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김현우 번역가 “존 버거, 한없이 다정한 세계”
존 버거의 『그들의 노동에』 시리즈는 그저 1970년 대 프랑스 농민들의 경험을 기록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타자들의 경험을 전하는 일’에 대한 일반적인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 김윤주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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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ㆍ사회비평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등 존 버거를 수식하는 이름은 많다. 하지만 김현우 번역가는 존 버거 앞에 ‘다정함’을 붙인다. 존 버거는 급진적인 지식인이었지만,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 담긴 그의 모습은 소박하고 겸손하다. 그는 농촌 공동체에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이질적인 세대의 체험을 나누기도 하고, 농사를 지으며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다정한 자세. 1970년대 중반, 나이 오십을 앞둔 존 버거가 프랑스 산악 마을로 거처를 옮겨 농민의 삶을 기록한 원동력은 일관된 태도에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존 버거의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 를 번역한 김현우 번역가와 ‘타인의 경험을 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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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만난 존 버거

 

언젠가 번역할 때 궁합이 잘 맞는 작가로 ‘존 버거’를 꼽으셨지요. 존 버거의 문장과 어떤 점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직접 말하니 쑥스럽지만 ‘다정함’입니다. 많은 분들이 존 버거를 평론가, 혹은 단호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보고 있는데, 저는 이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다정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내의 빈 방』 이나 『A가 X에게』 같은 책을 보신 독자들이라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어로 처음 정독한 존 버거의 책은 『행운아』인데, 주인공 의사가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울 수 있다는 건 말이다, 꿈을 꿀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요. 『G』『A가 X에게』 , 그리고 새로 나온 농민 3부작 중 2권 『한때 유로파에서』 처럼 직접적으로 연애를 다룬 글들, 특히 거기서 연인들의 몸을 다루는 문장들을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친밀하고 다정합니다.
 
대학 시절, 존 버거의 글에 매료되셨다고요. 당시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제 대학 시절이면 1990년대 초중반인데요, 1980년대 학생운동의 여파와 개인주의가 공존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문화 사이의 언어가 너무 다르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제 안에서 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존 버거의 문장을 읽으며, 그 둘이 함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봤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면서 개인 한 명 한 명의 (몸의) 경험을 놓치지 않는 작가니까요. 존 버거의 글을 보며 ‘혁명의 언어도 다정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농민들의 ‘노동’이기도 합니다. 역자님에게 ‘PD’와 ‘번역’이라는 노동은 각각 어떤 의미인지요?


언젠가 글에서 제가 하는 투잡은 ‘같은 운동장에 나란히 그려진 트랙 두 개를 달리는 일’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뭔가 창작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방송국 일은 여럿이 함께하고 번역은 혼자 한다는 점, 또 방송국 일은 조직의 구성원으로 하는 일이고 번역은 개인 자격으로 한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김현우 개인의 이런저런 모습들 중 각각의 영역에 맞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끔은 두 일의 다른 성격 때문에, 반대쪽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잠시 잊기도 합니다. 두 개의 영역에 걸쳐 있다는 건 그런 이점이 분명 있습니다.


존 버거에게 농촌 공동체는 이상적인 ‘전원’이 아닙니다. 존 버거에게 농민의 삶을 배우고 기록하는 일은 왜 중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지요. 농촌이 이상적인 ‘전원’일 거라는 기대는 농민들을 타자로 보는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실제 농촌은 가난하고, 착취당하고, 무엇보다도 외면받고 있습니다. 3부작 중 첫 번째 책 『끈질긴 땅』 의 머리말에서 존 버거는 무엇보다도 농민의 삶과 그 삶이 대변하는 세계관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농민들의 경험은 문명에서는 주변적이었다는 주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너무 많은 역사와 너무 많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그 경험과 세계관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유산이라면, 실제로 농민이라는 계급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의미 있고, 다급한 작업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미 민음사 판(『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1994)) 번역본이 있었지요. 어떤 부분을 새롭게 갱신하고자 하셨나요? 1부 제목을 ‘기름진 흙’이라 번역한 민음사 판과 달리, 역자님은 ‘끈질긴 땅’으로 번역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민음사 판은 대학생 시절에 읽어보았고 이번 번역 작업을 하면서 다시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오역이 있는지 여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일단 문장 자체가 지금의 독자 세대가 쓰는 언어와는 시차가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만큼,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을 번역하면서 익힌 리듬이나 감각을 가지고 새로 번역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열화당에서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끈질긴 땅’의 원문은 ‘Pig earth’입니다. 사전을 봐도 ‘pig’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주변의 영국 현지인과 상의하기도 했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pig’가 속어로 ‘곤란한 문제’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거기서 ‘뜻대로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완고한’이라는 의미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1부에서 그려지는 농민들의 삶, 수많은 곤란한 상황들을 겪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그 삶의 터전이 되는 땅의 성격과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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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스토리텔러’


