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본색>에서 인생 캐릭터 만난 배우 박민성
어차피 제가 주윤발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극에 필요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작품 안에서 마크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글ㆍ사진 윤하정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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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를 대표하는 영화 <영웅본색>이 뮤지컬로 제작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이고 있다. 의리와 배신이 충돌하는 홍콩 암흑가를 배경으로 자호, 자걸 형제와 마크의 서사를 통해 가족애, 의리와 우정 등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영웅본색> 은 1986년 홍콩 금상장영화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1987년 대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당대 최고의 인기작. 특히 적룡, 장국영, 주윤발 등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더욱 사랑받았던 작품이다.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한 창작뮤지컬 <영웅본색> 은 원작 영화 특유의 감성에 화끈한 액션과 세련된 영상, 장국영의 노래까지 더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무대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 앞에서 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건 결국 무대 위 배우들 아니겠는가. 원작부터 음악, 출연진까지 당대 최고였던 만큼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중압감이 상당했을 텐데, 개막 전 마크 역의 박민성 씨를 직접 만나 그 속내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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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여유 있어 보입니다(웃음).


많이 차분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새로운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때면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언젠가부터 기다려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더 감동을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빨리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영웅본색>의 개막도 기다려지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고 기대돼요.

 

배우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여유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만, 창작 초연의 경우 전체적인 그림이 불안할 때가 있잖아요. 


공연을 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긴 해요. 배우로서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하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왕용범 연출님과는 오래 작업하다 보니 믿음이 생겼어요. 사실 연습실에서 배우들은 작품의 전체적인 그림을 모르잖아요. 하지만 연출님이 무대에서 배우를 바보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영웅본색’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기대만큼 걱정이 앞섰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웃음).


그 얘기를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왕용범 연출님은 오랜 기간 준비해 오셨어요. 연출이 되기 전부터 ‘언젠가 <영웅본색> 을 뮤지컬로 올리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대요. <삼총사>,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 작업했던 모든 작품에 <영웅본색> 을 준비해온 흔적이 조금씩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출님이 그만큼 준비해온 작품이니까, 선장을 믿고 가는 선원으로서 일조하게 됐다는 점에서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스타배우들이 맡은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텐데요. 마크, 주윤발 씨가 연기한 인물이잖아요.
그렇죠, 이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고, 다들 정말 멋있는 배우잖아요. 지금 우리에게는 자걸 장국영, 마크 주윤발이 훨씬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형 자호 역에 적룡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적룡에 비하면 장국영이나 주윤발 씨는 신인 수준이었는데, <영웅본색> 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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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압감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연습 초반까지는 민망했어요. <영웅본색> 보다 ‘내가 주윤발? 과연 할 수 있을까?’ 무척 부담스럽고, 사람들한테 주윤발 역을 맡게 됐다고 말하기도 쑥스럽더라고요. 주윤발 형님은 지금 봐도 멋있잖아요. 그런데 2019년 초에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인물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온 국민에게 최재성이라는 배우로 확실히 각인돼 있기 때문에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제가 그 선배님을 뛰어넘을 수는 없잖아요. <영웅본색> 에서도 어차피 제가 주윤발이 될 수는 없어요. 그저 극에 필요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작품 안에서 마크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극 중 마크는 어떤 캐릭터인데요?


준비하면서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처음에는 솔직히 멋있다는 생각만 했어요. 직업적으로는 좋지 않은 일을 하지만,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우정이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멋진 남자.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그 인물이 돼서 몰입하다 보니까 너무 불쌍하고 가여운 친구더라고요.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무대에서는 장면마다 방점을 찍어요. 등장할 때마다 위로든 바닥으로든 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써서 힘들지만, 그만큼 재밌고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박민성 씨가 마크가 되기 위해 가장 달라지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별로 안 바뀌는 것 같아요. 그래서 편해요. 제가 평소에 까불까불하다가도 화가 날 때는 표출하는 편인데, 마크도 비슷하거든요. 연출님이 저한테는 처음부터 마크를 얘기하셨는데, 따로 노트도 주시지 않았어요. 연출님과 여러 작품을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너 인생 캐릭터인데 어떻게 하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듣기 좋으라고 말씀하셨을 수도 있지만, 동료 배우들도 제가 연기를 안 하는 것 같다고 얘기해요. 사실 지금까지 괴물도 됐다, 죽거나 죽이거나, 항상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만 할 수 있었던 캐릭터를 맡았거든요. <영웅본색> 은 그에 비하면 현실에 있을 법한, 일상의 얘기예요. 따로 어마어마하게 연구해서 한 게 아니라 오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대본에 있는 대로 살리면 되니까 오히려 편하고 재밌어요.

