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령 작가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라이프 스타일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을 거쳐 현재 『럭셔리』 의 편집장이자 매거진본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틈틈이 번역을 하고 칼럼을 쓴다. 『바보들은 항상 여자 탓만 한다』 , 『비즈니스 라이팅』, 『럭셔리 이즈』 등을 썼고 『패스트푸드의 제국』, 『침묵의 봄』 , 『나이 드는 것의 미덕』, 『존 로빈스의 인생 혁명』 등 20여 권을 번역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기억하는 한,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 늘 읽을 것이 많았어요. 신문 네댓 종류, 여러가지 잡지를 구독했고 방 여기 저기에 책이 놓여 있던 기억이 남아 있네요. 아버지가 지방 발령을 받아 엄마와 아기였던 남동생이 함께 내려가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저는 외가댁에 남게 되었어요. 외가에도 꽤 큰 서재가 있었고 엄마와 이모, 삼촌이 대학 다닐 때 읽던 책들, 외국 패션 잡지와 인테리어 잡지들도 많았는데 도대체 저 책 속에는 무슨 이야기가 써 있는지 궁금했고 얼른 커서 읽어 볼 테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으로부터 무엇을 읽으라거나 무엇은 읽으면 안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던 것도 행운이었지요. 책 읽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제재도 하지 않고 그냥 보고 싶어 하는 책은 사준 대범한 부모님들 덕분에 동화책으로 시작해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 공부보다 만화책에 잡지에 연애 소설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어요. 대학 들어가서는 그 당시로는 드문 완전 개가식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읽었고 그러다 보니 제일 많이 했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읽고 쓰는 일이 되어서 운 좋게 잡지기자로 일하며 번역도 하게 되었네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을러서 움직이기도 싫어했고 그나마 좋은 것이 그냥 책 펴 들고 읽는 것이었어요.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사춘기를 보내며 귀찮게 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제일 속 편한 방법이 책 읽기였고요. 그러다 보니 세상 대부분의 일을 책으로 배운 것 같아요. 직접 맞고 주먹을 날리는 경험을 통해 싸움을 익히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는 ‘싸움의 기술’에 관한 책을 먼저 찾아보는 스타일일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는 조금 비겁하고 소극적인 인간이 아닌가 반성하기도 하지요.
독자 입장에서 책은 가장 적은 비용과 시간 투자로, 한 주제에 관해 가장 절절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을 쓴 작가들의 고생을 통해 큰 도움을 받는 것 같아서 가끔 책값이 터무니없이 싼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요. 물리적인 경험으로도 즐겁습니다. 전자책을 보기도 하지만 역시 종이책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책 읽는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툼한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남는 부분이 얇아질 때, 그만큼이 내 것이 된 것 같은 묘한 성취감과 약간의 중독성을 느껴요.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책읽기만큼 좋아하는 게 음악 듣기인데, 요즘은 음악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함께 읽는 즐거움이 더 커졌어요. 일단 흥미 있는 책이라면 보이는 순간 사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는데 1950년대부터 2000년까지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와 매혹적인 순간을 소개하는 『모던 팝 스토리』 (밥 스탠리/북라이프), 대중음악 전문기자가 존 레넌과 밥 딜런, 커트 코베인 등 팝음악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설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노래가 되었나』 (로버트 힐번/돋을새김), 명반으로 선정한 LP 30장과 함께 인생과 음악 이야기를 플어 놓는 『판판판』 (김광현/책밥상), 60년 넘는 세월 동안 새로운 음악을 소개해온 레코드 사 모타운의 역사를 멋진 사진과 함께 담은 『MOTOWN』 을 읽고 있습니다.
패티 스미스의 젊은 날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저스트 키즈』 는 읽고서 너무 좋아서 출장 간 길에 하드커버의 원서를 구해왔습니다.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결성부터 20년 간 활동을 담은 아트북 『콜드플레이』 과 프레디 머큐리의 평전을 그래픽 노블로 푼 『퀸, 위 아 더 챔피언』 은 ‘팬심’으로 최근 구매한 책입니다.
최근작 『밥보다 책』 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겁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추천하는 일이에요. 환경도, 취향도 관심사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음식점이나 여행지, 음악과 영화를 권하기란 엄청난 모험입니다.
40대에 느낀 고민과 이 고민에 관련한 책들의 이야기를 엮어 이번에 『밥보다 책』 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추천이나 권유를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편한 고백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책은 일종의 ‘중간 정산’ 느낌으로 썼는데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 특별히 좋아하거나 의미를 둔 대상을 통해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겁더라고요. 10년 후 같은 주제로 다시 책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기대되기도 합니다.
명사의 추천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환경 분야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 책을 제대로 번역 판권 계약해 한국에 소개하는 작업을 맡아서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납니다. 1960년대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지금도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이라는 사실에 여전히 놀라게 됩니다. 시인의 심장과 과학자의 눈을 지닌 작가의 우아하고 단정하며 정확한 글에 감탄하면서 번역을 했어요. 이 책 이후 레이첼 카슨 전집이 기획되어 소개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대표작인 『바닷바람을 맞으며』도 한국어로 옮겼는데 카슨의 책을 통해서 좋은 글쓰기 공부를 한 것 같아서 많은 번역 작업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저 | 지호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반가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결혼을 하면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책들을 한데 섞는 과정에서 느낀 약간의 긴장에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안심했고 어떤 주제에도 해당하지 않은 책들을 모아 놓는 ‘자투리 책꽂이’ 부분에서는 격하게 공감하게 되실 겁니다.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 같은 동시에 또 각자 다 다르다는 생각에 서가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기분 좋게 읽고 또 읽는 독서 에세이입니다.
반지의 제왕
J. R. R. 톨킨 저 | 씨앗을뿌리는사람
눈에 보이고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만 읽어야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하고 공허할까요. “상상하는 건 모두 존재할 수 있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 구절이 바로 제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라 할 수 있지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상한 반지를 발견했고, 왜 돌려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는지를 놓고 요정과 호빗과 난쟁이와 인간과 악령이 싸우고 연대하는 이야기인데 스케일과 구성이 압도적이라 읽을 때마다 새롭게 감동하지요.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꼭! 책으로 읽어주세요!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저/이민아 역 | 알마
인생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던 사람. 젊어서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최고의 속도를 느꼈고 역도에 빠져 극한까지 연습을 했고 신경과 의사가 되어 인간의 뇌와 정신을 탐구한 선구자였으며 10여 권의 책을 낸 작가로 최고의 지적 탐구를 이어가다 노년에 이르러 발병한 암과의 싸움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을 쉬지 않았던 올리버 색스가 남긴 자서전입니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저 | 민음사
대학교 수업 시간에 강독 텍스트로 처음 읽은 후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되었는데 고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언제나 영원히 현대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기 싫어하는 여자와 얄미운 남자. 어딘가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 성격희극의 원본이 되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결혼과 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가치에 관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쉬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과 주장을 펼쳐 나가는데 읽는 도중, 이들의 이야기에 불쑥 끼어들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으니 여러분들도 동참해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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