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그들이 숨지 않는 이유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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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숨지 않는다』 , 수학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이상한 수학책』 , 라디오PD가 들려주는 라디오의 매력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을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나는 숨지 않는다』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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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공동저자인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은 인권기록활동가예요. ‘사이’라는 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고 하고요. 『나는 숨지 않는다』 는 저자들이 11명의 사람을 인터뷰해서 7개의 이야기로 엮어낸 책입니다. 11명의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한데요. 책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적대시하거나, 하찮게 여기거나, 발칙하게 여긴 세상을 발 디딘 곳부터 바꾸어나간 사람들’이라고요. 그 중에는 탈북 여성도 있고, 스쿨미투 운동을 한 여성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한부모 가정의 여성도 있습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를 서문이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글을 시작하며 이렇게 자문합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엮으며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에 답변을 하는 부분이 너무 좋아요.


소수자의 삶이란 이렇듯 고통스럽다거나, 반대로 이렇게 희망적인 삶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관점의 이야기 모두 소수자의 삶은 ‘문제’로만 남는다. 소수자는 타자화된 존재다. 그의 삶을 구성한 맥락이 지워진 채 사회적 통념과 편견으로 재단된 평면적 존재로 인식된다. (중략) 타자화를 경계한다는 것은 내가 얼굴을 마주한 상대가 고유한 역사와 감정과 사고 체계를 가진 한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동일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으며, 세상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5쪽)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소수자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돼서 편집되잖아요. 이 책은 거기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크고 작은 맥락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이상한 수학책』
 벤 올린 저/김성훈 역 | 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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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Math with Bad Drawings’이고 띠지에 그림이 일부 나와 있어요. 벤 올린이라는 저자는 ‘이상한 그림으로 보는 수학’이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주로 과학이나 수학 이야기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웃더래요. 너무 못 그린다고요. 그래서 자신이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이 책에도 저자가 그린 그림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길, 많은 학생들한테 수학을 한다는 것은 미리 정해진 대로 펜을 열심히 놀리는 행동하고 같다고 해요. 우리가 지금 수학을 떠올리면 ‘x의 값을 구해라’, ‘소금물의 농도를 구하라’ 같은 거죠. 그렇게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있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 주어진 시간 동안 풀어내는 행동을 수학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책은 수학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진정한 수학이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저자는 수학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시를 들어서 이야기하는데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건 ‘게임에 이기는 방법’ 혹은 ‘문제의 답을 구하는 방법’이라면 수학자는 그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인 거예요. 예를 들어 ‘베스킨라빈스31 게임’을 한다고 했을 때, 흔히 생각하는 수학은 ‘여기에서 내가 무슨 숫자를 말해야 이길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수학자들은 ‘세 명인 경우에 내가 1과 2를 말했을 때 이긴다면, 네 명인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한 사람이 최대 네 개의 숫자까지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숫자만 말하는 게 아니라 알파벳까지 포함시켜서 말해야 된다면 게임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논리 게임을 논리적으로 만드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인 거죠.


우리 세상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도 유행하고, 이상한 사람들도 뉴스에 나오고,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건가 싶을 때 수학은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죠. 뭔가 마음이 힘들고 울적할 때는 이런 책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저 | Lik-it(라이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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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한 번은 김연수 작가님이 어느 서점에서 사인회를 했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고 힘겹게 사인을 하고 나서 ‘나는 사인회는 다시는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2009년에 연우소극장에서 출간한 책에 대한 북토크를 했는데 체구가 작은 여성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죠. ‘제가 라디오PD 지망생인데요. 제가 언젠가 라디오PD가 되면 출연해주실래요?’라고 질문을 한 거예요.

 

그래서 ‘예, 그러지요’라고 대답을 한 거죠. 그러고 나서 두 해 뒤에 김연수 작가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혹시 2년 전에 연우소극장에서 라디오PD가 되면 출연해주실 수 있냐고 했던 독자 기억나세요?’


‘네, 기억이 나는데요.’


‘그게 전데요. 제가 진짜 MBC 라디오PD가 됐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지요.’


그래서 출연을 하신 거죠. 그 몸집이 자그마했던 PD 지망생은 우리 <책읽아웃>에도 출연하신 적이 있는 장수연 PD님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 장수연 PD님은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 에서 이런 구절을 읽게 됩니다.


2009년 5월, 그 독자에게서 정말 연락이 왔다. MBC 라디오의 PD가 됐으니 약속을 지켜달라고. 알겠다며 전화를 끊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약속이 이뤄지기도 하는구나. 그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데, 아, 놀라워라, 내 안에서 벽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을 겪은 뒤로 모든 일의 선의를 믿자고 생각하게 됐다. ( 『소설가의 일』  136쪽)


낭만적이지 않나요? 이 이야기가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의 첫 에피소드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 수필의 재미가 이런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수연 PD님은 라디오의 가장 핵심은 ‘매일’이라는 데 있다고 해요. 어떤 프로그램이 한바탕 스페셜로 지나가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이어진다는 거죠. 처음에는 쫀쫀하게 기획해서 런칭을 하지만 그것 자체가 처음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이고, 그 일상에서 집중해서 듣는 게 아니라 흘러가기도 하고 가끔 들렸다가 다른 채널 돌리다가 들어보기도 하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느낌이 있는 거죠. 거기에서 라디오 자체의 매력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로서는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가,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어떻게 노력하는가, 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졌을 때 또 다른 어떤 느낌으로 변해 가는가,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현업에 있는 사람이 들려주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듣고 있는 라디오의 이면을 알게 되는 거라서 즐거운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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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