀이 많을 수도 있는 사람. <우리들의 방콕 모임>은 그런 ‘엄마’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소설, 혹시 엄마에게 보여드렸나요? 어떠셨어요?

이명제: 저는 떨렸고, 엄마는 눈물이 조금 났대요. 둘 다 담담한 척은 했지만요. 이 소설의 첫 독자가 엄마였어요. 이면지에 인쇄한 초고부터 버전 별로 다 보셨거든요. 엄마가 고스란히 드러난 부분에서는 마음이 울렁거렸다는데, 결론은 ‘이건 소설이지, 나 아니야’라고 하셨어요. 나중에는 엄마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함께 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들의’ 방콕 모임이 되었어요. 방콕 모임은 엄마가 오래 이어온 모임인데요, 그 이름이 소설이 된 것이 재미났는지 다른 모임의 이름도 줄줄 읊어 주셔서, 모임별로 소설을 하나씩 써야 하나, 잠시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는 접어두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가끔은 그런 부분을 펼쳐보세요. 엄마의 다른 모습이 보일지도 몰라요. 물론, 용기가 조금 필요한 일이기는 합니다. 

전작 『엄마 나무를 찾아요』도, 그리고 곧 출간될 장편소설 『5년 후』도 사실 파격적인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이에요. 『언니 믿지?』에 실린 <한 사진관>도 그렇고요. 성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엄마가 제 손으로 신고한다는 설정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이 소설의 시작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정여랑: 실은 엄청 단순하고 뜬금없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단편선의 주제를 받고서 한참 끙끙대던 어느 날이었는데, 버스 안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거든요. 신호 대기 중이라 정차하고 있는 버스 안이었는데, 창밖에 보인 어떤 상가 1층에 <정 사진관>이라는 간판이 있었어요. 같은 상가의 다른 간판들은 다 굴림체, 돋움체, 이런 글자체인데 까만 바탕에 흰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박힌 그 사진관 간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대기 신호가 다 지나가도록 그 간판을 보고 있으면서 이 단편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정했죠. 

그리고 어떤 부당함이나 범죄를 목격했을 때 죄책감이나 동정심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선에서 조금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스스로와 공동체를 낫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마치 판타지 같지만 정말 많은 분이 이 순간에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거든요. 그런 시작이 거창한 정의감이나 대단한 지식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가 후기에서 이제 소설가라는 부캐가 생겨서 행복하단 말씀을 하셨어요. 일하는 여성으로 살면서, 소설 쓰는 부캐를 따로 갖는 것. 흥미진진합니다. 이제 시작이긴 합니다만 부캐로서의 소설가, 어때요? 할 만한가요?

윤화진: 모든 일에 기쁨과 고통이 따르듯이, 해야할 일의 부담이 두 배가 된 느낌과 어딘가에 세컨하우스가 생긴 느낌 사이를 오락가락합니다. 막막한 시도가 어쨌든 결과물로 나오고 한번 완성의 경험을 하고보니, 이후에 더 잘해야겠다 잘 써야겠다 마음을 단단히 다집니다. 중요한 본캐의 일도 있으니 다음 소설까지의 시간은 더 오래 걸리고 느리게 진행되겠지만, 주머니 속 이야기를 굴려서 또 언젠가 몰아치며 쏟아낼 시간을 마주하리라는 기대는 항상 설레네요.

가만가만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소설 속 시선이 따스했어요. 공감과 안쓰러움이 공존했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쓰실 소설이 한층 궁금해졌고요. 어떤 소설 준비하고 계세요?

임혜연: 소설은 무언가 무겁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오히려 어둡게 만들기도 했고요. 사실, 중요한 메시지는 대단한 사회적 이슈뿐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도 많이 숨어있습니다. 세상에 존중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고, ‘당연히 희생’해야 할 사람도 없어요. 단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뒤로 밀려나 제 목소리를 못내는 것뿐이라 생각해요. 우연히 만난 소설에서, 나와 비슷한 인물이 속 시원한 이야기로 갈증을 덜어준다면 얼마나 후련할까요? 그런 이야기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담담하게 독자와 저를 함께 위로하는 뜨거운 글, 상처를 토로하고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기이면 좋겠어요. 그런 소설을 계속 생각 중입니다.



*김서령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가가 되었다. 그동안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티타티타』 『어디로 갈까요』 등의 소설과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등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송순진

13년 경력의 영화기자. 함께 쓴 청소년소설 『열정페이는 개나 줘』를 출간하며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엑소시스트>는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싱글앨범이다. 


*최예지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같은 작품으로 현진건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과 2019년에 테마 단편선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와 『동네가 새파래질 때까지 밤의 산책을』에 참여했으며, 2020년 소설집 『애비로드』를 출간했다. 


*김지원

소설을 쓰겠다고 퇴사를 했고 지금은 글 쓰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이명제

일상에서도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어린이 책 만드는 회사에 오래 다녔다. 


*정여랑

지금은 어린이 책을 주로 기획하고 제작 중이며, 글쓰기, 번역, 디자인 등을 하는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2019년에는 위키드위키 출판사의 다양성 시리즈 ‘세상의 많고 다른’ 첫 번째 테마인 가족을 주제로 『엄마 나무를 찾아요』를 출간했다. 2020년 폴앤니나 출판사의 테마단편선 『언니 믿지?』에 참여했다. 


*윤화진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줄곧 온라인 서비스 기획을 했다. 카카오, SKT, 11번가, 29CM CSO를 거쳐 안다르 서비스기획총괄 이사를 맡고 있다. 


*임혜연

고려대 사회학과에서 이데올로기를 공부하고 졸업 후 상품기획자로 일했으며, 2020년에 산문집 『어느 날 누군가 내 마음에 노크를』을 출간했다. 지금은 아이와 개 한마리를 키우며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탐구 중이다.




언니 믿지?
언니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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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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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