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레터>의 뮤즈, 배우 소정화
히카루가 여성이라서 사랑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그뿐 아니라 글에 대한 사랑과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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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시대 문인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팬레터>  가 11월 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팬레터>  는 실존 인물인 이상과 김유정, 문학단체 구인회를 모티브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더해 만든 모던 팩션(faction) 뮤지컬로, 실제 문학 작품을 인용한 아름다운 대사와 감미로운 선율, 매력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섬세한 이야기로 2016년 초연부터 그 인기가 대단했는데요.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히카루죠. 당대 최고의 소설가인 김유정을 모티브로 탄생한 ‘김해진’의 뮤즈이자 여류작가, 무척이나 신비로운 캐릭터인데요. 상상 속의 인물을 도대체 어떻게 구현하는지, 초연부터 삼연까지 히카루로 무대에 서는 배우 소정화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초연 때는 큰 뼈대를 만드는 기분으로 제작진과 배우들이 치열하게 작업했어요. 새로 만드는 작품인 만큼 건강하게 골조가 만들어지길 바랐다면 재연 때는 거기에 살을 붙여서 보기 좋게 하려고 했고, 삼연 때는 인터리어를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초연부터 삼연까지  <팬레터>  의 변천사를 물어봤더니 멋진 비유로 답해주네요. 무대에서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만큼 이 작품이 많이 사랑받는 이유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입장으로 보면 세훈 역할에 대입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힘들 때 히카루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내가 나아가지 못할 때 누군가 나를 대변해주고 비겁할 때 더 자신 있게 행동하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팬레터>  잖아요. 관객분들 입장에서는 ‘팬’의 마음이 대변되는 것 같아요. (김)해진 선생님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에 더 공감대를 이루는 게 아닐까. 뮤즈라는 소재도, 격변의 시대인 경성도 무척 매력적이잖아요.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낭만을 지키는 문인들의 모습, 문학적인 사랑이나 지적인 탐닉도 멋있고요.

 

대부분 실존인물인데 히카루는 상상 속의 인물이고, 김해진, 정세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캐릭터를 잡아가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요.


많이 힘들었지만 재밌기도 했어요. 초연의 매력은 무척 힘들지만 개척할 수 있고 어떻게 그려도 틀린 답이 아니라는 점이거든요. 히카루는 누군가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내면의 여러 모습 중 발현한 존재예요. 세훈이 만들어낸 디테일한 상상, 글에 대한 욕구죠. 그래서 배우들, 연출님과도 어떤 색채로 나아갈지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해진 선생님도, 세훈도, 배우마다 다 달라서 각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주는 것을 잘 받아서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그들의 분석이 중요했고, 그것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입체적으로 만들 수 없었거든요.

 

김해진에게 히카루는 어떤 존재일까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잖아요.


그나마 남은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라고 할까요. 히카루가 여성이라서 사랑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그뿐 아니라 글에 대한  사랑과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히카루가 바라보는 김해진은요?


동경과 존경으로 시작해서 손에 닿기 시작하자 욕심으로 마음에 변질이 생기죠. 닿으니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서 마지막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죽기 전 마지막 찬란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조력자는 나뿐이라는 마음이 강했다고 생각해요.

 

히카루가 19살인데, 물론 시대가 다르지만 그렇게 섬세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일단 19살이라 염치없네요(웃음). 심지어 세훈은 처음에 교복을 입고 나오거든요. 그래서 다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선 시기적으로 너무 많이 다르잖아요. 그때의 20대는 지금의 40대까지 망라하는 나이가 아닐까 싶어요. 이미 어른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도 히카루를 아이로 보지 않고 성숙한 어른으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극 안에서 유일한 여성인데,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겠네요.


맞아요. 그 시대에도 진취적인 여성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드러낼 수 있는 여성이라서 좋았죠. 너무 수동적이지 않고, 할 말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라서. 시대적인 공부도 했죠. 말투나 문체도 다르고, 그 시대 여성을 바라보는 입장, 또 창씨개명을 할 때니까 일본식 필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마음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

 


히카루를 제외하면 등장인물이 모두 남성인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떨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음색 때문인지 실제로도 진취적이고 적극적일 것 같아요(웃음).


그런 역할만 했는데, 그렇게만 살 수는 없죠(웃음). 생각보다 소심한 편이고, 집에서 잘 안 나가요. 예전과 달리 자기주장은 강해졌어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내 기대나 착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세훈과 히카루의 혼란처럼 제 안에도 다른 면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와 혼자 있을 때도 분리되는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그리스>나 <싱글즈>처럼 대중적인 작품을 많이 했다면 점점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참여하네요.


데뷔 초에도 강한 역할을 하긴 했는데, 점점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갈망하는 면이 있어요.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물론 모든 작품에는 메시지가 있지만 좀 더 깊숙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하는 작품도 저와 함께 자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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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라면 예쁜 드레스 입는 역할도 해보고 싶지 않을까요. 때가 있잖아요.


제 목소리가 굉장히 장점이면서 그로 인해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 한계를 어렸을 때 깨달았어요. ‘줄리엣’ 같은 인물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어울리겠다(웃음). 저는 드레스도 좋지만 한복 입는 공연을 정말 하고 싶어요. 시대극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한국적인 매력을 무대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몇 작품 바로 떠오르는데요(웃음).


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좋아해요. 자야도 진취적이고 멋진 여성이잖아요. <사의 찬미>도 좋아하고. 역사적인 인물인 데다 3/4박자 불안한 감성의 마이너적인 음악, 위태로운 느낌이 무척 좋아요. <헤드윅>의 이츠학도 하고 싶어요. 공연은 무대예술이라 조명과 음향, 의상 등이 주는 어떤 무드가 있잖아요. 제가 색이 진한 걸 좋아하나 봐요. 특별한 색깔을 가진 작품이 매력적이고,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도 대체적으로 그렇더라고요.

 

김해진에게 히카루라는 뮤즈가 있었다면, 소정화 씨의 뮤즈는 무엇인가요?


엄마요.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게 뮤즈일 텐데, 삶에 지칠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이 엄마예요.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친구든 어떤 인연이든 이별의 감정이 감성적으로 와닿는 편이에요. 맘고생이 저에게는 뮤즈라고 할까요. 아주 행복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나지만, 헤어짐이나 이별, 슬픔 같은 맘고생은 훨씬 예민하게 파생되는 감정이 많더라고요.

 

<팬레터>  는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인데, 개막 전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할까요? 히카루 팬도 많거든요.


자부합니다(웃음). 히카루는 정말 매력적인 역할이거든요.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욕심내지 않으려고요. 다른 배우에게도 히카루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 마음으로 아낌없이 히카루를 누리겠습니다. 주시는 사랑에 정말 감사하고, 저희 공연이 위로나 성장의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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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레터 #소정화 배우 #히카루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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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