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를 겪은 세대의 감성 지도 위에는 조장혁의 기록 또한 존재한다. 아티스트의 시작을 알린 '그대 떠나가도'서부터 'Change' '중독된 사랑' 'Love' 등으로 이어지는 히트 넘버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애청곡이자 애창곡. 거친 목소리로 직접 써 내린 발라드 팝들은 그 위에 티끌 하나 생길 틈 없이 계속 회자돼왔다.
허나 역설적으로, 조장혁의 이름 위에는 종종 먼지가 쌓여왔다. 큰 성공 다음에는 오랜 침체가 따랐고 한 때는 음악계를 벗어난 활동 경로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 싱어송라이터에 다시 붙는 큰 관심은 사실 꽤나 최근의 것이다. 데뷔 22년 차, 오랜 시간이 만든 활동 기간에는 여러 부침이 함께 했다. 그 순간순간을 주인공의 입으로 직접 들었다.
몇 년 전<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나가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출연하며 거부감은 없었나.
“형, 조카(아들) 키워야지.” 이 한 마디에 나갔죠. 당시 같이 일을 하던 제작자 친구가 했던 말이에요. 원래는 안 나가려고 했는데, 저 얘기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모든 걸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나갔고... 다행히 잘 됐습니다. 아들을 지칭하는 저 조카라는 말이 언론 첫 보도에는 진짜 조카로 나가서.(웃음)
결과적으로는 이득이다마는, 끝까지 나가지 말고 버티지 하는 의견도 주위에 많았을 텐데.
그랬죠. 사실 제 성격도 그렇고요.
<나가수> <불후의 명곡>에서 가진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라면.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무대. 음정이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가사가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 내려와서 아무 생각이 안 드는 무대가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오히려 기억하면서 부르려 했던 무대에 개인적으로 조금씩 불만이 들었죠.
음정이 가거나 가사가 틀리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카메론 디아즈가 노래 부르는 씬 있잖아요? 음치 캐릭터로 나와서 처음엔 엄청 야유 받다가 점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전 그게 음악이다 싶어요. 조금 틀리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어도 결국은 전달력에 관건이 달렸죠. 물론 많이 틀리면 문제가 되죠. 아, 무슨 말인지 아시잖아요. (웃음)
그 전까지 공백기가 길었다. 디스코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리메이크 앨범
그렇죠. 원래는 다 자작곡으로 넣었죠. 그쯤 제가 계약 문제로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도망간 매니저 계약금까지 갚아야 하는 배경인데다 일은 안 들어오고 막막했거든요. 리메이크 앨범은, 그 때 만난 다른 관계자 한 분이 '안 좋은 상황이니 이렇게라도 하나 내자'며 만들게 된 결과물입니다. 곡 리스트도 그 분이 다 짜 오신 거고요.
사기 당할 줄 몰랐던 건가.
도망간 그 매니저 형이랑 워낙 친한 사이었어요. 함께 했던 일도 있었고. 둘이 같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도 계약서 대충 보고 치웠어요. 형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하면서요. 그 때는 몰랐죠.
당시 타이틀 곡 'Love is over'는 꽤 알려지지 않았나.
그래도 욕 많이 먹었죠.
사실 어떻게 보면 그 전부터 침체가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4,5집 앨범은 왜 그리 안 떴나. 직전인 3집까지만 해도 호황이었는데.
앞 맥락이랑 연결되는 얘기입니다. 3집까지 하고 매니지먼트가 끝났어요. 의리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그 형이랑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매니저 돈을 제가 갚아야하는 이상한 계약이 생긴 거죠. 손익분기를 넘기네 마네 이런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사람을 너무 믿는 바람에 내우외환이 생긴 셈입니다. 제게도, 제 음악에도 안 좋은 일들이 다가왔어요. 저 혼자 이래저래 힘써야 했고요. 핑계만 대는 것 같아 싫지만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그 시기에 불법 다운로드가 정말 판을 쳤어요. 오늘 앨범 내면 내일 아침 소리바다에 다 뜨던 때였잖아요. 앨범 판매량에 의존해왔던 저희로서는 손을 댈 수도 없었고, 사회 차원에서 이걸 막을 방안도 없었고. 불운이 꼈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개인 내면으로도 '왜 안 떴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낯을 가렸다고 해야 하나? 사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숨어있는 걸 좋아했어요. 나대는 걸 싫어했고요. 성격상 그랬던 거 같아요. 신비주의랍시고 콘셉트 잡고 이런 건 아예 없었고요.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당시 음악계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그 때는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인기를 누렸잖아요. 대표적으로 동아기획처럼 비주류가 주류로 확 올라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도 싶어 했죠. 음악 공부를 하며 자라왔으니 그런 배경이 자주 눈에 들어왔고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이제는 자신을 열어보자고 자주 생각해요. 고민도 하고 있고요. 그렇다고 이거 뭐, 안 하던 짓을 막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웃음)
'그대 떠나가도'와 'Change'를 통해 데뷔를 알렸다. 두 곡 다 드라마, 영화에 삽입돼 더 잘 알려졌는데.
