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전문출판사 열화당의 계정 은 책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으로 가득하다. 예술 서적을 읽을 때, 문득 이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어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열화당의 피드를 찾아보자. 열화당의 계정은 책 속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를 찾아간다. 책과 관련된 전시, 사진전, 건축물, 고택 등 예술이 있는 공간에 책이 놓인다. 책 사진 또한 수묵화처럼 정갈하다. 배경이 모노톤인 이유는 흰 표지가 많은 열화당의 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독자들이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예술 분야와 접속하기를 바란다는 이수정 실장을 서면으로 만났다.
열화당 계정은 인친소에서 ‘요즘 가장 재밌게 보는 계정’에 2번이나 언급됐어요! 계정을 만드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놀랍고 기쁘네요! 2016년 8월에 첫 게시물을 올렸는데, 그때가 존 버거(John Berger)의 드로잉 전시 <존 버거의 스케치북> (2017)을 준비하던 즈음이었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존 버거의 사계>도 나오고요. 그 후로 서울이나 지방에서 저희 책과 관련한 전시를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 소식들을 공유하려고 올리다가 계속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편집자이지만 책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주는 작업도 하다 보니, 게시물도 책에서 공간으로 확장되거나 공간이 책과 함께 이야기되거나 하는 식이 많아요. 저희 사옥이나 출판도시 풍경을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찍어 올리기도 해요. 특별히 정해진 규칙 없이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제 시간이 가능한 선에서 좀 느슨하게 올리는 편이에요.
2017년 봄,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존 버거의 스케치북> 풍경. ⓒ황우섭.
열화당 출판사의 역사만큼이나, 사진들도 단정하고 깊이가 있어요. ‘책 넘겨보기’ 영상 도 기발하고요.
열화당 책은 대부분 단순한 디자인에 색감이 담백하고, 종이도 코팅 없이 질감 그대로 살아 있어요. 새로운 제본 방식이나 재료도 계속 탐구하고요. 그래서 이 점을 디테일하게 드러내려 해요. 대부분 사진은 제가 직접 찍지만, ‘책 넘겨보기’ 영상은 미리 보기 방식을 달리 고민하던 중 디자인팀 막내가 만들어 주었어요. 책의 물성을 좀 더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시간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쉽지 않네요. 기회가 된다면 디자이너, 사진가, 예술가, 영상작업자들과 책을 두고 실험적인 작업을 해 보고 싶어요. 이를 전시에도 활용하고 싶고요.
2018년 겨울, 피크닉(Piknic)에서 열린 '겨울책방' 풍경.
열화당 책과 관련된 전시와 공연 소식이 올라와요. 이 정보가 유용하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전시/공연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노하우가 있으시다면요?
소개되는 전시는 크게 4가지 성격으로 나뉘는데요. 우선 저희 사옥에 있는 ‘열화당 책박물관’ 전시로 일 년에 한두 차례 테마를 바꿔 열어요. 이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만드는 책을 오랜 책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려는 데 있어요. 큰 지도를 그려보는 거죠. 다음은 자체 기획이나 초청으로 외부에서 하는 전시인데, 열화당 책과 함께 회화, 영상, 설치 등을 곁들이고 북 토크를 하기도 해요. 부정기적 행사죠. 작년엔 회현 피크닉에서 ‘겨울책방’을 열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미술관이나 예술가와 연계해 내는 책도 많다 보니 그 전시도 자연스레 소개하게 돼요. 최근엔 희곡 『래러미 프로젝트』를 내면서 연극공연 도 함께 전했어요. 마지막으로 저희 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제가 소개하고 싶은 전시를 올리기도 해요. 여기엔 책을 읽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나 시의적인 문제와 연결해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 크게는 모든 전시 소식이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부산대학교 인문관
운영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보람을 느낄 정도의 실력 발휘는 못하고 있고요. (웃음) 인상에 남았던 때를 말씀드릴게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 김중업의 회고전이 열리면서 열화당이 같은 제목으로 『김중업 다이얼로그』를 냈는데요, 책을 준비하던 중인 그해 4월 부산에 출장 갔다가 김중업이 1950년대 말 설계한 부산대학교 인문관(옛 본관) 에 들렀어요. 편집자로서 그의 초기 대표작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토요일이라 한산한 건물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며 사진을 찍었어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심히 게시물을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좀 의외였어요. 책 사진도 아니고 요즘 사람들에겐 생소한 건축가가 설계한 학교 건물인데 말이죠. 자신의 모교임에도 이 건물의 내력을 처음 알았다는 분, 외국에 사는데 열화당에서 올리는 사진들을 보면 위로가 된다는 분의 댓글이 기억에 남아요.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접하는 여러 상황을 편집자로서 이야기해 주는 걸 좋아하시는 듯해요.
요즘 가장 재밌게 보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진행하는 책 때문에 지난여름 팔레스타인에 다녀왔는데요, 그곳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구입한 『비다야트(Bidayat)』라는 잡지의 아트디렉터 야나 트라불시의 계정이에요. 이 잡지는 레바논에 거점을 둔 진보적 아랍 문화예술 계간지로 ‘모든 변화를 위한 시작’이라는 슬로건으로 발행되고 있어요.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일러스트레이션의 사용 등이 세련되고 대담해요. 읽을 수 없지만 아랍 문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느낀 첫 경험이었어요. 게시물은 디자인 작업보다는 직접 그린 일러스트레이션들이 많지만 번역 기능을 이용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박지훈 그래픽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본과 중국의 잘 만들어진 책을 입체적으로 촬영해 소개합니다. 레터프레스, 수제본 등 손으로 하는 활자와 책 만들기 과정도 종종 올라오는데, 책의 물성을 밀착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책 만듦새를 드러낸 『파리덫』소개 사진
이 책은 내가 홍보하지만 참 좋다 하는 책을 1권 추천해주세요.
스웨덴의 곤충학자이자 작가인 프레드리크 셰베리의 자전적 에세이 『파리덫』 이요. 정말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책입니다. 신견식 번역가의 번역도 우리말의 맛을 살려 잘 되었고요. 디자인에서는 파리덫을 연상시키는 시스루 용지로 세 가지 레이어를 주는 시도를 했습니다.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주위에 권해 한번 읽은 분들은 다 좋아하시는데, 아무래도 생소한 나라와 소재여서인지 많이 알려지지 못해 정말 아쉬워요. '파리만, 그중에서도 꽃등에만, 오직 룬마뢰 섬에서만 모은다'는 스스로 정한 한계 안에서 저자가 어떻게 자연의 풍경을 읽는 기쁨을 누리는지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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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덫프레드리크 셰베리 저/신견식 역 | 열화당
파리 수집을 매개로 끊임없이 자신을 탐색하는 명상과 무아(無我)의 리듬이 뒤섞인 이 책은,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발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각자 나름의 ‘풍경의 독해력’ 하나쯤 갖추어 보라고 충동질한다.
김윤주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diotima1016@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