 

마크는 박민성의 평소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씀인가요(웃음)? 그 멋진 캐릭터들이 <영웅본색>의 매력이기도 해서 관객들이 ‘어떻게 구현하나’ 많이 기대할 겁니다.


워낙 인물들이 멋있잖아요. 연출님도 최대한 캐릭터에 맞게 연습하는 걸 주문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연습 때 항상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썼어요(웃음). 생김새는 어떻게 안 되지만, 의상이나 기타 시각적인 부분에서 익숙해지면 행동이나 마음가짐도 더 비슷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처음 연습할 때는 대사가 상당히 어려웠어요. 시대극도 아니고 아예 현대물도 아니고. 대사 톤도 그렇고, 중화권 영화 특유의 억양이나 동작도 시대적인 트렌드에 맞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를 배제했죠. 영화를 모티브로 하지만 우리가 새로 만들어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야겠더라고요.

 

음악은 어떤가요? 중국어 노래로 만든 뮤지컬은 흔치 않잖아요. 특유의 멜로디도 있고, 한국어로 바꿨을 때 느낌도 다를 텐데요.


저는 그런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은 기존에 있는 곡으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는데, <영웅본색> 은 그런 게 없어요. 연출님이 직접 극을 쓰셨기 때문에 영화 OST인 ‘당년정(當年情)’과 ‘분향미래일자(奔向未來日子)’를 비롯해 장국영 배우의 다른 히트곡들이 적재적소, 상황에 맞게 매끄럽게 들어가요. 가사도 잘 다듬었고, 편곡도 잘됐고요. 이성준 음악감독님의 창작곡도 잘 어우러지고요.

 

느와르 장르인 만큼 액션 신도 많은데, 무대에서는 어떻게 구현될까요?


<영웅본색> 을 떠올리면 유명한 장면들이 있는데, 과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깔끔한 동선 처리, 영상이나 조명 등을 이용해서 상징적으로 해결했어요. 배우들이 몸으로 해결해야 하는 액션 장면은 따로 무술 수업을 받았고요. 영화에서 보던 액션 신을 무대에서 하면 어설프게 보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스피디하게, 쫀쫀하게 합을 맞춰야 하니까 연습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낙법에 계속 구르고 뒹굴고 하니까 여기저기 멍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나아졌죠. 지금도 날씨가 안 좋으면 손목이 쑤시고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요(웃음).

 

이제 작품에 대해 세세히 알잖아요. ‘영웅본색(英雄本色)’은 무슨 뜻일까요?


저희끼리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영웅이 본연의 색을 드러내다’ 혹은 ‘영웅이 가진 근본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대단한 영웅, 난세의 영웅, 희대의 영웅도 있겠지만, 저희가 생각할 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 아닐까 싶고요. 전쟁터 같은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영웅인 거죠. 각각 인생의 마지막에 가면 결국 영웅의 일대기인 거잖아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으니, 누구나 공연장에 오시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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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관객들에게 영화와는 또 다른 뮤지컬 <영웅본색> 의 매력을 어필해 주시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무대가 될 거예요.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고, 뮤지컬은 현장 예술이잖아요. 장면 전환이 많지만 무대에서 라이브로 구현해낼 테고, 또 그런 화려한 무대 세트가 아니더라도 창작진과 배우가 믿고 펼쳐 보이면 관객들도 충분히 함께 호흡하면서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뮤지컬은 음악이 가진 힘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장국영 배우의 주옥같은 음악과 이성준 음악감독님이 만든 현대적인 음악, 또 연출님이 직접 쓴 시적인 가사가 잘 어우러져서 정말 멋진 작품이 나왔으니까 관객분들도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합니다.

 

2020년이 시작됐는데, 마지막으로 새해 각오도 들어볼까요.


2019년에는 감사하게도 5개 작품이나 했어요.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인데, 연습할 때나 공연할 때는 힘들었지만 아주 즐겁게 작업했더라고요. 한 작품이라도 소홀했다면 자책했을 텐데 모두 매우 소중했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기쁨도 컸어요. 요즘 참 행복하거든요. 일이 계속 있고, 하는 작품과 캐릭터마다 많이 사랑해주시니까 지금만 같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가리는 건 없어요. 라이선스 작품도 좋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창작도 좋고. 작품이 좋고 캐릭터가 좋으면 어떤 역할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해야죠. 2020년에도 보내주시는 사랑과 응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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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뮤지컬 영웅본색 #박민성 배우 #주윤발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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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s2223

2022.10.28

英雄本色 영웅은 본래 타고나 색 (기질, 성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본래 색이 없으면 本色 영웅이 될수 없지요. 英雄

다시 한번 말하면 영웅은 반드시 본래 색이 있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영웅은 아무나 되는게 아니라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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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