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는 대로 해볼게요.” 인터뷰에 앞서 시작된 사진 촬영. 손보미가 촬영팀에게 건넨 한마디다. 잘 못하더라도 우선은 해보겠다는 말. 스태프들이 늘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카페 옥상에도 올라갔고 아직은 더운 골목에도 나가 장시간 사진을 찍었다. 살짝 지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손보미는 어떤 답도 크게 망설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5년 만에 낸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을 앞에 두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었다.
장편 『디어 랄프 로렌』 이후 손보미는 달라졌을까, 여전할까. 언제나 그가 소설가로서 바라는 건 단 하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책의 씌어진 문장들을 통해 자신들의 시간과 공간을 아주 잠시라도 마주하게 되는 일”(293쪽)이다.
내가 행복해 하는 행위이면 좋겠다
‘작가의 말’을 안 쓰려고 했다면서요.
책이 나오면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내 것이 아니잖아요. 다음 작품으로 내가 이미 넘어갔는데, 예전에 쓴 작품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이야기를 보탠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냈을 때 다음 단편집에는 ‘작가의 말을 쓰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써달라고 하셔서요. 제가 대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웃음) “네”하고서 썼죠.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느라 문장을 거의 쓰지 못한 날이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아, 어떻게 해? 오늘도 한 글자도 못 썼어”라고 했더니 “그것도 소설 쓰는 시간에 포함되는 거야”라고 답장이 왔다고요.
제가 도서관에서 소설을 주로 쓰는데요.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었어요. 도저히 이렇게는 집에 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인터뷰하는 시간도 그럴 거예요. 소설가에게는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어떤 작품에 어떻게 들어갈지 모를 일이죠.
수록 작품을 살펴보니, 가장 최근에 쓴 소설이 「몬순」. 『문학과 사회』 2016년 가을호에 실린 작품이에요. 가장 오래 전에 쓴 작품은 2013년 봄호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대관람차」입니다.
「대관람차」는 제가 참 좋아한 소설인데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다시 읽어보니까 내가 뭘 많이 썼구나, 굉장히 펼쳐져 있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같으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저는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이 2013년에 나왔으니까, 두 번째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공백이 길었잖아요. 그래서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분위기가 좀 튄다 싶은 건 빼기도 했고요. 그래도 내가 재밌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소설집을 읽을 땐 ‘왜 이 작품을 첫 번째로 넣었을까? 왜 이 작품은 마지막 순서로 정했을까?’를 생각하게 돼요. 「고양이의 보은」이 마지막에 들어간 건 확실한 이유가 느껴졌고요.
「고양이의 보은」은 자전적 소설로 썼던 작품이라 작품과 저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요.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저와 가장 가까운 작품일 거예요. 가끔 소설을 쓰다 보면, 어떤 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 제게 말을 거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예측하지 않았던 인물이 등장하고 상황이 펼쳐지곤 하죠. 제 머릿속이라는 세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는 셈인데 그럴 때 저는 무척 행복하다고 느껴요. 어떤 세상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해서요. 마치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처럼요.
“따지고 보면, 내 삶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하기도 했다”(234쪽)는 실제 손보미가 생각하는 마음일 거고요.
그렇죠.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는데, 결과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계속 운이 좋았던 게 과연 정말 운이 좋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2009년에 데뷔한 걸로 치면 소설가로 거의 10년을 살아온 셈이잖아요. 2011년에 「담요」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주목을 조금 받은 편이라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나를 증명해내야 해,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좀 편하게 써도 좋았을 텐데, 힘을 좀 빼고 쓸 것을’ 하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은 어때요?
확실히 부담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작품을 쓸 때는 최고의 완성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오늘 작품을 쓰고 내일을 상상할 때예요.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없으니까 집에 가야 하잖아요. 학교 도서관을 나서면서 ‘아, 나 내일 또 와서 소설을 쓸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그게 참 행복해요. 이런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을 쓰는 행위가 나한테 즐거워야 하고, 내가 행복해하는 행위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런 마음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정말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자리를 벗어나요? 아니면 끝까지 앉아 있어요?
앉아 있는 편이에요. 다른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더라도, 어쨌든 이 시간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앉아 있어요.
하루에 최소 몇 시간은 쓴다는 기준이 있나요?
말하기 부끄러운데요, 최소 지키는 시간은 20분이에요.
