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과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세상엔 ‘까다로운’ 시스템과 ‘복잡한’ 시스템이 있다고요.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지난 1차 산업혁명에서부터 3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세상을 까다로운 세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해왔어요. 더 어려운 학문, 더 정밀한 기술,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면서 역사를 발전시켜온 셈이에요. 반면에 우리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만들어갈 세상은 이제까지의 까다로운 세상을 복잡한 세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될 거예요.
도대체 까다로운 것은 뭐고 복잡한 것은 뭘까요?
이 둘을 비교할 때 자주 드는 예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항공기를 만든다고 생각해봅시다. 항공기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에요.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서,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우리가 어렵게라도 항공기 만드는 법을 터득하면, 그때부터는 예측에 따라 항공기를 설계할 수 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반복적으로 똑같이 항공기를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제트엔진이나 인공심장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모두 대단히 까다롭게 만들어지지만, 우리는 기술로 그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요. 이런 분야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온 쪼갠 다음 조립하는 방식이 놀라울 만큼 잘 통해왔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시스템은 다릅니다. 우리가 오늘의 일기예보가 맞았다고 해서 내일의 일기예보도 정확할 거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시스템은 예측하고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복잡계 과학자이자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닐 존슨은 복잡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피자 만들기는 까다로운 일이지만 복잡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피자를 만들면서 동시에 자동차 타이어 교체와 세금 정산을 해야 하고, 각각의 업무는 다른 두 업무의 진전 상황에 따라 밟아야 하는 절차가 달라진다고 해보세요. 이때 비로소 복잡성이 발생합니다.”
조금 어려운가요? 이 말은 시스템 내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복잡하지 않더라도, 그 구성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면 전체 시스템이 복잡해진다는 뜻이에요. 시스템 내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면 그 연결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최종 결과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연결되어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복잡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모범답안을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전처럼 사고하는 습관을 ‘멈추는’ 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멈춰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하는 것들을 비로소 의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우리는 까다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을 익혀왔지만, 앞으로는 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려 하면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MIT 미디어랩 소장인 조이 이토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사람들의 정신적 습관 중 고질적인 문제는 한결같습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이해 능력을 뛰어넘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어서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버려야 해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예전에는 그저 바보짓이었다면, 세상의 복잡성 지수가 몇 배나 증가한 지금은 아예 부질없는 짓입니다.”
해당 분야의 연구자가 아닌 이상, 우리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으려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개별 기술을 분석하고 이해한 후 그것을 적절히 조합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려는 거죠. 그러나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제 이런 전략은 쓸모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새로 나온 기술부터 모두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정작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개별 기술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입체적인 구조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사고 습관을 송두리째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나 방향을 안다면 변화할 준비는 된 것입니다. 자, 우리 함께 까다로운 세상에 머물러 있던 사고 습관을 과감히 내던져볼까요?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만들어봅시다. 복잡한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의 패턴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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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손승현 저 | 더난출판사
읽기 쉽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동시에 무수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간간이 등장하는 삽화와 배경음악은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경영서를 끝까지 읽게 하는 당의정 구실을 톡톡히 한다.
손승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로스쿨을 마친 뒤 제3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현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TMT(Technology, Media and Telecom) 팀에서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구글, 우버, 넷플릭스, 애플,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IT 기업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