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병운 “혐오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
제 눈에 비친 지금 우리 사회는 끝내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어떻게 가더라도 결국 나를 파괴하는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때문에 저는 여전히 소설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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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김병운의 첫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치열한 연예계를 배경으로 ‘진짜 나’로 살아가려는 개인의 내밀한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 이를 마주하는 용기를 그려 내는 작품이다. 배우 공상표로 살아가는 강은성은 주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다. 원치 않는 배역을 기계처럼 연기하는 스크린 속 배우 공상표, 온갖 소문들이 말하는 연예인 공상표, 엄마가 원하는 모습을 한 아들 강은성. 한 번도 자기 자신인 적 없었던 강은성이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해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배우 공상표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힘든 사회에서 외로움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아는 그 마음을 그려 낸 소설가 김병운을 만나 보았다.



2014년 데뷔 후 첫 소설이에요.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을 내기도 했지만,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얼마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하셨나요?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2017년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2년에 걸쳐 초고를 썼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중간에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을 내기도 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에세이집을 쓰면서 경험했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감정적 부침 덕분에(주로 ‘자기 드러내기’와 관련된) 소설의 내용과 정서가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초고 작업 이후부터 출간 전까지의 시간은 온전히 퇴고에 바쳐졌는데요. 같은 원고를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봐서 그런지 나중에는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따라서 이 책을 바라보는 저의 감회는 절대적으로 ‘후련함’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의 노트북 안에만 있던 원고가 이제는 책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제가 더는 이 원고를 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에요! 정말이지 제 손을 완전히 떠났다는 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 그리고 출간 이후에는 당연히 틈이 날 때마다 에고 서칭을 하면서 일희일비하고 있어요. 처음 낸 소설인 만큼 ‘일비’할 때조차 웃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공상표’를 찾는 이들도 있고, 에세이로 착각했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제목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요?

처음 구상할 때부터 쥐고 있던 제목이었어요. 다른 가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제목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이라는 말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해 줄 뿐만 아니라 저라는 사람과도 밀접하게 닿아 있어서 애착이 갔어요. 보는 이에 따라서 ‘아는 사람만 아는’이 수식하는 게 ‘배우 공상표’가 될 수도 있고 ‘필모그래피’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고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안에서 가장 긴 제목인데다 중간에 낯선 이름까지 들어가 있어서 사실 편집 단계부터는 내심 걱정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담당 편집자님께서도 제목을 좋아해 주셔서 무사히 처음의 제목을 달고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동료 소설가들도 제목을 좋아해 주어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소설은 크게 1장과 2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장은 공상표-강은성의 엄마인 김미승, 누나인 강은진의 이야기이고 2장은 강은성과 김영우의 이야기인데요. 어떻게 보면 공상표-강은성을 이루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세계의 이야기를 연달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소설을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과 같은 구성을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이 소설 역시 계획대로는 쓰이지 않았고 쓰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거든요. 원래는 여섯 명의 하루를 교차해서 보여 주고 싶었는데, 퇴고의 과정에서 이 원고는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엉켜 있는 길을 정리하여 1부와 2부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1부와 2부의 역할은 명확한데요. 1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세계를, 2부는 알기 때문에 모른 척해서는 안 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공상표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를 보여 주는 게 1부라면, 공상표가 그럼에도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 주는 게 2부인 것이죠. 저는 어떤 성장은 어설픈 이해나 거짓된 화해가 아닌 완전한 결별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을 분절된 내용과 형식으로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소설에는 연예계, 영화판의 이야기가 실감 나게 드러납니다. 특히 필모그래피의 디테일들이 흥미로웠어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제목과 플롯의 드라마와 영화 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소에도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시나요?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질문을 받고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나 곰곰 생각해 봤는데 시작은 <노팅힐>이었던 것 같아요. 1999년의 여름, 압구정 씨네플러스 1관(지금의 CGV 압구정)에서 <노팅힐>을 보고 그만 마법에 걸려 버렸고 그 이후로 줄곧 영화를 동경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팅힐>에서도 배우가 주인공이네요!) 저는 뼛속 깊이 통속과 신파를 사랑해서 결코 시네필은 될 수 없는 관객이기도 한데, 왠지 모를 의무감에 아트시네마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시간표를 체크하면서도 결국에는 멀티플렉스에 앉아 있는 그런 유형입니다.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생긴 다음부터는 극장에 가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는 저에게 가장 소중한 무엇입니다. 절대로 팬심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이름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나루세 미키오, 그리고 홍상수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공상표-강은성이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서술자로 등장하고 있어요. 김미승, 양병진, 강은진, 김영우.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을까요? 가장 아끼는 장면도 말씀해 주세요.

공상표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기는 하지만, 1부의 주인공은 엄연히 김미승과 강은진입니다. 오로지 아들에게만 인생의 의미를 길어 내려 하는 김미승이나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인정에 매여 살고 있는 강은진 모두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기에 저에게는 아프고 소중한 인물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1부의 마지막, 김미승이 그녀의 전 애인 양병진과의 재회를 마치고 헤어지는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김미승은 아들이 자신을 완전히 떠났음을 가장 먼저 예감하는 동시에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확신하고는 조심스레 다른 사랑을 타진해 보는데, 결국 그녀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장면이 지금의 1부 엔딩이어서 쓰면서도 마음이 좀 복잡했던 것 같아요. 김미승에게 ‘공상표 엄마’ 이외의 다른 자아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주저하던 강은성이 고백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태원 클럽 방화 사건이에요. 강은성이 꿈속에서 자기 자신과 방화범을 동일시하는 장면은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강은성은 왜 방화범에 감정이입했는지, 방화 사건이 어떻게 자기 고백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소설 속 이태원 클럽 방화 사건은 2016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한 게이 클럽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요. 용의자가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면서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용의자가 IS에 충성을 맹세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남성으로 알려졌고, 그 이후에는 한때 이 클럽을 자주 드나들었던 손님으로도 전해졌는데, 용의자가 현장에서 사살되었으므로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게 됐지만 어쨌든 성소수자 혐오 범죄였다는 것만큼은 자명했죠.

저는 이 사건에 꽤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고, 아마도 그 이유를 마주하는 과정이 이 소설 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괴로울 때가 있고, 그런 자신을 부정하고 경멸하다가 죄책감과 수치심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저에게는 이 사건이 그러한 순간순간들의 총합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사건을 곱씹으면서 오랫동안 저를 잠식하고 있던 자기혐오의 정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고요. 제가 이 사건을 통과하면서 제 안의 어떤 파열을 감지하고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공상표 역시 이태원 클럽 방화 사건을 통과하면서 ‘진짜 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코로나19 확진자를 향한 혐오 발언 등을 접하면서 이 소설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하시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눈에 비친 지금 우리 사회는 끝내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어떻게 가더라도 결국 나를 파괴하는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더 나아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내 안에 깃든 혐오가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훼손한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을 거예요. 서글프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걸 모른 채로 성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모든 것들을 모른 척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모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강렬한 혐오를 보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요. 때문에 저는 여전히 소설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러한 생각 속에서 내디딘 저의 절박한 첫걸음이고요. ‘어째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없는가?’ 이 물음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 김병운

198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메르쿠」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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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김병운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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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