하루에 20분이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웃음) 타이머를 맞춰놓고 20분을 쓰고 또다시 알람을 맞춰놓고 써요. 최소 20분은 절대 다른 걸 하지 않고요. 제가 진짜 산만하거든요. 조금 쓴 다음에 막 다른 걸 하고. 그래서 타이머를 맞춰놓아야 해요.
낙천적인 성격인 것 같아요. 동시에 노력파라는 생각도 들고요.
스스로 “나는 주의력 결핍 장애자”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웃음) 무언가를 엄청 계획하면서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냥 닥치는 대로 주어지면 하는 성격이죠. 소설도 대학 때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제가 집중을 너무 잘하는 거예요. 타자를 치는 순간만큼은 놀랄 정도로 집중을 해서 ‘아, 내가 이 일이 되게 재밌나 보다’ 생각했어요.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쓰기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소설을 계속 쓰면서도 ‘진지하게 써야지, 이제 그만 쓰고 싶다’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 작품을 많이 쓸 거니까요
이번 소설집 제목이 단편 제목이 아니에요. 보통 표제작을 쓰기 마련인데요.
「대관람차」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편집자가 다른 제목을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제목이 안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다 편집자가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을 제안했죠. 처음엔 너무 귀여운 것 같아서 내 소설이랑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설득해줬어요. 작품에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고, 주요한 사건이 밤에 많이 일어나고, 또 제가 ‘우아한’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elegant’라는 단어를 좋아하기도 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죠.
고양이를 키우나요?
11세, 10세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어요.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눈이’라는 고양이 이야기는 진짜 제 경험담이에요.
생각해보니 이번 소설집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에 고양이가 등장하네요.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이 마침내 「고양이의 보은」으로 바뀌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사실 저는 고양이를 키우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매일매일 고양이 사진을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첫 작품의 주인공처럼 ‘나도 어쩌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맞아요. 키우기 전에는 모르는 일일지도 몰라요.
「산책」이란 소설은 제목에서 자연스레 연상되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어요. 서늘한 분위기라고 할까요.
오래전부터 추운 곳에 있는 어린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라도 써보고 싶어 「담요」라는 소설에 등장시켰는데, 언젠가 이들 부부를 주인공으로 꼭 써보리라 생각했었어요. 이 작품의 시작은 ‘아무도 내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다’에서 출발한 거예요.
주인공은 ‘한밤의 산책을 즐기는 아버지’를 끊임없이 걱정하는데, 오히려 과도하게 걱정하는 딸이 걱정스럽더군요. 과연이 작품의 주인공은 딸이 맞을까? 어쩌면 남편? 아버지가 아닐까도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어요. 딸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장치일지도 몰라요. 실질적인 주인공은 다른 사람일 수 있죠. 우리는 서로가 너무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아내와 남편, 딸과 아버지라는 가장 가까운 가족도 온전히 믿지 못해요.
이번 소설집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할 인물은 아마도 「임시교사」의 ‘P부인’이 될 것 같아요. “천성적으로 남을 비난할 줄 모르는 사람. 지하철에서 누군가 메모지를 돌리며 적선을 부탁하면 절대로 거절하는 법이 없는 여자”(89쪽). 주변에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없는 그런 캐릭터인데, 어쩐지 이 작품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은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긍지를 잃지 않는 여성이었어요. 너무 쓰고 싶어서 시도를 많이 했지만 계속 실패하면서 내가 쓸 수 없는 이야기인가 보다 마음을 접었죠. 그렇게 인물만 갖고 있었는데 콩트를 쓸 기회가 있어서 P부인 이야기를 썼어요. 임시 교사였다가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여자의 이야기였죠. 그렇게 쓰고 잊힌 상태였는데 2014년에 『문학동네』 20주년 기념호에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어요. 장편을 준비하고 있을 때라 처음으로 “이번에는 못 쓸 것 같다”고 했는데, 담당 편집자가 “라인업이 정해져 있는 거라, 우선 써보고 못 쓰겠으면 펑크를 내라”고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며칠을 보냈는데 전에 썼던 콩트가 생각났죠. 그렇게 급하게 시작해서 완성된 작품이에요. 쓴 기간은 1주일이 안 되지만, 주인공 이미지는 오래 갖고 있었던 작품이죠.
현실에 P부인이 있다면 존재감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아마도 그렇겠죠. P부인은 불의한 상황을 겪더라도 그 일에 대해 따지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P부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죠. 제가 쓰고 싶었던 건, 불의한 상황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도 그 나름의 삶에 긍지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궁금해하고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물론 고맙지만, 그 사람들로만 세상이 굴러가는 건 아니니까요.
