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극한직업이라고? 세상에 극하지 않은 직업 있나? 예, 영화 보고 리뷰하는 직업이 극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범인 잡겠다고 치킨집까지 차려야 하는 마약반 형사들의 눈물 없이, 아니 웃음없이 볼 수 없는 신세에 비하면 말이죠. 그러니까, 이 글은 리뷰인가, 한탄인가? 어쨌든, 계속 써보도록 하자.
검거율이 너무 떨어져 해체 직전에 몰린 마약반의 고 반장(류승룡), 장 형사(이하늬), 마 형사(진선규), 영호(이동휘), 막내 재훈(공명)은 국제 범죄 조직의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하고 잠복 수사에 나선다. 잠복 장소는 하필 ‘치맥’ 하러 오는 손님 대신 파리만 날리는 동네 치킨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잠복하겠다고 치킨만 먹어대다 치킨만 보면 치킨에 ‘치’, 좋다에 ‘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신 속이 더부룩해지는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치킨집 사장이 장사가 안된다며 폐업 선언을 한다. 손님이 잠복수사 중인 마약반 형사들밖에 없어서. 이에 고 반장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니.
없는 돈, 있는 돈에 퇴직금까지 털어 치킨집을 인수, 치킨집으로 위장해 임시 수사본부를 차린다. 이제나저제나 증거만 잡기 위해 건너편 범죄조직 아지트를 주시하던 차, 손님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고 에라 모르겠다 수원 왕갈비 레시피에 치킨을 섞어 파니, 그 맛이 아주 일품이라 ‘마약 치킨’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대박이 난다.
잡으라는 마약 사범은 나 몰라라~ 마약 치킨을 파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수사물인가, 창업 가이드인가. <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이 보도자료에 전한 출사표, “자신 있게 웃기는 정통 코미디를 한 편 만들고 싶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 문장 마지막에 찍힌 느낌표가 마치 사자후를 토하듯 감독의 자신감을 일필휘지로 드러내는 듯하다. 그렇다. <극한직업>은 코미디다. 그것도 정통!
웃음을 방해하는 약간의 불순물, 뭐 콧물 찔찔 짜게 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나 오글거리는 연애담이나 범인 잡겠다고 무시무시하게 휘둘러대는 조폭물 특유의 거친 폭력 등등 이런 거는 치킨 뼈 발라대듯 정통으로 발라내어 뼈 없는 치킨처럼 순도 ‘일백푸로’의 기세로 관객을 아예 웃겨 죽이는, 엇! 이건 아니고… 아무튼, 웃겨서 천국으로 보내줄 태세인 것이다.
공개된 예고편만 보더라도, “야 정신 안 차릴래, 우리가 닭 장사 하는 거야?” 재보다 잿밥, 범인 검거보다 치킨 판매에 열을 올리는 후배들을 향해 홀로 핀 꽃 한 송이처럼 형사의 도(道) 같은 거를 설교하려던 고 반장이 갑자기 걸려 온 배달 주문 전화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러고 있는데 안 웃기고 베길 재간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고 반장에 질세라 “하루 매출 234만 원이야, 과연 내가 오늘 몇 개의 테이블을 세팅하고 치웠을 것 같니?” 깊은 ‘빡침’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장 형사, “180도 기름에 데이고 칼에 베이고 얼마나 쓰라린 줄 알아? 아파, 지금 현재도 굉장히 쓰라린 상태야” 라임에 맞춰 불만을 쇼 미 더 머니 무대에서 래핑하는 것 같은 마 형사, 이런 애들하고 수사하자니 내가 형사인가, 치킨집 종업원인가 분간이 가지 않는 영호 등까지 가세하는 통에, 혼자 안 웃었다가는 ‘닥치고 웃음’ 소리 듣게 생길 판이다.
기본적으로 이병헌 감독의 영화 속 세계는 ‘유치찬란’하다. <스물>(2014)의 대학생들은 연애도 안 돼, 취업도 잘 안 돼, 웬만해서는 다 잘 안 되는 순간에도 “이젠 뭐 특별히 병* 짓만 안 하면 되는 거야” 대사 치고 곧장 바보들의 행진으로 일관한다. <바람 바람 바람>(2017)에서는 다 큰 어른들의 불륜을 바람에 빗대 불편한 상황마저 코미디로 돌파하는 식이다. 이런 감독의 성향은 설정이 갖는 윤리적 무게감에 따라 작품의 편차가 심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데 <스물>이 흥행에 성공하고 <바람 바람 바람>이 흥행과 작품 양쪽에서 안 성공한 결정적인 이유다.
<극한직업>은 <스물> 쪽이다. 그 어떤 장르보다 코미디는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편이기도 하고, 특히 이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 기댄 ‘대사빨’에 웃음이 주는 재미가 중앙 집중되어 있는 까닭에 세련된 영화 연출의 맛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더라도 코미디, 그것도 그냥 코미디가 아니라 아주 ‘정통’ 코미디가 실종되다시피 한 한국 영화계에서 이병헌 감독의 재능, 관객을 웃기고, 극장 의자에서 자빠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이다. 배꼽아 나 살려라~ 웃을 일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극한직업>이 그 니즈를 충족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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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찻잎미경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