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신작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쓰기 전까지, 김연수는 어두운 터널 안에 있었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생 도대체 뭐지?' 하며 고민하던 나날이었다.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이 되어 북한 변두리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백석. 이 실패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은 소설이 된다고 믿는 김연수는 자신의 믿음대로 무너진 백석의 현실을 소설로 재건했다. 쓰지 않음으로써 시를 지킨 백석의 마지막 7년. 그 역설을 쓰면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_작가의 말 중에서
눈보라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 이야기
8년 만의 신작 소설이에요. 20년 전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구상했다고요. 오래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 놓은 느낌이 어떤가요?
느낌이 묘한데요. 이 책은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온 것 같아요.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평생 품고 살아갈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석 시인의 이야기였어요. 2016년부터 뒷부분을 연작 단편으로 쓰고, 이제 끝을 내야겠다 싶어서 올해 1월부터 다시 썼는데요. 이렇게 나올 줄 몰랐고 분명히 제가 썼는데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 나요. (웃음) 어떻게 해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나 싶어서 의아하기도 하고요.
이 소설을 쓰면서 위로받았다고요.
8년 만에 나온 신작이지만 그동안 쓰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계속 써왔는데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안 나왔죠. 출판할 만한 이야기를 못 썼다는 건데… 계속 이런 의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 도대체 뭐지?’ 하는 고민이요. 행복하고 성공하면 사는 이유가 분명하잖아요. 내일이 기대되니까. 그런데 ‘내일이 기대되지 않고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무언가가 한 번 훼손된 후에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살지?’ 이게 해결되지 않았어요. 물론 ‘생명은 소중한 거야’ 라든지 ‘희망이 있다’는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쓴 거죠. 다행히 쓰면서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아주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사람에게도 어떤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요.
어떤 희망인가요?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요. 북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한은 지난 70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변했어요. 아마 타임머신 타고 가서 그때의 사람들에게 “70년 후에 서울이 이렇게 바뀔 겁니다. 그러니 희망을 품고 사세요”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죠. 그만큼 그때 그 사람들한테는 희망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무언가를 계속했단 말이죠.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고 지금까지 왔는데 그 과정에서 소설 속 ‘옥심’처럼 못 견디고 죽는 사람이 있고요. 기행(백석의 본명)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희생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안 죽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체제나 정부, 권력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조종하려고 하고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강하게 살아남아서 삶이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대체 이 힘이 뭘까?’ 하고 굉장히 궁금했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카자흐 여인들에게서 힌트를 얻었어요.
중앙아시아로 쫓겨온 한인들에게 빵을 준 카자흐 여인들이요?
동쪽에서 온 낯선 민족이 황야에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빵을 굽잖아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찾아와서 ‘일단 먹자’고 하는 거예요. 화물칸에 실려 와서 버려진 한인들이 울면서 빵을 먹고요. ‘네가 살아 있어야 전체가 살아 있는 거다’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죠. 자연스럽게 지금 상황을 떠올리게 됐어요.
이를 테면요?
지난 8년 동안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그게 편견이고 착각이라는 걸 알았어요. 전체적으로는 좋아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파괴되고 있잖아요. 이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은 지금 상황의 수천 배쯤 되지 않겠나 싶고,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런 사회를 건설했다고 생각하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끝내 안 죽고 살아남아서 뭔가를 만들어 낼 것 같아요. 이게 인류가 가진 원동력인가보다 이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건 기업이나 권력의 힘이 아니고 이 힘이겠구나 싶었어요.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힘. 그 힘은 없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요.
사람이 살려고 하는 힘을 발견하면서 무기력에서 벗어난 건가요?
맞아요. 그 힘을 믿어보자 싶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 덕분이었어요. <겨울밤>이라는 시인데 내용을 보면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집안의 촛불 하나가 타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화자는 여름날을 꿈꾸고요. 보자마자 어떤 시인지 알겠더라고요. 눈보라는 소비에트, 촛불은 시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인 거죠. 그런데 엄청난 눈보라에도 촛불이 끝내 안 꺼져요.
백석 시인의 이야기와 겹쳐지네요.