맞아요. 이진석 감독님 영화 <체인지>에 들어갈 곡을 모집할 때 'Change'를 갖다 냈었죠. 원래는 곡만 쓰고 다른 사람이 보컬을 맡기로 했었는데 그게 조금 틀어져서 후에 직접 불렀습니다. 영화 작업도 조금 도와줬어요. 악기 연주 장면에서 동작 잡아주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 뒤로도 서로 얘기가 잘 돼서 감독님이 연출한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에도 제 곡 '그대 떠나가도'를 쓰게 됐어요.
1,2집 성공에 이어 '중독된 사랑'을 통해 3집이 크게 터졌다. 최고의 히트 곡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심지어 다 만들자마자 만족감을 느끼게 한 노래에요. 처음에는 작곡하면서 막히기도 했던 곡이거든요.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나오고 뒷부분이 안 써져서 꽤 오래 묵히다가... 한참 뒤에 술 한 잔 한 채로 써냈습니다. 노래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어요. 당시 잘 나간다는 매니저한테 들려줬을 때 '이거 너밖에 못 불러' 이런 답까지 왔으니까요.
우쭐했나.
어우, 그랬죠. 스포트라이트도 따라줬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제가 직접 곡을 만들었잖아요. 자신도 있었고. 명예나 이름값 이런 부수적인 것들에는 애초부터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어요. 데뷔하기 전서부터도 저는 음악계에 꽤 오래 있었는걸요. 다운타운에서 시작해 급여 5만 원 주는 통기타 업소에서도 일했어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한테 장밋빛 로망 이런 얘기는 재미없죠. 제가 곡을 쓴다는 것. 그게 중요했어요.
중독된 사랑이 왜 먹혔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생각해도 멜로디가 정말 좋아요. 그런 멜로디는 없는 거 같아요. (웃음) 코드 진행도 센세이셔널했어요. 물론 뭐 코드 때문만은 아니지만, 일단 그냥 잘 쓴 거 같아요. 누가 써줬나 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저기 귀신 같은 영적 존재께서 써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게 어떻게 쭉 나왔을까 해요.
톤도 다양하다. 맑게, 살짝 거칠게, 완전히 거칠게. 기분 좋은 음색의 파노라마라 하고 싶다.
맞아요. 그렇게 나왔죠. 그 곡이 그랬어요.
신 내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딱 두 번 있었죠. '중독된 사랑'이랑 (고) 최진영이 부른 'My lady'랑. 'My lady''는 20분 만에 쓴 곡이었어요.
곡 쓸 때의 주안점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 얘기를 듣고 많이 썼죠. 아픈 마음, 경험담 같은 걸 듣고 있다가 감정이입이 돼 쓰곤 했죠. 제 경험도 물론 갖다 쓰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멜로디를 떠올리다가 살짝 괜찮다, 죽인다 싶은 포인트를 잡아서 살려서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이번엔 조장혁의 보컬에 중심을 두고 얘기해보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는 보컬 컬러, 정체, 매력은?
사실은요, 사람들이 제 보컬에 어떤 매력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어요. 거친 목소리는 일부러 만들어 낸 거예요. 대학교 스쿨 밴드에서 'Heaven'을 부르면서 브라이언 아담스의 목소리에 완전히 꽂히는 바람에 많이 거칠게 불렀죠. 들국화 형님들 곡도 해보면서 전인권 선배 목소리도 많이 따라 해봤어요.
원래 목소리는 어땠나.
