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읽기 좋은 판타지 소설 『피어클리벤의 금화』, 순수와 환상을 담은 이야기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 사랑의 생과 사가 기록된 책 『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피어클리벤의 금화』
신서로 저 | 황금가지
저는 이 소설을 e북으로 읽었어요. 리더기로 읽을 법도 한데 굳이 핸드폰으로 읽었고요. 그 이유는 출퇴근 시간에 다 읽었기 때문이에요. 이 이야기는 출퇴근길에 읽기 너무 좋습니다. 꼭 강조해드릴 사항이 있어요. 지금 2권까지 출간이 됐는데, 10월 20일까지 1권 e북을 무료 대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2권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대여하고 있어요. ‘이것은 읽어야 된다’라는 거죠(웃음).
『피어클리벤의 금화』 는 신서로 작가의 소설이고, 전형적인 무대의 판타지예요. 용, 고블린, 트롤, 마법사, 검사, 귀족, 영주, 제국, 검을 쓰는 장면, 마법을 쓰는 장면도 나와요. 대개는 판타지에서 용, 검사, 마법사, 제국, 변방이 나오면 전쟁 이야기인데요. 이 소설에도 그런 스토리라인이 있는데, 이 스토리에서 저 스토리에서 넘어가는 방법이 ‘교섭’이에요. 1권의 처음에서 용이 주인공에게 다짜고짜 ‘너를 먹겠다’고 이야기해요. 주인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나를 먹어서는 안 될 이유’에 대해서 용과 교섭을 벌여요. 그랬을 때의 주제는 지극히 철학적인 것이 되는 거죠. ‘왜 나는 너를 먹을 수 없는가.’ 주인공은 ‘너는 나와 대화를 하고 있고, 대화하는 것을 식재료로 볼 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요. 용은 ‘왜? 너희는 대화가 통하는 것들이 서로 죽이잖아’라고 이야기하고, 주인공은 ‘아니다, 말이 통했다면 나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해요. 용은 ‘하지만 나는 강하고 너는 약하니까, 나는 너를 먹을 수 있지 않아?’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요. 스토리라인이 이어지는 것 자체가 다 ‘대화’와 ‘교섭’인 거죠.
정말 딜의 교과서예요. 자본주의 입문의 개념도 있고, 교섭의 개념도 있고, 말하기의 기술도 있고, 교양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법률도 망라하고, 경제적인 것도 망라해요. 그리고 교섭을 하는 중간 중간에 철학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거예요. 도대체 용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국은 왜 이런 식으로 땅을 넓혀가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종’과 어떻게 연합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예전에 판타지 소설이 많이 나오던 시기에 열심히 읽으셨던 분이라면 굉장한 기시감을 느낌과 동시에 새로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래곤 라자』 를 많이 떠올렸어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중간 중간에 감초처럼 유머를 치는 방식이 있었는데, 그 방식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 말장난이 이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갈 힘을 줘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 글 / 메리 쉐퍼드 그림 / 우순교 역 | 시공주니어
제가 너무 너무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커다란 가방과 우산을 들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유모의 모습은 이곳저곳에서 많이 보이는 이미지죠. 그런데 저는 이 책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동화를 많이 안 읽었던 축에 드는데, 이 책도 30대 중후반에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너무 재밌어서 펴는 순간 끝까지 쭉 읽게 돼요.
제가 얼마 전에 퀸즐랜드 관광청 초청으로 호주에 다녀오고 나서 다시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봤더니, 놀랍게도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가 호주 퀸즐랜드 출신이더라고요. 문명이라는 게, 자연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것들을 끊어내고 인간이 만든 체계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자연 속에 있는 힘 같은 것을 저자는 어린 시절에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메리 쉐퍼드예요. 메리 쉐퍼드의 아버지는 『Winnie The Pooh』 클래식을 그린 어니스트 쉐퍼드입니다. 아빠의 영향으로 그 그림체가 남아있어서, 이 책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너무 좋습니다.
벚나무길 17번지 집이 무대이고요. 이곳에는 엄마, 아빠, 네 명의 아이들이 있어요. 첫째 제인, 둘째 마이클, 존과 바버라 라고 하는 쌍둥이 아기들이 있고요. 유모가 그만두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모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어디에선가 현관문이 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서 제인과 마이클이 창밖으로 내다봤더니, 바람을 타고 유모가 나타난 거죠. 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유모를 쓱 들어다가 안으로 던지는 것처럼 들어오는 거예요. 이 유모가 바로 메리 포핀스인데요. 아주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아이들이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이를테면, 메리 포핀스가 양탄자로 만든 가방이라면서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왔어요. 아이들이 가방 안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꺼내요. 유리병을 꺼내서 ‘너희들 기침하는 것 같은데 약 먹어’라고 하면서 뭘 따라주는데 매번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른 거예요. 너무 너무 근사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는 이야기예요. 너무나 귀엽고, 아름답고, 읽어보면 그럴 법한, 재밌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책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해서 예전에 책에도 썼던 장면은 뭐냐 하면,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패니와 애니라는 자매가 있어요. 그 자매와 메리 포핀스가 밤에 만나서 사라지는 거예요. 아이들이 창문에 붙어서 어딜 가는지 지켜보는데, 패니와 애니가 하나씩 사다리를 받쳐서 밤하늘에 닿을 정도가 돼요. 그러자 메리 포핀스가 진저 쿠키에 붙어있던 금박 종이 별을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요. 그리고 밤하늘에 풀칠을 하고 별을 하나씩 붙여요.
아주 순수하고 도시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영국 특유의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고 매력적인 캐럭터와 함께 그려냈고요. 이 책은 어른들도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의 선택 - 『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올린카 비슈티차, 드라젠 그루비시치 저 / 박다솜 역 | 놀
이 책은 사람들이 ‘이별의 박물관’에 보낸 이별과 관련된 물건들, 사연들을 엮은 거예요. ‘이별의 박물관’은 자그레브, LA에 있다고 하고요. 이 박물관을 기획한 두 사람이 이 책의 공동저자인데요. 올린카 비슈티차는 전시기획자이고,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시각예술가예요. 둘 다 크로아티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연인이었어요. 4년 동안 사랑을 하면서 같은 집에서 살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한 집에서 살았대요. 그 집안 곳곳에 지나간 사랑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죠. 그것들을 보면서 ‘이 이별의 흔적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걸 다 모아두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대요. 그래서 처음에는 지역 축제에서 컨테이너에 마흔 점 정도의 물건을 선보이다가, 각국의 초대를 받아서 전시를 하게 됐고, 박물관도 생겼고,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사람들이 보내온 물건의 사진이 한 페이지에 실려 있고요. 그 옆 페이지에는 함께 적어 보낸 짧은 글귀가 실려 있어요. 사진 아래에는 물건의 이름, 날짜, 지역이 적혀 있습니다. 이 물건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억을 담고 있는지, 어느 지역에서 보내온 것인지에 대한 기록인데요. 저는 이게 사랑의 생몰연도와 거주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태어나서 죽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고요. 책을 볼수록 사진만 보고도 사연을 상상하게 돼요. 사랑이라고 하면 연인의 사랑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책에는 다양한 사랑과 이별이 담겨 있어요.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이야기도 있고요.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어요.
평소 사랑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는데요. 이 책에는 페이지마다 사랑의 서사가 담겨 있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때로 삶은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극적이잖아요. 그런 사연들이 모여 있으니까 굉장히 농도 짙은 사랑 이야기를 훅 흡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01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