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 오늘은 김해 공개방송 특집으로 <어떤,책임>을 박준 시인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박준 시인님은 저희 <어떤,책임> 들어보셨어요?
박준 : 네, 들어봤어요.
불현듯 : 그럼 닉네임으로 진행하는 것도 아시죠? 아까 잠깐 들으니까 ‘준박’으로 하려고 하셨다는데, 여전히 유효한가요?
박준 : 어감이 그리 부드럽지 않은 것 같아서요.(웃음) ‘하비’로 하겠습니다. 두 마리의 개를 키우는데요. 그 중 한 마리의 이름이 하비예요. 하비가 저와 좀 닮았습니다.(웃음) 하비는 쉽게 당황하고요. 창 밖 보는 걸 좋아합니다.
불현듯 : 자, 오늘은 하비, 캘리, 불현듯이 ‘그리움 느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저 / 김순희 역 | 위즈덤하우스
일본의 문학 평론가인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쓴 산문집입니다. ‘비의(秘義)’, 그러니까 슬픔의 숨겨진 의미, 진짜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자리에 ‘슬픔’을 이야기한 책을 가져온 이유가 있습니다. 슬픔이라는 말에 그리움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혔기 때문이에요. 먼저 한 부분을 읽어 드린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읽어드리는 내용에서 슬픔이라는 자리에 그리움을 넣어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똑같은 슬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본 적이 없다면 슬픔의 실상에는 다가갈 수가 없다. 똑같은 슬픔이 없기에 서로 다른 두 슬픔은 울림을 주고 받으며 공명하는 것이다. 홀로 슬퍼하는 사람의 심정은 시공을 초월해 넓고 깊은 곳에 있는 타인에게 전해진다. 그러한 슬픔의 비의를 간직한 채 겐지는 시로 새기며 살아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슬픔이라는 게 이별 뒤에 오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와의 만남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째서 슬픔을 지워버려야 하느냐고, 어째서 극복해야만 하느냐고, 우리는 슬픔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을 해요. ‘슬프다’의 의미를 <국립국어원>에서 찾아봤더니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더라고요. ‘애타다’는 또한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라는 ‘애끓다’라는 단어와 동의어고요. 좋은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슬픔과 그리움이 사실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누구보다 두 시인께서 좋아하실 거라 확신합니다.
박준 시인이 추천하는 책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 고향옥 역 | 주니어김영사
그리움은 관계에서 발생하는데요. 연이 다해서 맞이하게 되는 그리움도 있겠지만 가장 ‘끝판왕’은 생물학적인 죽음이 가져오는 그리움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 책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생각하는 책입니다. 그림책인데요.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기시감이 들죠. “오늘 엄마가 죽었다.” 라는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이 떠오르기도 해요.
화자로 등장하는 소년의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소년이 할아버지 방을 청소하다가 침대 밑에서 공책을 한 권 찾습니다. ‘천국에서 뭐할까’를 적어놓은 공책이었어요. 되게 귀여운 상상력인데요. 공책에는 생물학적 죽음을 맞으면 바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유령 센터’를 지나게 된다고 적혀 있어요. 거길 지나면 투명해지는 거죠. 그곳에서 주변 사람들을 한동안 둘러보는 시간이 있고, 그러다가 천국에 가는 거예요.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할아버지가 적은 것 몇 가지를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화장실에서 멋진 경치가 보인대요. 그리고 머리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대요. 자판기 같은 것을 누르면 머리가 바뀌어요. 미용실에 가서 머리가 망하는 일은 절대 없는 거죠.(웃음) 할아버지는 천국만 상상한 게 아니고요. 심술꾸러기 악당들은 지옥에 갈 텐데요. 지옥은 어떤 곳일까 또 상상해봅니다. 지옥은 날마다 꾹꾹이 체조를 해야 해요. 지옥의 하루 일과는 섞여 있는 두 종류의 모래를 골라내기, 엉킨 실타래를 풀기, 안 떼지는 스티커를 떼기 등입니다. 마지막에는 소년이 이런 생각을 해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써놓긴 했지만 어쩌면 죽는 게 너무 무섭고 슬퍼서 이렇게 쓴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소년은 나도 공책에 써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귀여운 책이에요.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기다림 망각』
모리스 블랑쇼 저 / 박준상 역 | 그린비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움을 느끼려면 대상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리움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사람을 옥죄기도 하지만 이내 망각하게 돼요. 그러면 좋을까요? 그리워하는 대상이 없어지는 건 속 시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움이라는 상태가 사라지면 과연 그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 싶어지거든요. 그리움이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동력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결국 그립다는 말 안에는 ‘기다림’과 ‘망각’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소설인데요. 맥락은 별로 없어요. 두 남녀가 어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고, 남자가 여자에게 신호를 보내서 여자가 남자의 방으로 와요. 그곳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거죠. 매우 철학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가장 어렵고,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현전’이라는 단어예요. ‘앞에 나타남’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가 선명해질 때도 현전인 것이고, 진짜로 어떤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도 현전인 것이에요. 그리고 현전을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또 망각할 준비, 놓아줄 준비를 하는 거고요. 그렇게 삶의 다른 국면을 열어젖힐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특히 무릎을 탁 친 부분이 있는데요. 읽어드릴게요.
그에게는 더 이상 기다릴 힘이 없다. 만약 그 힘이 있다면 그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그는 이전보다 기다릴 힘을 덜 갖고 있다. 기다림이 기다릴 힘을 마모시키는 것이다. 기다림은 마모되지 않는 것이다. 기다림은 마모되지 않는 마모이다.
역설적이죠. 지금까지 기다려왔기 때문에 기다릴 수 없게 돼요. 마치 망부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엇인지 잘 떠올리실 거예요. 결국 그리움이란 감정은 기다림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이 책은 그리움이 가진 여러 면을 모두 다루고 있는 책이어서 여러분들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