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의 한 장면
‘1917’년은 세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다.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는 장군 에린 무어(콜린 퍼스)에게 임무를 하달받는다.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가려는 영국군 부대의 중령 매켄지(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것. 영국의 모든 통신망이 독일군에 의해 파괴한 상태에서 소식을 전할 방법은 병사가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전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 불가라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죽기를 각오한 메신저 역할에 관객 또한 심장 쪼이는 느낌을 공유하는 것은 <1917> 이 택한 극한의 촬영 기법 때문이다. ‘원 컨티뉴어스 숏 one continuous shot’은 한 번에 중단없이 촬영하는 ‘원 테이크 one take’와는 좀 다르다. 장면을 나누어 찍은 후 모두 이어붙여 하나의 장면으로 보게 하는 기법이다. 관객은 <1917> 의 119분의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가 단 한 번의 편집 없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실시간의 느낌으로 영화를 ‘체험’한다.
감상 대신 체험이라 표현한 것은 극 중 전장의 상황이 편집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낸 게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해서다. 관객이 전장에 있는 것은 아니어도 갑자기 날아올지도 모르는 총알과 불시에 터질지도 모르는 포탄의 잠재적인 위협의 긴장감을 그대로 전달받기 때문에 극장에서 마음 편하게 영화를 감상하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제 같은 상황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촬영 방식은 오래전 알프레드 히치콕이 <로프>(1948)에서 활용한 적이 있다. 필름 촬영이 이뤄졌던 당시에는 필름의 특성상 10분 정도 촬영한 후 필름 롤을 갈아야 했다. 검은 수트를 입은 극 중 인물의 등에 렌즈를 밀착하는 방식으로 <로프>는 편집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의 전통을 따르는 <1917> 은 일례로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불 꺼진 벙커 안으로 들어갈 때 노출되는 잠시간의 어둠을 편집점 삼아 장면을 하나로 보이게끔 이어간다.
<1917> 이 전통을 이어받은 영화는 또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1957)이다. <영광의 길>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장군과 이를 용인하는 상부 지휘 체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다. 발단은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고지를 탈환하라는 장군의 명령이다. 영화 초반 장군이 프랑스군의 참호를 방문하여 부하들을 독려할 때 카메라의 기법은 <1917>과 흡사한 원 테이크로 이뤄진다. <1917>은 <영광의 길>의 카메라 기법과 <로프>의 편집 방식을 ‘이어붙여’ 원 컨티뉴어스 숏을 완성한다. 이는 영화의 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에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의 본질은 ‘역사’다.
개인의 역사는 삶이다. <1917> 은 전쟁물이면서 삶의 굴곡진 드라마다. <1917> 은 스코필드가 나무에 등을 기대 잠을 깨는 장면으로 시작해 오래 묵어 나이가 많고 키가 큰 나무에 기대어 잠을 자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고목(古木)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죽을 고비의 시간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렀을까. 나무의 시간에 인간의 삶을 대입하는 <1917> 의 원 컨티뉴어스 숏은 단순히 전장을 체험하게 하고 기술력을 과시하는 기법이 아니라 삶의 지속을 담은 이 영화의 정수다.
간신히 영국군의 참호에 도착한 스코필드는 막 독일군을 향한 공격이 개시되었음을 알고 급하게 매켄지 중령을 찾아 나선다. 아예 참호 밖으로 나와 독일군에게로 진격하는 부대원들의 진로를 횡으로 갈라 위협을 무릎 쓰고 달리는 장면은 <1917> 의 주제를 상징한다. 승리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그렇고 그런 전쟁물이 아니라 극단의 상황에서도 삶은 얼마나 끈질기고 그래서 숭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간에 관한 영화임을 확실히 한다. 영화의 역사를 삶의 지속으로 치환하여 나무의 시간과 등치하는 <1917> 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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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