되게 맑았어요. 밤에 집에서 노래하면 시끄러우니까 살던 곳 천호동 근처 올림픽대교 밑에 들어가서 소리 버럭버럭 지르고 그랬죠. 목이 쉬었다가 또 괜찮아지면 소리 지르고. 지르면 지를수록 목이 트이더라고요. 창 하시는 분들도 그렇다고들 하시잖아요. 억지로 목 만들고 틔운다면서요. 대신 단점이 생겼다면, 가성이 잘 안 돼요. 자연스레 팝보다는 록을 지향하게 되고, 알앤비는 더 힘들어지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촌스러운데, (웃음) 그 땐 왜 그랬는지. 그 시대가 그런 거친 목소리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제 노래도 세대에 잘 맞았을 테고요.
그 거친 목소리가 특히 <나가수> <불후의 명곡>에서 좋은 무기로 작용했다. 허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스튜디오를 통해 나온 곡들에서는 보컬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나.
스튜디오 안에서는 조금 자제하려고 해요. 스튜디오에서 쓰는 마이크가 정말 예민합니다. 거친 소리는 거친 소리대로, 호흡 소리는 호흡 소리대로 다 나오거든요. 괜히 흥분하면 듣기에 안 좋은 소리가 많이 들어가니 녹음할 때 디렉터분들이 저를 많이 자제 시켰죠. 반면 라이브에 자주 쓰이는 55마이크는 사운드를 다 잡아주지 않아요. 그래서 공연 때는 거칠게 불러도 괜찮죠. 예전에 2집에서 한 번 거칠게 녹음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들어보면 그렇게 좋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곡들마다 나름의 절제미가 느껴진다. 여러 보컬 톤이 등장하는 '중독된 사랑'이 특히 그랬고.
'중독된 사랑'은 해프닝을 통해 나온 작품이에요. 가이드로 한 번 부를 때 기사님께서 누르신 걸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겁니다. 앞부분은 절제다, 뒷부분은 한 방이다 뭐 이런 걸 계산하고 불러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잘 안 되더라고요. 다시 하겠다는 말만 연발했죠. 처음 만든 것에는 왠지 믿음이 안 가잖아요. 그러다 “역시 맨 처음 게 최고지? 그냥 그걸로 해”라고 하신 기사님 말씀에 결국 오케이 했습니다. 애초에 전 절제고 뭐고 생각도 안 하고 불렀어요.
오래 남아 있는 히트 넘버들은 결국 예쁘게 뽑힌 노래지 않나.
그런데도 거칠게 부르면 뭔가 멋있어요. 이상하죠? (웃음) 요즘에는 소리에 대한 변신도 조금씩 고민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제 걸음 방향을 정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례로 소몰이 창법이 한창 유행할 때 선두에 있던 (박)효신이가 목소리를 확 바꾸면서 다른 모습을 만들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목소리에도 유행이 있고 흐름이 있어요.
균형을 잡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죠. 뭐든 한쪽으로 너무 가면 큰일 납니다. 최근에는 아까 잘 안 된다던 가성을 연습하고 있어요. 가성을 살리면 거친 목소리를 완화시킬 수 있거든요. (이)승환 선배처럼 목소리를 여러 번 뒤집는 식으로 자주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점점 컬러가 중성이 되는 거죠.
초창기의 롤 모델을 브라이언 아담스로 잡았다면 요즘에는 어떤 목소리에 끌리나.
지금요? 닮고 싶은 사람은 워낙 많아서. 존 메이어 같은 애들이 좋더라고요. 거칠면서 매력이 풍부하잖아요. 반대로 마이클 부블레 같이 스윙 감성이 있는 목소리도 잘 듣고 있어요. 해리 코닉 주니어도 여기에 들어가겠네요. 같은 울타리 안에서 마이클 부블레는 대중적인 감성에, 해리 코닉 주니어는 조금 더 재지한 감성에 닿아있어서 두 사람 모두 챙기고 있죠.
작곡가이자 가수, 음악가 조장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에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가족.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노래 계속해야죠. 동시에 지금 선생으로 있는 학교에서 후진양성도 하고 만든 제 소속 회사도 키우고요.
끝으로 조장혁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뮤지션에 대해 듣고 싶다.
정말 많죠. 아까 꺼냈던 브라이언 아담스도 많이 들었고요. 프린스도 특히 많이 들었죠.
의외다. 조장혁과 프린스라니.
프린스 음악은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에요. 'Purple rain'은 어우, (웃음) 곡 'Purple rain'도 좋아하지만 음반
인터뷰 : 임진모, 이수호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수호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