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진단받은 저자는 택시 안에서 약 봉투를 꼭 쥔 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나 우울증이래.”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 대신 나의 남편을, 아버지를, 직장 동료를, 아는 남자를 대입해본다. 상대가 누구든 당혹스럽다. 우울증을 고백하는 다 큰 남자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생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의 우울증 에세이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는 누구에게나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진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동안에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아픔을 마주했을 때, 당사자와 주변인으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책을 어떻게 쓰지? 별로 안 아팠던 거 아냐? 같이 생각하실 분도 있을 수 있을 텐데요, 최근까지 우울증을 앓았던 당사자로서 ‘우울증’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울증은 한마디로 뇌에 세로토닌 등 이른바 ‘행복 호르몬’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입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로 발생한 스트레스 때문에 호르몬 균형이 깨지고 결국 우울증에 걸린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의욕과 흥미가 없어지고 불안감을 크게 느끼게 되는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물론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회복이 돼 예전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저도 치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몸 상태가 좋아졌고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이에게 우울증을 고백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책을 쓴다는 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지는 셈인데, 어떻게 책을 낼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치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투병 과정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아픔’ 혹은 ‘시련’도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데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기자라는 직업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우울증과 우울증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책을 통해 이런 부분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었습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 아내였어요. 질문지를 정성껏 작성해 남편의 주치의를 만나고, 숨어서 약 먹지 말라고 용기를 주고, 식단도 꼼꼼하게 관리해주는 아내 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일까요?
“너 아내한테 진짜 잘해야겠더라.” 책 나오고 난 뒤 제 주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더 잘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아내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가족이 없었다면 치료 과정은 훨씬 더디고 힘들었을 겁니다. 옆에서 늘 저를 지켜보면서 지지해줬습니다. 가족은 유명한 의사나, 최신 치료 기법이나 약물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책에 보면 자신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냐고 떠보는 무례한 동료가 등장합니다. (정확히는 “혹시 나 때문에 우울증 걸린 거라고 생각해?”라고 물었죠.)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주변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로한답시고 어설픈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 말을 안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상대방이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는지 아닌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나도 우울해”, “의지가 약해서 그래”, “마음을 강하게 먹어” 등과 같은 표현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저런 말을 들으면 누군가 송곳 수백 개로 저를 찌르는 느낌을 받거든요. 대신 차 한 잔 하면서, 혹은 밥을 같이 먹으면서(사주시면 더 좋겠죠^^)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만 줘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인지행동치료에서 쓰이는 방법인 사고(思考)기록지를 활용하고, 우울증을 겪은 시간을 정리해 책까지 내셨습니다. 무언가를 적는 행위가 우울증 치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나요?
굉장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적는다는 건 한마디로 ‘객관화’를 시킨다는 겁니다. 제3자의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는 것이죠.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나를 끌어 올려줄 튼튼한 밧줄 같은 겁니다. 남의 고민은 해결책이 딱 보이는데 정작 내 문제가 되면 헤맬 때가 많죠. 적는다는 건, 내 문제를 남의 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이상 신호를 느끼더라도 정신과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정보도 충분하지 않고요. 책에서 치료 과정이 꽤 성공적으로 그려졌는데, 본인에게 맞는 의사나 병원을 찾는 방법 또는 기준이 있을까요?
일단 회사나 집 근처 병원을 찾아봤습니다. 병원 가기가 꺼려지는데 거리까지 멀면 더 안 가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40대 중반 남성인 저를 더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의사를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순전히 제 기준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는 추천을 받아 병원에 가더라도 본인과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가까운 병원을 가신 뒤 의사나 치료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하게 의사와 이야기를 한 뒤 대안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책이지만 전혀 우울하지 않다”는 리뷰가 있었습니다. 최근 우울증을 다룬 책들이 여럿 출간됐는데요, 작가님이 꼽는 이 책만의 차별점이랄까, 매력은 무엇일까요?
우울증을 다루되 우울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또 담백하게 투병 과정을 써 내려갔습니다.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늘 우울한 일상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유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게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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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김정원 저 | 시공사
환자로서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기자 특유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해, 독자들이 한 걸음 떨어져 우울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lokuloku
201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