사실 백석의 이야기는 촛불이 꺼진 이야기에요. 그래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겨울밤>이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는데 사실로 믿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쓴 거죠. 언젠가부터 위대한 문학 작가들의 말은 사실 내지는 사실이 될 거라고 믿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쓰인 거예요.
실제로 소설에 눈과 불꽃이 자주 등장해요. 중요한 상징으로 느껴졌어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겨울밤> 속의 눈과 불꽃의 이미지가 저를 사로잡은 거죠. 언뜻 보면 백석의 이야기가 불이 꺼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꼭 불이 꺼졌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은 잊힐 거로 생각하고 죽었지만, 나중에 백석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시집이 출판돼서 집마다 깔리게 되잖아요. 이건 눈보라, 그러니까 어떤 권력도 막을 수 없는 불꽃이에요. 권력을 뛰어 넘어서 불이 옮겨붙은 거니까요.
모든 게 카자흐 여인들의 이야기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 덕분이네요. (웃음)
맞아요. 두 가지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나서 확신을 가진 거죠.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가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더라도 그 가치는 후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요. 이 생각을 하고 나서 개인적인 어려움도 많이 극복됐어요.
세 번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죠. 집필 작가가 직접 녹음한 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원래 오디오북을 좋아했어요. 2000년대 초반에 영국에 있을 때 아침에 설거지하고 있으면 BBC에서 『전쟁과 평화』를 들려주더라고요. 드라마타이즈하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거였는데 그게 부러웠어요. ‘우리는 왜 이런 거 안 하지?’ 싶었고요. 처음에 네이버에서 제안했을 때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다가 책을 다 쓴 다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어요. 최선을 다해 썼는데 제 목소리 때문에 독자들이 못 들으면 어떻게 하나 싶고, 소설에 할 짓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문 성우가 읽는 게 낫겠다고 했더니 네이버에서 일단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성우를 섭외하자고 해서 일단 했는데… 역시 잘 못 하더라고요. (웃음) 사투리가 있어요.
나중에 생각이 바뀐 이유는요?
제가 쓴 글은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알아서 NG가 많이 안 났는데 백석이 쓴 글은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백석의 산문을 읽는 부분에서 NG가 많이 났어요. 글 쓰는 사람의 호흡과 읽는 일이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호흡을 끊는다는 점에서는 내가 제일 잘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수락했어요.
댓글로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오디오북의 특징일 것 같은데요. 인상적인 후기가 있다면요?
엄마랑 같이 들었다고 하신 분이 있었어요. 원래 책은 혼자 보는 거였는데 오디오북은 소리니까 누군가와 같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평소에 독자들을 자주 상상하는데요. 혼자 집에서 읽거나 카페에서 읽는 모습이 그동안 상상한 독자의 모습이었다면 오디오북을 듣는 독자들은 더 다양할 것 같았어요. 산책하면서 듣거나 운전하면서 듣거나 헬스 하면서도 들을까 싶고…. 그리고 그동안 밝히지 못한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에 만든 오디오북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뤄졌어요.
어떤 바람인가요?
그동안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내 책을 세 번 읽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네 소설이 뭐라고 세 번이나 읽으라는 거냐고 욕먹을까 봐 한 번도 말한 적은 없는데요. (웃음) 독자들이 오디오북으로 이야기를 접하면 어쩔 수 없이 두 번 읽더라고요. 일단 듣고 다시 읽는 거죠. 세 번 들은 사람도 많고요. 집중했든 안 했든 일단 이야기를 세 번 접한 거죠. 그래서 ‘아 소원을 성취했구나’ 싶었어요. 뜻한 건 아닌데 원했던 바가 이뤄져서 흡족해요.
왜 세 번인지 궁금해지는데요. 두 번도 아니고 네 번도 아닌...(웃음)
세 번 읽으면 누구나 그 텍스트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게 제 신조예요. 예전에 서평이나 영화 감상평을 많이 썼는데요. 세 번 보면 뭐든 다 쓸 수 있어요. 자기 이야기와 책이 연결된 서평이 좋은 서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 번 읽으면 독후감을 쓰고요. 두 번 읽으면 ‘아 이런 이야기구나’ 하고 분석하는데 세 번 읽으면 이 책에 관한 내 이야기가 나와요.
