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혼성 2인극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가 10월 15일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개막합니다. 1912년에 발표된 진 웹스터의 원작 소설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제루샤의 성장 스토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를 지원하는 ‘키다리 아저씨’와의 사랑 이야기가 더해져 이후 만화와 영화 등으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았는데요. 지난 2016년 국내에 소개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는 무대만의 언어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키다리 아저씨’라는 상징성 때문에 어떤 배우가 제르비스를 연기할지 공연 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는데요. 이번에는 지난 시즌까지와는 다른 의외성이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 배우를 바로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새롭게 제르비스를 맡게 된 김지철 씨 말입니다.
키가 큰 배우들만 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습실 가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신)성록이 형은 정말 길어서 (강)필석이 형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죠(웃음).
그러게요, 실제 의미는 다르다고 해도 지금껏 장신 배우들이 제르비스를 맡아서 자연스레 ‘키’를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저도 기획사에서 연락을 받고 바로 ‘그렇게 키가 크지 않다’고 말했어요(웃음). 작품을 겉으로 접했을 때는 나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백마 탄 왕자’ 같길 바라는 면이 있잖아요. 기왕이면 잘생기고 키 크고, 뭔가 완벽한 이미지. 그런데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죠. 특히 필석이 형이 만들어내는 제르비스를 보면서, 그 부드러운 면은...... 강필석이잖아요! 사실 제 상상에서도 키다리 아저씨는 커야 하고 그림상으로도 그게 좋을 것 같았는데, 많이 배웠죠.
그동안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톡톡>, <아트>, 뮤지컬 <더맨인더홀>, <광염소나타>, <젊음의 행진>, <판>, <아랑가> 등 참 다채로운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왔는데, <키다리 아저씨> 는 느낌이 또 많이 다르네요.
맞아요, 저도 모르게 뭔가 갭이 큰 작품들을 해왔더라고요. 지난 3년간 너무 정신없이 달려왔고 건강도 나빠져서 4개월 정도 쉬었는데, 쉬는 동안 ‘김지철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캐릭터가 뭘까’ 궁금해졌어요. 직업인 배우로서의 느낌이 어떨지. 그 사이 몇몇 작품이 얘기됐는데, <키다리 아저씨>는 솔직히 좀 궁금했어요. 2인극이니까 여러 가지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박소영 연출님과도 작업해 보고 싶었고, 멤버도 좋았고요. 물론 4개월 쉬니까 돈도 떨어졌어요(웃음).
지금까지 맡은 인물과는 이미지도 다르죠? 수트 차려 입은 멋진 남자잖아요(웃음).
그렇죠, 제가 그런 건 잘 안 입었죠. 멋있을 거라 확신합니다(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팬들이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일단 제가 비주얼적으로 멀쩡하게 나오니까(웃음). 저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예전에는 제가 연기하는 걸 알고 갔다면 이번에는 모르고 가려고 해요. 오버하지 않고 충실히 대본을 따라갔을 때 어떨지 저도 궁금해요.
이런 변화의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글쎄요, 예전에는 일할 때 항상 막내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도 나이지만 제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스스로 많이 달라진 느낌은 들어요. 어떤 걸 할 때 깊이도 달라지고. 예전에는 술자리도 좋아하고 사람들도 마냥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더라고요. 예체능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라 스스로도 좀 어색한데, 지금은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고, 연기도 좀 더 잘하고 싶고, 그래서 공부하게 되고 그래요.
<키다리 아저씨> 의 경우 초연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고 기존 배우들이 구축한 제르비스 이미지도 확고한 편이라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삼연까지 구축된 장치나 약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불편하긴 했어요. 창작을 많이 하다 보니 제가 해석한 대로 캐릭터도 만들고 드라마 라인에도 관여했던 면이 있는데, 이미 정리가 된 작품이라 지금까지 작업했던 방식과 달라서 초반에는 좀 힘든 면도 있었는데, 익숙해진 뒤에는 조금씩 저를 입히고 있죠. 연출님이 ‘너는 어떤 제르비스인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첫 등장 때 어떤 제르비스가 나올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연습을 하다 보면 제르비스와 실제 김지철 씨가 비슷한 점, 다른 점도 보일 텐데요.
그 내용은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어쨌든 사랑 이야기잖아요. 로맨티스트적인 면도 있나요?
꽃을 들 정도는 아니고, 약간 츤데레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본심을 솔직히 다 얘기하는 편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담아둔 상태에서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고, 그것을 인지했을 때 그 사람과 통하길 바라는 거죠. 그냥 경상도 남자예요. 말수 없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알겠지?’ 하는 마음. 의리는 있습니다(웃음).
혼성 2인극이라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요. 각각의 제루샤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일단 서로 보지 않는 입장이고 편지로 드라마 라인이 이어지는 형식인데, 전체적으로는 제루샤가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최대한 그 흐름에 짐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노래나 외향적으로 서 있는 모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도 신경 쓸 텐데, 가장 중요한 건 연기적인 호흡이겠죠. (유)주혜와는 많은 작품을 했는데,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신경 쓰고 있어요. (이)아진이는 가장 어린데 그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강)지혜는 이미 잘하니까 저만 잘하면 되겠죠. 제가 다른 시도를 해도 다 맞춰주지 않을까.
<키다리 아저씨> 는 어려서부터 책이나 만화, 영화 등으로 접하게 되는데, 뮤지컬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본 첫 페이지에 무대 구현을 위한 디렉션이 정확히 적혀 있어요. 예를 들어 이 극은 두 남녀가 마지막까지 절대 보면 안 되고, 관객한테 상대방인 것처럼 대사를 하고. 극의 형태를 완벽히 갖추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관객들도 기존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넘버가 정말 좋아요. 내용이 음악적으로 표현되고, 대사와 흐름이 연결됐을 때 그 매력은 배가 되거든요. 각 배우의 조금씩 다른 해석과 포인트를 찾아보시는 것도 큰 재미가 아닐까.
<키다리 아저씨> 의 제르비스를 통해 또 다른 이미지로 변신할 수도 있잖아요. 내년에는 또 본격적으로 활동할 텐데, 작품이나 배역에 있어 생각하는 방향이 있을까요?
당연히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죠. 개인적으로 배우로서 좀 더 욕심을 내고 싶다고 할까요. 현재를 살아가려면, 스스로 만족하면서 또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방면으로 도전하는 것일 테고요. 뮤지컬 쪽으로는 라이선스나 대극장 공연도 참여하면 좋겠고, 다른 매체도 도전하고 싶고, 흥행을 떠나 깊이 남을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뭔가 푹 빠질 수 있는 작품이요. 그건 작품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제작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온전히 저를 믿어주고, 각자 또 함께 토론하면서 이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정말 함께 하고 싶어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