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쓰레기 덕질 이야기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 슬픔을 경쾌하고 또렷하게 적어 내려간 『슬픔의 위안』 ,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심리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저 | 슬로비
<채널예스>의 다른 코너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책인데요. 제가 요새 꽂혀 있는 주제가 ‘환경’이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중제는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입니다. 고금숙 저자는 자칭 ‘호모 쓰레기쿠스’라고 이야기해요. 대학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면서 에코페미니즘을 접하셨대요.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페미니즘적으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10년 동안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셨어요.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유해물질을 이슈화했던 단체이기도 하죠. 그곳에서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화장품의 미세플라스틱을 쓰지 말자는 운동이나 노동자들의 건강을 다루면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운동 등을 해오셨고요. 이제는 조직을 벗어나서 반 상근 활동가로 살면서 조금 널널하게 가볍게 쓰레기 덕질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저자는 ‘나는 대문자 운동 체질이 아니다’라고 소개를 해요. 사회, 국가, 희생, 이런 담론보다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소문자로써의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대요. 일상과 가까운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환경운동에 있어서 개인이 행동하는 것이 있고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가 있는데, 그러니까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제 환경은 돌이킬 수 없다’는 보고서가 계속 나오니까 소문자로써의 활동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노 임팩트 맨』 의 저자는 “시스템이 변화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개개인이 바로 시스템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고금숙 저자는 이 말을 소개하면서 “참으로 매력적인 말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해요. 결국에는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개개인이 바로 시스템’이라고 하면서 개인만 행동하면 그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저자는 ‘나는 쓰레기 덕질을 하고 있지만 덕후가 아닌 사람도 이 버거움을 조금 나눠가질 수 있는 게 바로 시스템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시스템을 변경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법적으로 또는 정부의 개입으로 시스템을 바꿔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저자는 그 외에 자신이 작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쭉 설명해줘요. 그냥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일단은 하겠다는 거죠. 좋아서, 또 그게 옳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대문자와 소문자의 삶에서 계속 박탈감이나 허무함, 무능감 같은 것이 드는데요. 1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한 사람이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한다’라고 하는 걸 보면 조금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 『슬픔의 위안』
브라이언 셔프, 론 마라스코 공저/김설인 역 | 현암사
표지가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인데, 이진주 작가의 「차갑고 하얀 것」이라는 그림이에요. 까만 바탕에 까만 긴 팔 옷을 입은 사람의 손이 보이고요. 그 손에는 하얀 무언가가 쥐어져 있어요. 그 위의 『슬픔의 위안』 이라는 제목과 아주 닿아있죠. 무언가를 조심히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가 표지나 제목에서 생각했을 때 상상하게 되는 책의 느낌과는 사뭇 달라요. 조금 더 경쾌한 문체로 되어 있고 조금 더 또렷하게 뭔가를 전하는 문장들이에요.
목차를 보면 ‘무거운’, ‘사소한 것들’, ‘물건’, ‘수치심’ 등등 슬픔에 관련한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서랍을 나눠서 정말 야무진 문장들로 써놓은 글들이에요. 문장 자체가 서정적이고 울림을 준다든가 그런 게 전혀 아니고, 이 책은 실용서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실용적인 문장으로 되어 있는 책입니다.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론 마라스코는 연출가이자 작가이고 슬픔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한 방법으로 영화, 연극, 소설의 장면들을 사용해서 강의를 해왔고요. 브라이언 셔프는 론 마라스코와 함께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되어 있는데요. 저는 이 책이 작법서 같은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재적소에 각종 영화의 대사라든가 책에서의 인용이 너무 잘 들어가 있어요.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으면서 아주 쾌감이 컸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슬픔은 아주 직접적인 슬픔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 이후의 슬픔, 가족이나 애인이나 아주 가깝고 사랑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심정에 대해서도 다 분리를 해서 써놨고요. 또는 우리가 그런 걸 상상해 보게 만들죠. 그 사람의 남은 물건들, 내가 사랑했고 그 사람과의 사연이 너무 많이 담겨 있는 물건들과 함께 그 집에 혼자 남게 된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사람이 느낄 것들에 대해서도 차갑지가 않아요. 눈물이 나는 부분들도 있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마치 일상과 삶에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죽음과 슬픔의 영역에 대해서 아주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참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254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요.
(자세한 이야기는 109-2 [김하나의 측면돌파] 편에서 확인하세요!)
그냥의 선택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저 | 김영사
책의 부제는 ‘정여울의 심리테라피’예요. 트라우마, 콤플렉스, 블리스, 에고, 번아웃,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다양한 심리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영화, 심리 서적, 문학, 작가들의 말과 삶과 함께 들려주고 있습니다.
정유정 소설가가 쓴 추천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책의 첫 장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경우가 있다. 첫 문장이 충격적이라서, 저항 불가능한 손아귀에 덜미를 잡혀서, 누군가 내 오랜 비밀의 봉인을 조심스레 푸는 것 같아서... 이 책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
굉장히 공감한 말이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됐거든요. 제 안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고, 그래서 홀딱 반해서 읽었습니다.
“지나치게 가혹한 자기 규정”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정여울 작가님께서 <책읽아웃>에 출연하셨을 때, 어린 시절에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또 너니?’라는 말을 들었던 경험을 들려주셨잖아요. 이번 책에서도 그 경험을 고백하시면서 자신의 삶은 그 말의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고 적으셨는데요. 그렇게 우리가 살면서 상처를 받았던 말들이 스스로에 대한 규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 말이 나를 바꾸거나 규제하는 게 아니라, 그 말들이 내 안에 쌓이면서 ‘아, 나는 조심성이 없는 아이구나’, ‘나는 소심하고 사회성이 없는 아이구나’ 하고 스스로를 규정하게 되고, 그게 나를 옭아맨다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이 가지를 뻗어갔어요. ‘나도 이런 적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그 말이 나한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 하고 공감하면서 읽게 됩니다.
읽다가 눈물이 핑 도는 순간들도 많았는데요. 특히 호명을 하고 말을 거는 부분에서 울컥하더라고요. 그 중에 하나는 “마음아, 잘 있니?”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한 번도 내 마음한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거죠.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다가 나에게 시선을 주면서 ‘어떻게 지내? 요즘 어때?’라고 물어봐주면, 말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부터 터지잖아요. 그것과 흡사한 느낌이었어요. 남이 나한테 말을 안 걸어주면 서럽고 외로우면서, 한 번도 내 마음한테 ‘잘 있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