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a Tang Liu
켄 리우의 작품은 SF나 환상문학이 대중에겐 어렵다는 통념을 깨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럼」은 어린시절, 특수한 장치로 가상 외도를 하던 아버지를 목격한 딸이 평생을 그를 멀리하게 된 사건을 소재로, 아버지와 딸의 입장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천생연분」은 인공지능에 의해 만날 상대자, 음식점, 업무까지 모두 맡겨버린 미래,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기업이 국가보다 더 강력해진 미래를 다룬다.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류의 모습은 현재의 스마트폰이 삶의 중심이 된 현대인들에게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 가득한데, 「즐거운 사냥을 하길」은 강시나 구미호를 잡던 도사의 아들과 구미호의 딸이 20세기 초반, 판타지 시대가 사라지고 증기 과학시대로 넘어가며 새로운 미래 세상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다뤄 판타지와 SF 스팀펑크 장르의 흥미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네뷸러 상 최고소설 부문 후보에 올랐던 「파(波)」는 영생을 살게 된 인류의 머나먼 미래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다룬다. 휴고 상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모노노아와레」 역시 우주로 나온 인류에 대한 작품이다.
중국 문화가 당신의 세계관이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여전히 중국계 미국인 작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미국 문화’를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듯이 ‘중국 문화’를 어느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 만약에 당신이 무작위로 100명의 미국인을 뽑아 ‘미국 문화’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100가지 종류의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같은 방식의 질문을 해보아도 마찬가지로 100가지의 대답을 듣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 말은 우리가 저마다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듯이 (언어학자들이 이를 ‘개인어(idiolect)’라고 부르는 데에 착안하여) 각자의 ‘개인문화(idioculture)’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문화나 언어, 혹은 관점 등의 독자적인 것들에 ‘중국 문화’ 혹은 ‘미국 문화’라는 거창하고 광범위한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미국 작가로 보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야기의 종류를 따지자면 미국 이야기가 되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연적으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중국계-미국인’이라는 용어로 스스로를 지칭해본 적이 없다. 그 두 단어 사이의 공백이나 하이픈에서 내겐 있지도 않은 정체성 분열의 암시를 읽어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는 관점이 보다 명확할수록 한층 보편적인 결과가 나온다.
『파』 에서 매기는 아들 보비가 기계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엉엉 운다. 그리고 “저 애는 이제 울지도 못해.”라고 생각한다.『즐거운 사냥을 하길』 에서도 염의 다리가 기계로 대체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만 해도 5만 년 전, 혹은 5백만 년 전 선조들과 완전히 똑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류가 ‘인간이 아닌 존재’에서 ‘인간’으로 이렇게 진화했는데 ‘인간’에서 다른 무언가로, 어쩌면 ‘인간 이후의 존재’로 진화하리라 믿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인간 이전의 존재’ 상태에서 현재의 상태로 진화한 사실에 대해 우리 중 누구도 개탄스러워 하지 않듯이 선조들 또한 당신들이 더 이상 인간의 범주가 아님을 통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에게 그처럼 거대한 시간의 척도를 대입하는 방식은 별로 적절하지 않으므로, 내 개인으로서 생각했을 때 가장 경이로운 인간의 속성은 우주의 진정한 상태인 무작위성에서 의미를 창조해내고 서사를 빚어내는 우리 인간의 노력을 꼽을 수 있겠다.
『파자점술사』 에선 한자의 모양에 대해 다뤘고, 다른 단편집에 수록된『Tying Knots』에선 한글의 모양을 소재로 썼다. 글자나 기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
기술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글쓰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변화무쌍한 기술 중 하나이면서 우리가 사고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 않은가. 오늘날 어디에서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 네트워크 연계성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기술적 변혁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발달하고 있다. 나는 글쓰기가 활자 문화 이후 범-디지털 세상에서 맞게 될 우리의 미래를 고찰하는 과정에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Lisa Tang Liu
당신이 이야기를 통해 다루는 역사는 너무 잔인해서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인가. 역사와 SF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작품에서 주축을 삼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모두 사실인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어느 것도 상상의 사건이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당면한 아젠다의 정당화를 위해 변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항하여 선조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는 차원에서, 그리고 선조들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과거를 상기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당신 작품들을 보면 시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혹시 영감을 주는 시인이 특별히 있는지?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당신 책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기 바란다.
내게는 에드나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의 작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그녀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작품에서 어느 작가보다도 확고한 현대 미국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용익
당신의 작품은 기술 변화에 적응하거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SF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따금 SF를 두고 미래를 ‘예견하는’ 문학인 양 논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SF가 그런 역할에 이로울 면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SF는 우리가 대격변을 고찰하는데 사용할 어휘를 제공해줄 수 있다. 『시녀 이야기』 나 『멋진 신세계』 같은 고전 SF에 나오는 함축적 어휘들이 이제는 정치적인 시위와 논쟁에서 사용된다. ‘Big Brother(빅 브라더)’ 나 ‘newspeak(신언어)’, ‘thoughtcrime(반사회적 사고)’ 그리고 미투 집회에서의 시녀 복장 등이 그렇다.
소설 속의 참상은 묘사된 바와 똑같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공포를 조장하는 근본적인 인간의 충동은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오웰이나 헉슬리의 고찰이 빚어낸 형태만이 아닌 보편적인 감시 하에 살고 있다. 앳우드가 상상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에 따른 결과도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SF는 어휘를 창조한다. 우리는 어휘라는 도구의 모음을 통해 이러한 진화를 겪어나간다. 기후 변화, 특이성, 수명 연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SF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정신적 도구를 가지고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번역한 류츠신 ‘삼체’가 미국에서 굉장히 성공했다. 중국 SF작가가 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SF 작가들에 조언을 해준다면.
류츠신은 항상 SF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문학이라 번역 상 어려움이 제일 적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걸작을 두고 보자면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창작 문학은 원전을 어떤 언어로 썼는지에 무관하게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다. 한국 SF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서 만큼 국외에도 널리 알려지는 것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한다.
당신의 작품 중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선 일본의 731 부대, 강제징용,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SF소재로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가?
한국 독자들은 아마도 나만큼이나 현실 부정의 위협에 익숙할 것이다. 전쟁의 참상 이후 수십 년간, 그 잔학행위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태로 내버려둔 이들이 희생자들의 기억을 모독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쓰는 수밖에 없었다. 진실과 역사, 그리고 정의에 대한 헌신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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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켄 리우 저/장성주 역 | 황금가지
인공지능에 의해 만날 상대자, 음식점, 업무까지 모두 맡겨버린 미래,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기업이 국가보다 더 강력해진 미래를 다룬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