P부인은 자신이 아이를 돌봐주는 부부로부터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듣게 되는데, 뭔가 끔찍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 부모는 자신이 가진 에티켓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단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게 달라져버리죠. 원래는 진심이었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진심이 아닌 말이 돼버린?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많이 그렇지 않나요?
저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말할 때, 거북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작가님은 어떤가요? 과한 친절, 과한 상찬을 들을 떼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하죠. 당연히 마음속으로만요.(웃음) 사람들이 제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 잘 안 믿어요. 그냥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상대가 서운할 수 있겠어요. 대신 표현은 안 하죠. 제가 데뷔할 때부터 부담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상을 받거나 공식적인 평가를 들을 때마다 작품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 작품을 많이 쓸 거니까요. ‘지난번 작품보다 더 잘 써야 해’라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선호하는 문장, 쓰고 싶은 문장이 있나요?
스스로 문장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소설집을 엮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쓰지?’ 싶을 때가 있어요.(웃음) 제가 쓰고 싶은 문장은 정말 단순한 문장이에요. 적확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넣어서 그 문장이 어떤 의미를 생성하는 문장? 그런 문장을 쓰고 싶은데 어렵죠. 제가 묘사도 잘 못하는 편이라, 고유명사를 많이 공부하는 편이에요. 고유명사를 잘 쓰는 문장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상자 사나이」에 등장하는 문장 “열심히 사는 건 어떤 거죠?”를 조금 응용해서 열심히 소설을 쓰는 건 어떤 거죠?
언젠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요. 올리버 색스가 『깨어남』 이라는 책에서 “의사들은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내려와 환자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비슷해요. 제가 쓰는 소설이 인물과 가까운 거리에서 쓰는 작품이 아니지만, 소설을 쓸 때 가장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건 인물의 얼굴을 바라보고 인물이 하는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일이에요. 도저히 이야기가 안들리고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결국엔 뭔가가 떠올라요. 「고양이의 보은」도 그렇게 쓴 작품이었어요. 어떤 대사도 떠오르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후드득 생각났죠.
10년 차 소설가로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요.
소설을 너무 좋아하지만 소설 쓰는 행위 자체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내가 안 쓰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진 않는 거예요. 다만 어떤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 그냥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이게 제가 가장 즐겁게 창작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때때로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오래 쓰려면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해 출간된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에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실었어요. 처음엔 집필을 망설였다고요.
작품 속에 사회적 이슈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편이 아니에요. 다른 식으로는 쓸지 몰라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걸 즐겨 하진 않죠. 어렵기도 하고요. 그래서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편집자가 「임시교사」 같은 분위기여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1인칭을 잘 쓰지 않고,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 쓰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는 터라 고민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책을 받아보니 제 소설만 색깔이 조금 다른 것 같더라고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신선한 경험이었죠.
‘아무튼’ 시리즈에 ‘미드’를 소재로 에세이를 쓸 예정이죠? ‘근간’에 출간된다고 책날개에 계속 등장하던데요.
(웃음) 아, 지금은 그걸 쓰고 있지 못하는데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재촉을 안 해줘서…. 빨리 써서 드려야죠.
지금까지 산문집을 낸 적은 없어요.
짧은 산문은 많이 썼는데 묶을 만큼 쌓이진 않았어요. 저 같은 경우는 무엇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시간이 있는 한에서는 되도록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계속 글을 쓰는 상태이고 싶은 거죠.
요즘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소설가가 아닌 그냥 손보미로 보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라는 문제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작품을 행복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괴롭게 쓰는 작품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논픽션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제가 100% 문과 기질의 소유자라서 과학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해요. 이해하고 읽는다기보다는 이해하고 싶어서 읽는 것에 더 가까울 거예요. 펜이랑 자를 들고 밑줄을 치면서 읽거든요.
소설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읽히는데요. 작품을 오랫동안 쓰기 위해서 지켜야 할 작가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를 자꾸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서 열심히 쓰는 일? 제가 일상을 보낼 때는 게으르지만, 소설을 쓸 때는 부지런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아이작 디네센의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계속 뭔가를 쓰는 감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평정심」(9와 숫자들)이라는 노래가 있는 거 알아요?
몰랐어요.(웃음) 들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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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손보미 저 | 문학과지성사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는 인물들이 새로운 자아와 관계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세심하고 정갈한 문체로 담아낸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샹그리라
2018.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