PD와 번역이라는 두 가지 다른 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찍으실 때, 존 버거의 말을 떠올리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두 일이 서로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작업의 과정이 너무 다르고, 그런가 하면 또 뭔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그리 차이가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주중엔 회사 생활, 일이 없는 주말에는 번역,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작업을 하는데, 각각의 일을 할 때 저의 모드가 바뀌는 것 같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방송 제작은 끊임없는 대화와 회의여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번역을 하는 주말에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보낼 때도 종종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존 버거의 문장이 작업 현장에서 떠올랐던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방송 제작 일의 특성상 인터뷰를 진행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인터뷰 대상이 되는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들, 그 실감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대부분 존 버거의 문장에서 익힌 감각일 거라고 생각하면, 그의 책에서 큰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존 버거는 당시 농민의 삶을 관찰하고 구체적이고 명징한 언어로 쓰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이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번역 작업을 시작할 때 농담처럼, 회사를 휴직하고 소설의 배경이 된 프랑스 오뜨사부아에 가서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겠지만... 제가 농촌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것도 외국의 전혀 다른 풍토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실감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시각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장 모르의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 과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서 묘사된 현지의 이미지들을 참조했고,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 출장 갔을 때, 다른 사진가가 작업한 농민들 사진집을 구해 와서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참고하며 작업했습니다. 이럴 때는 방송 제작을 하면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본 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지식인이었던 존 버거에게 농민은 ‘타인’입니다. 타인과 생활을 함께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존 버거의 태도는 어떠하다고 느끼셨나요?


프랑스에서 존 버거를 직접 만났을 때 함께 간 열화당 사장님이 그의 회고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존 버거가 대답하기를, ‘본인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좀 놀랐습니다. 이어서 본인은 ‘이야기꾼 storyteller’이며, 이야기꾼이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작가로서 그의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버거가 생각하는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중요한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의 자아가 너무 크면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들이 그 자아에 묻혀 버리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작가 자신의 자아를 위해 주인공들을 ‘착복 appropiration’ 해 버리는 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때 전해지는 이야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빌린 작가 자신의 에고 혹은 세계관일 뿐입니다. 존 버거는 작가, 혹은 지식인에 의해 ‘착복’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경험을, 그들의 언어 그대로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제 7의 인간』 에서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을 전했고, 이번 『그들의 노동에』  시리즈에서 농민들의 경험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덕분에 『그들의 노동에』  시리즈는 그저 1970년 대 프랑스 농민들의 경험을 기록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타자들의 경험을 전하는 일’에 대한 일반적인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존 버거를 실제로 만나셨다고요. ‘운이 좋았던 만남’으로 기억한다고 하셨습니다. 글에서 접한 존 버거를 만났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성덕했습니다.(웃음) 만나기 전에는 ‘창피하니까 존 버거가 보는 앞에서는 울지 않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 유난히 버벅거리는 편이라서, 저자가 실망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글이랑 똑같이 다정한 할아버지였습니다. 같이 담배도 피자고 한 대 꺼내 주고, 포도주 따라 주고, 제가 계속 ‘미스터 버거’라고 부르니, ‘그냥 존이라고 하세요.’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집 앞에 BMW 모터사이클이 세워져 있어서, ‘아, 지금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만큼 건강하시구나.’라고 생각했고, 헤어지면서 포옹을 할 때 몸이 단단해서 다시 한번 반가웠습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실재가 확인해주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그의 문장들을 읽으며 보내온 시간들은 어쩌면 저 혼자만의 시간이었을 테지만, 그 문장을 써낸 실제 작가의  몸을 확인함으로써, 그 시간들도 이제는 실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건 꽤나 근사한 보상이었습니다. 그런 보상을 누구나 받는 것은 아닐 테니까, 분명 운이 좋았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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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른 경계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번역자도 존 버거가 말하는 ‘스토리텔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자님께서 생각하시는 번역(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모든 번역은 '하나의' 번역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에 대해서 설순봉 선생님의 번역이 있고, 김현우의 번역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번역은 연주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원래의 텍스트가 악보라면, 번역자는 그 악보를 놓고 번역되는 언어로 연주를 해내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정답에 해당하는 번역은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오역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번역가란 ‘저는 이렇게 이 책을 읽었습니다'라고 자신의 번역문을 내미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독자들이 그런 여러 번역들 중에 자신에게 더 와닿는 번역을 고를 수 있다면 이상적일 테고요.  


덧붙이자면 갈수록 ‘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 어색합니다. 해당 책을 읽고 독자가 받게 될 감상을 미리 정해주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불친절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 과연 독자가 그런 친절을 요구한 적이 있는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독자를 믿고, 그 독자가 저자를 직접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그가 옮긴 문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긋이 전달되는 것이겠지요. 그런 바람은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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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우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 『스티븐 킹 단편집』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킹』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등이 있다.

 

 


 

 

그들의 노동에 3부작 세트존 버거 저/김현우 역 | 열화당
1970년대 중반, 나이 오십을 앞둔 존 버거는 알프스 자락 산악 마을로 삶의 거처를 옮겨 15년 동안 농민의 삶을 기록했다. 그에게 농민 공동체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였다. 사라져가는 농민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삼부작 소설로 쓴 것이 ‘그들의 노동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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