작가님이 첫발을 떼셨으니 다른 작가들도 많이 녹음했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꿈꿨던 일 중 하나인데요. 뉴욕에 작가들이 단편을 자기 목소리로 읽고 설명하는 팟캐스트가 있어요. 그걸 들으면서 왜 우리는 이런 팟캐스트를 안 하나 궁금하더라고요. 저작권 등의 문제가 있겠지만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지 않을까요? 꼭 계간지에 발표하라는 법 없잖아요.
팟캐스트 좋은데요. 작가님이 시작해보면 어떤가요?
예전에 비슷한 건 해봤어요. 최은영 작가가 책 내기 전인데요. 『쇼코의 미소』를 보고 ‘이 사람은 크게 될 사람이다’ 싶어서 신작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대학로의 공연장을 빌려서 작가의 목소리로 처음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행사를 했어요. 그때 나온 소설이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신짜오 신짜오>예요. 최은영 작가도 그때 처음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거였는데 낭독이 끝난 뒤에는 간단히 설명하고 독자와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이런 거 하면 정말 좋을 텐데 왜 안 하나 싶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스럽게 바뀌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지막 장의 제목이 책 제목이 됐어요. 고심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지어졌나요?
백석 시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쓰고 싶었는데 시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아무리 봐도 쓸 만한 게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못 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석탄이 하는 말>을 읽는데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미 여러 번 읽은 시인데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이거다! 이거 제목으로 하면 되겠다’ 싶어서 결정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게 왜 제목같이 느껴지는 궁금해서 햇수를 헤아려봤는데 공교롭게 소설이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딱 7년의 이야기인 거예요. 신기했어요. 백석 시인이 책에 제목을 시에 남겨놨구나 싶기도 하고… 운이 좋았죠.
실존했던 인물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를 쓴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만약 나중에 무언가가 발견돼서 ‘사실은 백석이 체제에 완전히 충성했다더라’ 하면 이야기 전체가 무너지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밝혀지든 백석을 모델로 또 다른 세계에 사는 ‘기행’이라는 주인공을 만들었고, 기행은 자기가 알아서 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가 아닌 다른 현실에 있는 백석 시인이 이 소설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글쎄요. 실제는 다를 수 있는 건데… 후배 작가로서 최선을 다해서 상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냥 ‘수고했다’라고 하겠죠. (웃음) 그러면서 문학이란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거라고, 상상이란 그런 거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혹시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소설의 한 장면을 그려준다면 어떤 장면을 꼽고 싶은가요?
한 장면만 꼽아야 하는 거죠? (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언덕 위 방목장에 올라가서 확 트인 하늘을 보는 장면이요. 아, 꼭 하나만이라면 바꿀게요. 기행이 양을 치다가 달을 보면서 달이 왜 이렇게 밝고 선명한 것인가 생각하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클라이맥스거든요..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쓸수록 쓰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이번 책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상상한 독자가 있나요?
있어요. 제가 발표하지 않고 오래 쓰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어렵대요.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거다”, “소설을 공부하면서 읽을 수는 없지 않냐”는 말을 들어서 고민했어요. ‘내가 잘하는 건 이건데 시대가 요구하니까 달라져야 하는 건가?’ 하고요. 이를테면 쉽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변해야 하나 고민한 건데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시대에 맞춰서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독자를 상상했죠.
어려운 소설도 찾아서 보는 독자일까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순문학이라는 말을 싫어해서…. 영화로 치면 예술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의미나 상징이 많고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설인데요. 이런 소설을 원하는 독자도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많지는 않겠지만요. (웃음) 그러면 아무래도 나이가 꽤 있는 분일 테고 생각이나 고민이 많은 분이 아닐까 싶어요.
항상 어떤 고민이나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되잖아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소설로 출발하지 않은 고민이 있다면요?
일단 이번 소설을 쓰면서 많이 해결됐고요. 또 다른 게 있다면 소현 세자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소현 세자의 꿈이 끔찍하게 좌절되는 이야기인데요.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라기보다 더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실패한 이야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소현 세자의 이야기에서 무얼 발견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희망 없는 이야기는 완전하지 않은 걸까요?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요?
이야기의 효능을 믿어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경험하고 자기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접할수록 자기 인생도 그런 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소설가의 임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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