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버금 “노력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많이 연습해왔지만, 정작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서투르잖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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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있다. 서운한 것 같기도, 슬픈 것 같기도,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마음. 김버금 작가는 그렇게 늦은 밤까지 뒤척이게 만드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낡은 국어사전을 펼쳐 들었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마음과 관련된 단어들을 빼곡히 모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슬픔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 작가는 마음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었다.


작가는 말한다. “모른 채 외면했던 마음들에 인사를 했다. 안녕, 너는 불안이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슬픔아. 모든 마음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마음에게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알았다.” 텀블벅 에세이 분야 1위, 브런치북 6회 대상 등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김버금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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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으로 진행한 텀블벅 펀딩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브런치북에서도 대상을 받으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텀블벅 펀딩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브런치에서도 이런 결과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놀랍고 얼떨떨했어요. 에세이란 장르 특성상 제 이야기가 많은 데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사롭고 내밀한 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거여서요. 저에게만 한정될 수 있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분들께 가 닿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모른 채 흘려보냈던 내 마음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데에 공감을 보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썼던 글들을 쭉 모아보면 남다르거나 특별한 마음을 말했던 적은 없거든요. 누구나 느꼈을 테지만 알지 못해 흘려보냈던, 그런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 ‘사실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을 느낀 적이 있어.’ 하고 편지 쓰듯이,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이 책은 마음에 대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요. 왜 ‘단어’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되셨나요?


글을 쓰기 전부터도 저는 ‘당신의 사전’이라는 제목을 먼저 가지고 있었어요. 사전 형식의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사전을 엮을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상태였죠. 사전 형식에 매력을 느꼈던 건 ‘모를 때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다’는 특별함 때문이었어요. 어떤 책은 무척 재미있게 읽어도 한 번 덮고 나면 다시 잘 찾지 않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전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쓰는 사람의 바람으로, 내가 쓴 책이 곁에 두고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당신의 사전’이란 제목 또한 ‘나의’ 사전이 아니라 ‘당신의’ 사전으로까지 나아가기를 바랐던 제 꿈이 담겨있기도 하고요.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작가님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요?


제 대답은 놀랍게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종종 물으실 때가 있어요. 이렇게 솔직하고 내밀한 글을 쓰면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지, 그 변화 때문에 글쓰기를 지속하는지를 궁금해하시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달라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한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은, 그런 점이 저에게 실로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많은 분들이 외면했던 마음을 마주하거나, 묻어두었던 마음을 꺼내서 들여다보는 일에 어떤 대단한 용기와 변화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세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글쓰기를 주저하거나, 혹은 마음을 깨닫는 일을 두려워하시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의 경험으로는 맞닥뜨리면 나를 무너뜨릴 것만 같았던 마음과 마주하고서도 여전히 해는 뜨고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며 나의 하루에는 조금의 변함이 없습니다. 외면하고만 싶었던 마음을 들여다보아도 아무 변화가 없다는 거, 이보다 시원한 답이 또 있을까요?

 

작가님의 글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 같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사랑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노력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노력이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노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나에게서도 인정을 받으려 매일 끊임없이 노력해요. 학교와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요. 그렇게 매 순간 들이는 노력이 ‘나’를 더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노력이 ‘나’를 소진시킨다고 생각해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관계가, 그렇지 않은 관계보다 되려 잘 되지 않는 것처럼요. 타인의 다양한 모습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0가지의 ‘나’ 중에 ‘완벽한 나’를 내려놓는 순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른 99가지의 ‘다양한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 가장 쓰고 싶은 마음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이 단어는 아직까지 쓴 적이 없었는데, ‘행복하다’는 단어를 쓰고 싶어요. 방금 전 스스로도 느낀 거지만 유독 행복이란 단어에 높은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늘 이보다 더 좋은 상태, 더 기쁜 상태일 때만이 행복이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요.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지금 상황도 충분히 행복한 상황이 되었네요.

 

글을 쓰며 만나거나 마주했던, 작가님의 마음에 새겨진 독자의 반응이 있었다면 한 가지만 나누어주세요.


글을 쓴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무렵에 한 댓글을 남겨주신 독자분이 계셨어요. 핸드폰의 화면을 꽉 채우고도 아래로 더 내려서 읽어야 할 만큼 아주 긴 댓글이었는데요. 조금 줄여서 말하자면, “오그라드는 말일 수 있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마음을 알아가는 연습을 차츰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남겨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처럼 긴 길이의 댓글을 써주신 정성에도 무척이나 감사했지만, 독자분께서 해주신 그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오그라드는 말일 수 있지만”으로 시작하는 부분이요. 사실은 ‘오그라든다’는 말로, 함부로 숨겼던 마음들이 저에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글이 아니었다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영영 모른 척했을 마음이기도 해요. 혼자 쓴 글은 독백일지라도 이렇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순간 글은 대화가 된다는 걸, 그때 실감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댓글에 오히려 제가 용기를 얻어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마음을 알 수 없어 잠 못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졸리면 하품이 나오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 소리가 나듯이, 잠 못 이루고 있는 밤이 있다면 꺼내야 할 마음이 잔뜩 쌓여 있다는 신호예요. 이런 마음은 보통 단순하고 또렷한 감정이 아니라 두루뭉술 하고 복잡한 짐처럼 느껴지죠. 이유 모를 걱정, 후회, 허전함, 외로움처럼요. 그 마음이 다가온다면, 인사를 해보세요. 처음 만난 사람과 가까워지듯 오늘 처음 알게 된 나 자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요.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많은 연습을 해왔지만, 정작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서투르잖아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이름을 알아가는 지점을 시작으로, 자신과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김버금


책이 좋아 국문과를 갔고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꿈을 좇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문예창작을 배우고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며, 앓는 마음을 기꺼이 안는 사람이 되기를 종종 꿈꾼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늦은 밤에 쓴다.

 


 

 

당신의 사전김버금 저 | 수오서재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해, 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상처와 기억, 다짐과 문득 솟아오르는 작은 깨달음에 대해 작가는 형용사 하나, 동사 하나를 붙여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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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