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만에 60억을 갖고 ‘할매’가 돌아온 이유
이 땅의 못난, 비겁한, 야비한 남성들 때문에 끝내 고향에 들어서지 못했던 그 여인들은 결국 어디로 가야했을까? 그 생각을 하다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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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 저자의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  는 돈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제니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고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완전히 잊혔던 할머니. 그런 그녀에게,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무슨 낯으로 이제야 돌아왔냐며 당장 나가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그때 내뱉는 할머니의 한마디. “너희에게 줄 유산 60억이 있다.” 그러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가족들의 60억 쟁탈전은 어떻게 될까. 아니 60억이 진짜 있기는 한 걸까. 아무도 관심이 없던 할머니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난 역사와 찌질하기 짝이 없는 오늘 우리의 풍경이 이토록 유쾌하고 가슴 뛰는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출간 이래 재기 넘치는 스토리와 입담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김범 저자에게 그간의 소회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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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출간되었던  『할매가 돌아왔다』  가 2019년에 새로 돌아왔습니다. 작가님 첫 작품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첫 소설을 냈을 때는 ‘아, 내가 마침내 책을 냈구나!’라는 감회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공부 11년 만에 제 습작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고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반응을 하는, 그 소통의 행복에 푹 빠져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비로소  『할매가 돌아왔다』  를 제대로 읽은 것 같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초심이 많이 퇴색되었는데 개정판을 통해 그 처음의 결심을 다시 찾은 것 같아 한편으론 기쁘고 또 한편으론 부끄럽습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글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 이웃의, 내 가족의, 그리고 나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픔을 함께하는 따뜻함을 주고 싶어서 펜을 들었는데 그 결심을 까맣게 잊고 돈만 밝히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7년이란 세월이 흐른 동안 한국 사회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여성 문제가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죠. 지금 이 시점에  『할매가 돌아왔다』  를 읽으면 아무래도 이런 사회적 맥락이 함께 읽히더라고요. 작가님께서도 오랜만에 다시 작품을 읽으셨을 텐데, 글을 쓰던 당시와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 있나요? 

 

글을 쓰던 당시와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라! 너무 많군요. 7년 만의 독서에서 그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정끝순 여사가 너무 쉽게 짝불이의 폭력을 용납해준 것은 아닐까? 동석 엄마는 달수 씨의 출마를 왜 끝까지 저지하지 못했을까? 동주의 탈출구는 미국밖에 없었을까? 현애는 왜 진작 상우와 헤어지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아쉬움은 최근의 ‘미투’ 운동 영향이 분명합니다. 지난 수년간 저를 포함한 이 땅의 남성들 뼛속 깊이 자리한 남성 우월, 남성 위주 사고가 ‘미투’로 인해 꽤 많이 흔들렸음을 느꼈습니다.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성 귀환의 서사’라는 평가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집필 동기 같은 게 있다면요?

 

어린 시절 기억이 시작이었습니다. 한옥 마루에서 가장이었던 어른이 상을 뒤집어엎고 김치를 포함한 붉은 액체, 깨진 그릇들이 흩어진 모습. 앞마당 커다란 대야 앞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하고 있던 어른의 아내가 이때 실제로 ‘금발의 제니’를 흥얼댔습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허밍은 아주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가끔 대형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뽑아 읽을 때가 있는데 한여름 어느 날은 울분을 참느라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환향녀’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이 땅의 못난, 비겁한, 야비한 남성들 때문에 끝내 고향에 들어서지 못했던 그 여인들은 결국 어디로 가야 했을까? 그 생각을 하다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결말을 바꾸려다가 포기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왜 바꾸려고 했고, 왜 포기하셨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순 여사의 가족관계는 많은 부분 치유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끝순 여사만 놓고 볼 때 이 소설은 근본적으로 비극입니다. 그녀는 끝내 황산 다리를 건너지 못했으니까요. 위에 언급했던 ‘미투’ 의 불길도 있었고 세상도 꽤 변했으니 이젠 모진 세월 살아온 그녀에게 고향 땅을 선물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수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정 도중, 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진정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정끝순 여사가 고향에 들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상은 그저 ‘꽤’ 변했을 뿐 완전히 변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이제 유언장을 공개하겠습니다.’라고 작품을 끝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래서 등장인물과 독자가 함께 60억의 행방에 집중하는 피날레를 그리고 싶었지만, 제니 할머니의 끝나지 않은 여정이 더 소중한 결말이란 생각에 괜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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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주요 배경 중 한 곳인 충남 논산시 강경읍

 

 

67년 만에 60억 유산을 갖고 돌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거기에 역대 최강의 할머니 캐릭터와 개성 있는 가족 캐릭터들이 더해져 정말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소설이 되었는데요,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가님만의 비법 같은 게 있나요?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주변 인물들에서 캐릭터를 따온다.’하고 답변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인물에서 캐릭터를 가져올 때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는 소설 속 인물이 자신임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할머니와 함께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동석’은 역대급으로 찌질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 본능적으로 폭력의 세습을 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니 더 큰 영웅처럼 보이더라고요. 할머니의 귀환과 조금씩 드러나는 할머니의 옛 사연이 동석의 각성에 영향을 미친 거겠죠?

 

당연합니다. 사람은 매 순간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습니다. 동석은 아주 좁은 궤짝 속에 갇힌 인물이었습니다. 할머니로 인해 동석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궤짝을 뜯어내기 시작하지요. 궤짝에서 완전히 탈출했다곤 얘기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동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동석이 영웅이라고 하기엔 좀 뭣하지만 그를 움직이게 한 힘이 용기인 것은 확실하며 그 용기가 바로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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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과 황산대교. 저 다리만 건너면 할머니의 고향 부여인데, 할머니는 결국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폭력을 고발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여러 번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과제인지 궁금하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계획인지, 어떤 폭력을 고발할 계획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굳게 믿습니다. 민주주의란 개인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개인이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억압받지 않아야 하는데 실상은 시도 때도 없이 이런 개인이 짓밟히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더 부유한 나라, 더 강한 나라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개인이 존중받는 민주주의 세상을 물려주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 개인을 공격하는 모든 폭력을 고발하는 일이 글쟁이로 사는 저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현재 구상 중인 다음 소설은 한국인과 일본인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일본은 도대체 왜 사과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김범


1963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2001년 조동선 소설 창작반에서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90번에 가까운 낙방 끝에 2009년 단편소설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는 등 이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할매가 돌아왔다』는 SBS 주말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2014)와 『천하일색 김태희』, 『5번 교향곡』(2013년, 전자책) 등이 있다.


 


 

 

할매가 돌아왔다김범 저 | 다산책방
60억이 진짜 있기는 한 걸까. 아무도 관심이 없던 할머니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난 역사와 찌질하기 짝이 없는 오늘 우리의 풍경이 이토록 유쾌하고 가슴 뛰는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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