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 MHz>의 포스터
한국 공포영화가 공개되면 ‘아무튼’ 보게 ‘된다.’ 순전히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튼’ 수식이 붙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보게 ‘되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왜 보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만듦새의 공포영화 속에서 <소름>(2001) <불신지옥>(2009) <곤지암>(2018) 등과 같은 괜찮은 작품을 만나서다.
<0.0 MHz>도 처음엔 망설였다. 지인이 원작 웹툰을 재밌게 보았다기에 그 말에 베팅을 걸어보기로 했다. 원작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되면서 누적 조회 수 1.2억뷰를 기록했다. 만화가 강풀은 “한마디로 무섭다! 만화를 보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곤지암>의 시초이자 모티브가 됐다는 보도도 있다. ‘아무튼’과 ‘되는’의 마음가짐을 버리고 영화를 보았다.
실망스러웠다. 꽤 실망했다. 제목의 ‘0.0 MHz’가 귀신을 부르는 주파수라고 해서 이의 설정에서 파생되는 개성 있는 연출을 기대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초자연 미스터리를 분석하는 극 중 대학생들의 동아리 이름이라는 정도 빼면 이 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특별한 주파수는 별다른 메리트를 갖지 못했다. 대신 102분의 상영 시간을 채우는 건 공포 효과를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클리셰들이었다.
시골 마을의 어느 깊은 산속 집에서 여인이 목을 매단 채 죽는 일이 벌어진다. 폐허가 된 이곳에 0.0 MHz 회원 다섯 명이 (곤지암이 아닌) 우하리를 찾아 귀신을 부르는 주파수를 증명하려고 각종 카메라와 컴퓨터 기기를 설치하고 하룻밤을 보내려 한다. 회원들이 여인이 자살했던 방에 들어가 혼령을 불러내는 강령술을 행하고 일종의 실험체를 자처한 윤정(최윤영)은 갑자기 온 몸을 비틀지만, (당연한 수순이듯) 이내 장난인 것으로 밝혀진다.
영화 <0,0, MHz>의 한 장면
유독 소희(정은지)의 상태만 좋지 않다. 이유가 있다. 용한 무당의 딸 소희는 귀신을 보는 눈을 가졌다. 강령술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귀신이 어딨어, 기고만장해진 화원들을 향해 소희는 “한 번 달라붙은 귀신은 끝까지 물어뜯는 법이야” 일갈하고 이를 신호탄 삼아 머리카락 귀신의 공격이 시작된다. 남자를 향한 원한에 사무친 머리카락 귀신의 공격을 막을 이는 소희뿐. 도와줘, 소희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할머니에게 도움 요청을 하는데...
주파수의 설정을 활용 못 하는 것처럼 영화는 소희의 특별한 능력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인상이다. 그녀 눈에만 보이는 할머니도 인상 쓴 모습으로 몇 차례 등장 할 뿐 귀신을 쫓아내는 데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웹툰이 형식상 동작하지 않는 컷이 주는 여백으로 상상력을 자극해 극도의 무서움을 선사했다면 컷과 컷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워야 하는 영화는 예상 가능한 움직임으로 채워 ‘아무튼’ 보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한국 공포영화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는 ‘첫’이다. <0.0 MHz>의 보도자료에도 ‘2019년 첫 한국 공포’ 소제목이 붙은 페이지가 있다. 그런 안일한 접근이 늘 기대치에 현저히 떨어지는 공포물을 양산하는 원인 중 하나일 거다. 완성도에 상관없이 여름 시장에서 ‘첫’의 타이틀만 확보한다면 저예산의 특성상 ‘아무튼’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운이 좋으면 큰 수익을 보게 ‘된다’는 속된 말로 ‘안전빵’의 기획 말이다.
창작자에게 저예산은 부족한 환경을 독특한 아이디어 혹은 개성으로 돌파하는 일종의 기회다. 물론 새로움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듯 탄탄한 이야기가 바탕이 된 클리셰의 능수능란한 활용도 장르 팬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방법의 하나다. <0.0 MHz>는 이 두 가지 점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로 실망을 준다.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이 영화의 주파수는 어떻게 맞춰야 할까. 아무튼, 영화를 보게 됐고, 어찌 됐든 리뷰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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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