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_ 나이키
나이키의 2019년 캠페인 ‘너의 위대함을 믿어’의 광고모델로 박나래가 발탁되자, 인터넷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박나래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대다수의 반응과, “박나래는 나이키 광고 모델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이 그것이다. 물론 조금 더 쪼개어 들여다보면 후자에도 반응마다 온도차이가 있다. “‘나래코기’ 같은 캐릭터로 어필하던 사람이 갑자기 스포츠 의류 브랜드를 광고한다니 어색하다”며 박나래의 캐릭터를 문제 삼는 반응부터, “나이키는 전통적으로 마르고 단단한 체형의 모델들을 선호해 왔는데 갑자기 박나래라니 낯설다”며 짐짓 점잖은 척 나이키의 브랜드 전략을 거론하는 반응, 더 노골적으로는 “운동 안 할 것 같이 생긴 사람을 모델로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원색적인 반응까지. 후자의 반응들은 소수 의견이라 더 격렬하고, 그 탓에 댓글창에서는 종종 불필요한 언쟁이 오가기도 한다.
“하나만 정답이라고? 둘 다 하면 안 돼?” 내레이션을 맡은 보아의 말처럼, ‘나래코기’만이 박나래의 유일한 정답일 필요는 없다. 나이키가 마르고 단단한 체형의 모델을 선호했던 역사가 길었던 건 사실이나, 이번 캠페인에서는 다양한 체형의 모델들을 앞세우며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하는 중이다. 박나래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MBC <나 혼자 산다>와 그의 SNS를 통해 이미 알려진 바 있다. 브랜드 전략으로 보나, 캠페인 방향으로 보나, 평소에 운동을 했느냐 아니냐로 따져보나, 박나래가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될 이렇다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결국 남는 건 보는 이의 가치관이다. 스포츠 의류 브랜드 모델의 체형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평상시 박나래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 먹고 살며 일상을 생활하는 인간의 체형이 어때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 등등의 가치관 말이다. 이런 결과를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박나래는 보는 이의 가치관을 측정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선입견을 거두고 다시 캠페인 이미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두 발을 곧게 뻗은 채 지면에서 도약 중인 박나래는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둔 채 은은하게 웃고 있다. 코미디 무대에 설 때의 과장된 표정연기나, 몸을 띄우기 위해 힘겹게 애쓰는 듯한 표정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광대뼈를 향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그의 입꼬리는 자연스럽고, 그 웃음의 평화로움이 포즈의 역동성과 근사한 대비를 이룬다. 10년이라는 긴 무명시절, 너는 잘 안 될 거라는 주변의 질타, 비호감이라는 노골적인 차별 따위를 이겨내고 마침내 도약하는데 성공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건강한 자긍의 미소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캠페인 하나로 오랜 노동착취의 전력과 회사 내부의 성차별 문제로 얼룩 진 나이키의 브랜드 이미지가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우리는 득의만면한 미소를 짓는 박나래가 스포츠 브랜드의 모델로 서는 게 어색할 이유가 없는 시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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