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의 세 번째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 이 출간되었다. 두 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 이후 8년 만에 묶어 내는 신작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에서 “자학적인 고립과 결여 상태를 감수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출구 밖 타인들을 향한 소통에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다”(김형중)는 평을,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밖을 갈구하지만 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정실비)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는 장은진의 소설 세계는 세 번째 소설집에 이르러 만조에 다다른 듯하다. 바다가 가장 높은 순간 파도가 끝까지 일렁이는 모습처럼, 작가는 한 권의 소설집에 춥고 사나운 마음을 자유자재로 부려놓는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혼자라고 생각해서 남아 있는 관계를 스스로 끊는 이들, 외로움에 몸서리치더라도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작가와 신작 소설집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단편소설을 정리하고 묶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오랫동안 품었던 이야기를 독자에게 보내는 마음이 궁금합니다. 독자에게 가기 전, 먼저 소설들을 읽어 준 양윤의 평론가, 김복희 시인의 추천의 글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이 다른 분들 눈에 어떤 풍경으로 비치는지 듣게 되는 시간은 항상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요. 전문 독자인 평론가 선생님과 문학을 하는 시인의 눈은 특히 더 긴장감을 주는 것 같아요. 이번 추천 글을 한 자 한 자 짚어 가며 여러 번 읽어 내려갔습니다. 밖에서 보는 제 소설의 풍경이 이렇구나, 미처 몰랐던 문장 습관조차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부족한 글에 빛나는 추천사를 입혀 주신 두 분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품었던 소설이라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이 있을 것이기에 지금이라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세상에 내놓고 나면 걱정과 불안한 마음에 결국 점령당하고 말아요. 책이 독자의 품에 무사히 안착하여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희석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수록된 8편의 소설 중 작가님께 가장 애틋한 소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런 작품을 뽑으면 늘 뽑히지 못한 다른 작품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굳이 한 편을 뽑아 본다면요.
일곱 편들에게 미안하지만 「울어 본다」예요. 교정을 볼 때 왠지 모르게 자주 그 단편에 마음이 머물렀어요. 밤이 되면 냉장고처럼 습관적으로 우는 여자의 마음이 제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저도 매일 우는 사람입니다. 속으로 남몰래 울기도 하고, 도저히 감출 수 없을 때는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해요. 우는 대회가 있다면 1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울고 싶습니다. 슬프고 외롭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게 기쁘고 행복해서 우는 사람이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외진 곳」은 무엇보다 그 배경이 특징적입니다.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그렇지만 이렇게 이상해 보이는 주거 구조는 한국에서 사실 꽤 흔하기도 하지요. 공용 세탁실, 공용 화장실을 쓰고 얇디얇은 벽으로 공간 분리만 한 방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이요. 「외진 곳」이라는 소설을 쓸 때 어떤 것을 가장 고민하셨나요?
독자분들이 중심에서 밀려나 열악한 주거 공간에 살게 된 자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요즘에 이렇게 빈곤한 청춘이 어디 있냐고 할까 봐 고민했어요. 그러나 이런 곳에 사는 젊은이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썼으니 독자분들도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유독 추운 날, 추운 곳에, 춥게 지내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겨울의 끝자락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인물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고 더 나은 곳으로, 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져 다가오는 봄에도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특히 「이불」의 주인공 남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즈음 직장을 잃고 애인을 잃고 추운 거리를 하염없이 걷는데요. 이 작품을 쓰면서 궁극적으로 이 인물이 바라는 건 뭐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알람을 다시 가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그걸 끄는 거요.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 미래를 계획해 볼 수도 있는 보통의 생활인이 아닐지. 평범하고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 소중한 삶일 수 있는지를 「이불」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책 뒤표지에, 이 소설집을 소개하며 담긴 소설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한 문장을 꼽아야 했을 때 편집자는 “오늘 밤 왜 중심가로 가지 않았나요?”라는 문장을 골랐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 소설집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이유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울어 본다」에 나오는 문장인데 ‘모든 사람들이 밤에 운다면 슬픔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사는 게 힘들고 지쳐서 울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싶어서요.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 나아지고,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슬픔도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수록작 「울어 본다」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앉아 생각에 잠기고, 울고, 먹고, 책을 읽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처음 맛본 보리차를 얼린 얼음을 생각하고 애써 잠에 들기 위해 재미없는 책을 읽는데요. 요즘 작가님이 새벽 무렵 가장 많이 하는 생각과 잠들기 전 읽는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면 좋겠다, 그것이 가장 가까운 미래인 바로 내일이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밤 해요. 멋진 소설을 써내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요. 그러다 날을 꼬박 새우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책들만 따로 모아 두는 곳이 있는데, 문장이 그리울 때 팔을 뻗어 한 권을 골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곤 해요. 그곳의 책들은 모두 그런 책이에요. 어떤 페이지를 읽어도 마냥 좋은. 저 또한 마냥 좋은 그런 책을 쓰고 싶습니다.
책을 낸 후 작가님의 일상은 조금 바뀌시는지, 혹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안나의 일기」처럼 작가님 일상의 한 대목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딘가 멀리서 이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를 궁금해할 독자분들께 인사를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요. 책이 어떻게 읽힐까 궁금한 마음과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운 마음에 식사와 운동을 거르게 되고, 불면의 밤은 깊어집니다. 일상의 리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마음 또한 스산해지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저에게 일상의 리듬을 다시 돌려줄 거라 믿으며 지낼 수밖에요. 멀리 있는 당신, 당신의 방 창문에 항상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불빛에 위로받을 저 같은 외로운 사람을 위해서요.
* 장은진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동굴 속의 두 여자」가,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키친 실험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7년 등단한 동생 김희진씨와는 ‘쌍둥이 자매 소설가’이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장편소설『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이 있다.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 2019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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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진 곳장은진 저 | 민음사
혼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혼자라고 생각해서 남아 있는 관계를 스스로 끊는 이들, 외로움에 몸서리치더라도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작가는 오랜 시간 흐린 창 앞에 서 있다. 웃풍이 드는 그곳에서 기꺼이, 가만히 타인의 고독을 살핀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