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작가상’을, 『고요한 밤의 눈』으로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의 신작 장편소설 『숲의 아이들』이 출간됐다. 『실연의 역사』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등 우리 시대의 청춘들, 특히 여성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들려주던 박주영이 이번에는 결코 지워낼 수 없는 짙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린 시절 의문의 실종 사건으로 동생을 잃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온 이영우, 가장 친한 친구가 유괴되어 살해당한 뒤 미제 사건 전담 형사가 된 은혜주, 그리고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십오 년간 복역 후 출소를 앞둔 조남국. 각자의 자리에서 위태롭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그들이 이십 년 전 일곱 살의 나이로 실종되었던 이영채의 시신이 발견되며 한자리에서 만난다. 각자의 비밀을 가진 세 사람이 만나 펼쳐 보이는 본격 서정 미스터리, 혹은 하드보일드 러브스토리!
근황을 여쭤보겠습니다. 『숲의 아이들』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다음 소설을 써야 하는데 좀처럼 『숲의 아이들』로부터 떠나기가 어려웠어요. 좀 이상한 여름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봄부터 계획했던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괜찮아지면, 하고 미루던 일들을 상황에 맞게 수정해야하는데 아직도 좀처럼 이런 일상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숲의 아이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소설인데요, 어떻게 이야기 구상을 시작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부산에서 유괴 사건이 있었어요. 그 아이를 제가 직접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는 동네가 비슷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아이가 살았던 집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자주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그 아이의 삶을 생각했고 괜찮았으면, 어떻게든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던 기억이 나요. 아마 그 사건이 제 기억에 새겨진 최초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 독자들이 자신이 있는 곳이 소설 속 인물이 있는 곳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도록 소설을 썼는데 이번에는 제가 태어나서 자라고 줄곧 살고 있는 부산이 배경인 소설을 제대로 쓰고 싶었어요.
해운대뿐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이 어느 시기에는 부산에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그때 있던 것이 지금도 있을까요? 그리고 내년에도 거기 있을까요? 제가 잘 아는 부산을 저장해두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은혜주는 부잣집 외동딸, 이영우는 자수성가한 의사입니다. 잊고 살아간다면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진실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데요, 분명 괴로울 것임을 알면서도 진실을 마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은혜주는 사라진 아이이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돌아온 아이이기도 해요. 그때 진짜 사라진 것들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한 아이이기도 하구요. 반면에 이영우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없는 것이 일상인 세상을 사는 아이예요. 두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의문을 가진 채로 성장했어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방법을 택한 두 사람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어요.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힘든 거 같아요. 저한테는 누군가와 둘이 나누었던 것들이 영원히 나 혼자만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있었어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그런 사람을 지워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하게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은혜주와 조남국, 이영우, 김보미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비밀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시점에 따라 마음이 쓰이는 인물들이 달라지는데요. 혹시 작가님께서는 유독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처음 구상을 은혜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위태로운 형사 은혜주가 소설가로서 저한테는 특별하긴 합니다. 하지만 쓰다보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에게 죽도록 미움받는 아버지들이나 딸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어린 엄마까지, 인물 저마다의 상처, 열등감, 질투, 허무, 절망까지 마음이 가게 돼요.
각자의 시점에 따라 특별히 더 마음이 쓰이고 더 잘 알 것 같은, 그래서 독자들의 삶을 건드리는 인물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쓰는 소설이 있는데 『숲의 아이들』도 그랬어요.
『숲의 아이들』은 제목과 달리 숲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경은 바다 근처의 해운대인데요, 왜 ‘숲’의 아이들을 제목으로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숲에서 서로를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었다면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모티브였어요.
『숲의 아이들』은 약자에게 동정 없고 승자에게 맹목적인, 정의 없는 세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어두운 밤의 숲을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헤맨 영우와 혜주가 서로를 알아보고 어린 시절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물리치고 살아남아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또 숲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인 아파트 빌딩 ‘숲’일 수도 있어요. 도시 어디에나 있는 비슷비슷한 아파트 숲에서 자란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일어나지 말아야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작가님께서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요?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준비중인 장편소설이 셋 정도 있어요. 아이돌, 뱀파이어, 아마추어 탐정이 소재인데요. 오래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에요. 제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결국 소설이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와는 무관한 삶을 산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이런 소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어요. 독자로서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작가로서 도전하고 싶은 소설을 써요. 남들이 안 쓰는, 남들이 써도 나는 다르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숲의 아이들』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두 번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성적으로 은혜주와 이영우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읽은 독자분들과 이성적으로 객관적인 사실들을 조합해서 읽은 독자분들에게 진실이 조금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쓰는 동안 소설은 저의 혼잣말이지만 세상에 나온 후에는 여러분과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주영(소설가)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시간이 나를 쓴다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6년 『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작가상을, 2016년 『고요한 밤의 눈』으로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실연의 역사』, 장편소설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종이달』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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