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독한 마음으로 살을 빼지만
다이어트, 참 힘들다. 쉽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원래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인 사람은 가장 어려운 난제 중 하나로 안고 살아간다. 마음으로 느끼는 무게는 더욱 무거울 수 밖에. 나도 예외는 아니다. 20대 중반 이후 같은 체중을 오랫동안 유지했지만, 몇 년 전 갑자기 2-3kg 늘어나더니 후덕한 중년 아저씨의 풍모를 갖게 되었다. 이전의 너무 날카로워 보이던 얼굴보다는 낫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들었지만 대화를 마치고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 나오는 배를 상태를 보고 난 상대방은 고개를 떨구기 일쑤였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표정을 신경 쓰기보다 타이밍 맞춰서 배에 힘을 주는게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소극적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의지박약인 걸 알기에 엄청 나게 안 먹는 것보다는 운동량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고, 단 음식을 다 끊었다. 쉽게 살은 빠지지 않았고, 더 찌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몇 년 전 몸무게보다 1kg 정도 적은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다행히 비만 체질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스트레스 때문에 다이어트가 더 어렵다.
졸피뎀이란 수면제가 있다. 불면증에 가장 효과적인 약 중에 하나라 많이 처방된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하나 있으니 야간폭식증이다. 이 약을 먹고 잠을 자기 전에, 혹은 자다가 깨서 많은 양의 음식이 먹고 싶어지고, 또 먹는 증상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호소한다. 정확한 기전은 모르지만, 아마도 평소 다이어트로 음식을 강하게 통제하던 사람이 수면제를 먹고 그 억제가 잠시 풀리면서 강한 반동형성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추정한다. 그 정도로 평소 강한 의지로 다이어트를 하려고 음식과 싸우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독한 마음으로 살을 빼지만, 그걸 유지하기란 더욱 어렵다. 요요 현상이 다음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렸다.
지오디 출신의 가수 김태우 씨는 비만관리업체 A사와 1억 3천만원을 받고 2015년 9월 체중감량 프로그램 참여를 하고, 종료 후 1년간 요요방지 프로그램을 받기로 계약했다. 다음해 4월 그는 목표체중까지 감량에 성공했고, A사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그러나, 김태우 씨는 요요방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고, 3개월 만에 바로 목표 체중을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고객들의 항의를 받은 A사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솔로몬의 판결을 내렸다. 계약금의 반인 6천 5백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이다. 억대의 돈을 받아 의욕적으로 살은 빼는데 성공했지만, 이를 유지하는 건 아무리 돈을 받아도 어렵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언스플래쉬
다이어트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책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우리는 ‘나의 의지박약’을 한탄한다. 그런데, 사실은 원래 다이어트는 힘든 것이고, 요요현상도 일어날 수 밖에 없으니, 내게 세팅된 체중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수준의 체중 유지를 위한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들이는게 현실적인 목표라고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책을 발견했다. 일종의 다이어트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책이라 할만하다. 트레이시 만의 『야윈 돼지의 비밀(Secrets from the eating lab)』 이다. 저자는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 식습관, 다이어트, 자제력과 관련된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학자다.
저자는 지금까지 실시된 다이어트, 체중감량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를 샅샅이 뒤지고 분석한 후에 다이어트는 인간의 생리 시스템을 이해하면 원래 어려운 것이지, 의지의 문제로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무작위 대조실험과 같이 잘 설계된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 참가자들은 0.45kg 이상 살이 찌지 않았고, 온갖 노력을 한 참가자들은 1.35kg만 체중감량이 있었다. 그리고 연구가 끝난 후 추적을 해보면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이 연구가 끝나니 살이 더 찌는 일이 벌어졌다. 더욱 암담한 현실은 추적조사의 경우 참가자들의 체중을 직접 재지 않고 이메일, 전화로 확인한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깜짝 방문해서 실제 체중을 잰 것과 비교해보니, 비만이 아닌 사람은 2.25kg, 비만인 경우 3.6kg 적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실제로는 살을 뺀 사람은 훨씬 적을 수 있고, 연구가 끝난 후 아주 빠른 시기에 훨씬 체중이 도리어 증가한 사람은 많을 수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적으로 체중이 정해져 있고, 가족이나 개인의 식습관이 미치는 영향은 훨씬 적다고 말한다. 입양아 500명과 생물학적 부모, 양부모의 체중의 상관관계를 보면 생물학적 부모와 상관관계가 강하고, 양부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쌍둥이 연구를 해봐도 비슷한데, 유전자가 몸무게에 대략 70%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을 해도 유전자가 정해놓은 몸무게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몸은 적정하다고 여기는 몸무게 범위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러니, 거꾸로 살을 찌우는 것도 매우 어렵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4-6개월간 하루 1만 칼로리를 섭취하게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일 섭취량은 2400칼로리 정도다) 실험을 했다. 일부 수감자들은 20% 이상 살이 찌지 않았고, 많이 늘어난 사람도 한 번 늘은 체중은 유지되지 않았다. 쌍둥이들에게 1천칼로리를 100일간 더 먹게 한 연구에서도 늘어나기는 하지만 체중이 곧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을 빼는 것도, 찌우는 것도 어려운 이유는 유전적으로 세팅 된 몸무게가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위험신호로 감지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살을 찌는 것보다 빠지는 것에 더 민감하다. 그건 굶어죽을 지도 모른다는 매우 위험한 ‘죽음’의 사인이니 말이다. 그래서 며칠 정도 칼로리 섭취가 줄어들면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자동적으로 에너지 요구량이 늘어나도록 뇌와 호르몬의 시스템 세팅이 바뀐다. 더욱이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칼로리 일부를 지방으로 저장하려고 한다. 지방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건데 황당하게 우리 몸은 지방을 우선 축적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굶주림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원시동물의 생존본능이 작동한 덕분이다. 21세기의 풍요로운 식생활은 인간이란 존재에게 너무나 낯선 일일 뿐이다.
그러니, 다이어트는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것은 ‘군살 없는 알맞은 체중(leanest livable weight)’을 유지하기 위해 생활방식을 서서히 바꾸고 나의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적응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유전자에 설정된 몸무게 범위의 최하점을 알아내서 그 곳을 찾아가서 거기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급격한 다이어트와 체중감소, 그리고 요요를 반복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5년동안 요요를 여러 번 경험한 남자가 비만이 아닌 사람보다 더 많이 사망했다는 연구가 있고, 차라리 비만 상태였던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오래 산 연구도 있다. 급격한 변화가 적당히 비만인 상태로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유혹을 멀리하는 법, 식탁에 채소만 올려놓기, 가족과 함께 식습관 바꾸기,건강식품의 문제점, 건강한 습관을 만들기,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기와 같이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건강한 식습관, 운동습관을 갖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하며, 자존감과 너무 직렬연결해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갖고 태어난 이 몸의 세팅을 온몸으로 거부하려고 할수록 사는게 힘들어지고, 반복적 다이어트의 실패와 좌절, 자신에 대한 책망과 의지박약이 생활과 정체성 전반으로 퍼져나가 모든 삶이 절망적이 되는 부작용은 막아야한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또 실패하면서 자책과 우울의 늪에 빠져있다. 그리고, 체중관리업체와 건강식품업체는 날로 번성한다. ‘야윈 돼지의 비밀’은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할 수 있게 도우며,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다이어트에 관심있는 이들이 한 번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 추천기사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