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0월 우수상 - 스몰토크를 위한 넷플릭스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나름의 요령까지 체득했다. 대화가 끊긴다 싶을 때 화제를 전환하는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것.
글ㆍ사진 파주(나도, 에세이스트)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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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퇴사를 선언한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키보드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상사 앞에 멈춰 섰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했던 여유로운 모습 그대로 ‘저 퇴사하겠습니다’를 외쳤다. 아니, 계획은 분명 그랬는데 눈이 마주치자 렉이 걸린 컴퓨터 마냥 떠듬거리고 말았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가까스로 성공했고, 둘 사이로 끔찍한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건 상사 쪽이었다.

“무슨 퇴사한다는 말을 ‘점심에 뭐 먹을까요?’라는 말처럼 하냐?”

답변을 미루는 동시에 위트가 섞인 답변. 역시나 고단수였다. 그날 점심 상사와 백반정식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몹시 민망하면서도 서먹한 자리였는데 그중에서도 본론을 꺼내 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 말 한마디면 미련 없이 탈출할 거라 생각했건만, 퇴사의 이유를 꽤나 소상히 설명해야 했다.

“저는 내향적이라서 사람을 만나는 게 죽을 만큼 힘들어요. 아무래도 적성이 아닌가 봐요. 그럼 안녕히...”

“사람 만나는 건 나도 힘들어. 계속 하다 보면 버틸 만해.”

능력 부족을 자책하며 밝힌 퇴사 의사는 경험 부족을 근거로 반려됐다. 몇 차례의 말씨름 끝에 상사는 이내 결심한 듯 그간 고생했다고 말하며 뜬금없이 당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다음 회사에선 점심식사는 꼭 팀원들이랑 같이 먹어라.”

지난 회사에서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어색한 사이에 억지로 말을 섞으려다 보니 스몰토크마저 자주 방향을 엇나갔다. 간신히 꺼낸 수십 발의 화두까지 무용으로 돌아가 버리니 대화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의도적으로 회사 사람들과의 사적인 시간을 회피하게 됐다. 점심시간이 특히 고역이었다. 밥때가 다가올 참이면 ‘도통 입맛이 없어서’라며 둘러대곤 파워워킹으로 청계천 일대를 배회하거나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도 했다. 굶주림은 기꺼이 견딜 수 있었지만 식탁 위에 놓인 1시간분의 어색함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퇴사 직전 받은 상사의 조언이 퍽 인상적이어서 회사를 옮긴 뒤에는 사람들을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퇴사하는 막내 직원에게 구태여 ‘다른 회사에서는 팀원들과 밥을 먹으라’는 조언을 건넨 이유가 있었는데, 팀원들과 식사를 같이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얻게 되었다. 당장의 업무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꽤 많았다. 점심시간이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 넘게 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가장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 또한 그제야 알게 됐다. 직장동료와 친구가 되지 않더라도 역시나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니까. 적당한 거리라는 건 적당히 먼 동시에 적당히 가깝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대화가 툭툭 끊겨 정적이 흐르는 날이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에 할 말이 떨어지면 사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곤 하는데, 가끔은 스스로 정한 선을 넘어버리기도 한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사담을 꾸역꾸역 뱉어버린 날 저녁에는 머리를 감다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욕설을 내뱉곤 한다.

‘제기랄, 그 말은 또 왜 해가지고...’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나름의 요령까지 체득했다. 대화가 끊긴다 싶을 때 화제를 전환하는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것. 최근에 개봉작이 얼마나 지루했는지부터 핑크색 스타벅스 레디백을 구하려면 새벽 5시에 줄을 서야 했다 등등 주제는 다양할수록 좋다. 침묵이 다가오는 불안감이 느껴질 때면 잽싸게 짱구를 굴리기 시작한다. 내향성 짙은 이에게 스몰토크를 하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니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이면 넷플릭스를 켜고 ‘요즘 가장 핫한 콘텐츠’를 부지런히 찾는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투자다. 시즌제는 너무 설명이 장황해지니 분량이 짧고 어렵지 않은 내용이 딱 좋다. 이번 주말에도 넷플릭스에서 스몰토크용으로 제격인 코미디 영화를 찾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내용인 데다 가볍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다가올 점심시간, 식탁 위에 침묵이 흐른다면 이 영화를 화두로 던져보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다.


파주 멋대로 씁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http://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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