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헤비메탈 걸스> 가 11월 5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헤비메탈 걸스> 는 직장 동료인 네 명의 39살 동갑내기 여성들이 새로 부임하는 사장이 헤비메탈 광팬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인원감축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드라마와 영화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하재숙 씨가 이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와 관심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 중인 하재숙 씨를 대학로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그냥 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전혀 이해를 못했는데, 헤비메탈을 하셨던 선생님한테 배우기도 하고 추천해주시는 영상도 보니까 멋있더라고요. 저항정신도 보이고.
<헤비메탈 걸스> 라는 제목이나 포스터도 매우 강한데, 헤비메탈은 하나의 장치잖아요.
그렇죠, 주변에서 친구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예요. 등장인물들이 헤비메탈을 배우는 과정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누구나 나이대에 따라 겪게 되는 일이 있잖아요. 헤비메탈뿐 아니라 40대를 앞둔 주부로서, 직장인으로서 겪는 이야기라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드라마 <퍼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만큼 다음 작품 선택할 때 더 신중했을 텐데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인가가 중요했고, 무대에도 너무 오고 싶었어요. <심야식당> 리딩 공연이 마지막이니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거든요. 결혼한 뒤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사니까 대학로에 오기가 쉽지 않은데, 드라마 끝나고 여러 번 공연 보러 왔어요. 대학로가 그리워서. 그때 연락이 와서 시기적으로 딱 맞았죠.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무대의 매력이 어떤 걸까요?
저는 드라마하면서도 다른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고 카메라에서 얻는 에너지도 큰데, 그래도 대학로의 공기가 그리웠던 것 같아요. 설렘을 안고 무대에 섰었고, 대학로가 좋아서 2014년 즈음까지 오래 살았거든요. 또 공연은 배우나 제작진들이 같이 술도 마시고 싸우기도 하는데,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그런 시간이 없어요. 함께 연습하고 맞춰보는 이런 작업을 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공연 준비하면서도 술은 많이 안 드시더라고요(웃음).
예전부터 무대에 섰던 분들 얘기 들으면 공연계도 달라진 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헤비메탈 걸스> 에서 은주는 어떤 인물인가요?
호주로 유학 간 남편과 아들의 학비를 대는 기러기엄마예요. 회사를 그만두면 더욱 안 되는 거죠. 제가 모성애를 실제로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절실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 친한 친구가 명예퇴직을 해서 더 와닿기도 하더라고요. 극에서 은주의 비중이 크지는 않은데, 다른 3명의 동료와 그려내는 앙상블이 기대됐고, 실제로 4인 4색의 배우들이 재밌게 작업했어요.
연극무대에서 헤비메탈이 어느 정도는 표현되는 거죠?
그럼요. 저희가 배우는 과정이 나오고, 그래서 노래뿐 아니라 동작이나 욕하는 연습도 많이 했어요(웃음). 실제로 공연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뛰어난 그룹처럼 할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성장기가 마지막 헤비메탈로 드러나는 거라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연습도 많이 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헤비메탈이 소재인 만큼 연습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요즘 보면 과거 ‘서른 즈음’이 겪는 홍역을 이제는 ‘마흔 즈음’이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극중 은주가 39살인데, 그 나이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억하세요?
맞아요. 평균 수명도 늘고, 과거 결혼 적령기라 부르던 시기도 많이 미뤄졌잖아요. 저희도 이번에 극을 준비하면서 각자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어떤 친구는 마흔 살 될 때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서른 살이 될 때 암담하고 힘들었는데, 결혼이 저한테는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마흔 살 될 때는 좋았어요. 이유도 모르고 방황하고 고민하던 시절들이 잘 넘어간 느낌이었거든요. 인간 하재숙과 배우 하재숙을 확실하게 구분하게 됐고요.
혹시 직장생활은 해보셨어요(웃음)? 물론 배우라는 직업도 불안감 등 고충이 많지만요.
어릴 때 3개월 정도 직장에 다녔는데 못하겠더라고요. 굶어도 연극해야겠다 싶었죠(웃음). 사실 저희는 이 작품 끝나고 아무도 선택해주지 않으면 은퇴잖아요. 예전에 주현 선생님이 인터뷰한 걸 봤는데 ‘배우는 잘되든 못되든 다 불안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너무 쉬나, 너무 아무것도 없나’ 생각될 때는 막연히 불안해지기도 해요. 그러면 걸으러 나가죠. 그런 시간들이 지금까지 쌓였고, 어릴 때보다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같아요. 그런 불안감은 어떤 직군에 있든 다 공감하실 거예요.
그런데 배우는 맡은 작품으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퍼퓸> 이후 일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나요? 감량에 대해서도 화제가 많이 됐잖아요.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전혀 못 느끼겠어요. 드라마는 정말 재밌게 했고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죠. 그런데 고성에 가면 동네분들은 그냥 ‘이제 돌아왔느냐’고 똑같이 대해 주시거든요. 다이어트도 작품에 필요한 거니까 했던 거고, 다음 작품에서 필요하다면 더 뺄 수도 찌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살아가는 데는 제 몸무게가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사는 거예요. 다만 워낙에 운동을 좋아하고, 배우로서 무뎌 보이지는 않으려고 노력해요.
화제가 되면 기회가 더 확대되는 면도 있는데, 앞으로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을까요?
뭔가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안 하는 편이에요. 배우의 좋은 점은 겪어보지 못한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거거든요. 어느 날은 요리사가 됐다, 또 어떤 날은 아이스하키 선수도 되고. 뭔가 배우는 걸 좋아해서 그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때 오는 성취감도 크고요. 굳이 얘기하자면 이제 은주처럼 나이에 맞는 인물을 연기하거나 스릴러물을 해보고 싶긴 해요. 카리스마 넘치거나 센 악역으로. 저에게도 분명히 그늘지고 어둡고 날카로운 면이 있는데,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잖아요. 그런 감성을 표현해보고 싶긴 해요.
무대에서도 더 자주 뵈면 좋을 텐데요.
물론이죠, 저는 그렇게 바쁘지 않은데 안 불러주세요(웃음). 특히 어릴 때는 대극장이 멋있고 와이어리스도 달아보고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소극장 무대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소극장에서 관객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정말 엄청나거든요.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앞으로 다양한 무대에 서고 싶어요.
연극 <헤비메탈 걸스> 는 메시지가 확실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떤 걸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나요?
직장인들의 이야기지만 배우인 저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말로만 듣던 헤비메탈을 정말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생각보다 의상도 멋지더라고요. 많이 보러 오셔서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