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그림’으로 보여주면 훨씬 설득력 있다
경우에 따라 숫자화, 계량화는 전체적인 사태를 파악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포그래픽(infografic)’이다.
글ㆍ사진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201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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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공부할 때, 죄다 라틴어로 되어 있는 ‘정신병리학’ 용어를 외우느라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독일 학생들은 몇 번씩 재시험을 봐야 하는 정신병리학 시험을 난 단 한 번에 붙었다. 그것도 가장 좋은 성적으로. 구두 시험을 진행했던 정신과 교수는 볼품없는 동양 학생(난 그때 몸무게가 고작 50킬로였다)에게 마지막 질문이라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난 아주 자랑스럽게 “코레아”라고 대답했다. 외우는 것이 한국 학생들에게는 가장 쉽다.

 

심리학을 본격 공부한 지 30여 년이 된다.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여수에 내려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전업작가로 살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나 자신을 ‘문화심리학자’로 규정한다. ‘제도적 심리학’, 즉 대학의 심리학과와 심리학회에서 판단하는 ‘학문의 적합성’에 맞춰야 하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통계’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프로이트 때문에 심리학을 선택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심리학과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비과학적’이라고 평가 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수량화할 수 있는가와 관계된다. 인간의 의식, 무의식, 이드와 같은 프로이트의 이론적 구성물은 수량화가 불가능하다. 현대 심리학은 그래서 프로이트를 포기했다. 오늘날 프로이트는 문학, 문화학 등에서 더 많이 인용된다.

 

수량화는 ‘객관화’를 뜻한다. 과학은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근대 모더니티의 철학이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에서 몰아낸 것이다. 객관화할 수 있는 것만 연구한다는 ‘과학적 심리학’의 무기로 새롭게 등장한 것은 ‘통계학’이었다. 특히 심리학에서 통계학이 방법론으로서 차지하는 위치는 엄청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동을 숫자로 변형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라고 다 같은 숫자가 아니다.

 

곱셈이나 나눗셈처럼 수학적 계산이 가능한 숫자를 ‘비율척도’라고 한다. 그러나 주민등록상의 번호처럼 ‘남자=1’ ‘여자=2’로 했을 때, 이 숫자를 가지고는 곱셈, 나눗셈은커녕 덧셈 뺄셈도 불가능하다. 숫자에는 고유명사를 단지 숫자로 바꾼 것에 불과한 ‘명명척도’부터, 단지 순서만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서열척도’, 그리고 각 숫자 간의 거리는 동일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0’이 없는 ‘등간척도’, 그리고 서열과 간격, 절대적 ‘0’이 존재하는 ‘비율척도’가 있다. 문제는 명명척도조차도 숫자로 나타나면 마치 비율척도처럼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현대 심리학의 통계학은 바로 이 착각에 기초해 ‘객관성’을 보장받으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숫자나 그래프로 발표되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을 볼 때, 그 숫자 뒤에 숨어 있는 변인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심리학 논문에서 자주 인용되는 ‘통계학적 유의미성’이란 그 가설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통계학적 유의미성’이란 ‘연구가설이 데이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알아보는 하나의 측정도구에 불과하다. 숫자로 가장된 ‘객관성의 유혹’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심리적 현상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의미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 숫자화, 계량화는 전체적인 사태를 파악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포그래픽(infografic)’이다.

 

그림으로 상황을 표현하면 훨씬 설득하기 쉽다. 예를 들어, 지하철 노선도는 가장 대표적인 인포그래픽이다. 각 노선별로 색을 달리하고, 환승역을 다른 역과 차별하여 강조하고, 노선을 수직과 수평, 그리고 45도의 각도로만 표현하면 승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이 같은 원칙의 지하철 노선도 인포그래픽은 1932년의 런던 지하철 노선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림1-런던지하철1932.jpg

[그림 1]1932년 런던 지하철 노선도. 수직, 수평, 45도의 선과 색으로 지하철 노선을 단순하게 표현한 1932년의 런던 지하철 노선도는 인포그래픽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인포그래픽은 ‘시각문화(visual culture)’의 전형이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문장’을 통한 정보 전달이 대부분이었다. 시각적 정보 전달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책의 삽화나 그림을 통한 정보 전달은 부차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사진의 출현은 인간의 문명 전체를 바꿔놓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인간에게 ‘현재(here and now)’라는 시간을 ‘물화(物化, Versachlichung)’시켜 언제든지 재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로지 인간의 기억에 의존했던 과거가 ‘사진’이라는 물질적 재료로 구현되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집단적 기억’이 일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의식의 질적 변화는 당연한 결과다.

 

체계적인 도형으로 정보를 구현해낸 근대적 인포그래픽의 시작은 스코틀랜드의 엔지니어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 1759~1823)가 작성한 ‘영국의 무역수지 도표’였다. 플레이페어는 1700년부터 1780년까지 영국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대상으로 한 무역수지를 한눈으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그래프를 만들었다. 플레이페어의 도표로 시작한 근대 인포그래픽은 이후 정보 전달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림2-플레이페어의 도표-인포그래픽시작 s.png

[그림2]스코틀랜드의 플레이페어가 제작한 1700~1780년 사이의 영국의 무역수지 도표. 이 도표는 근대적 인포그래픽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정보 전달에서 인포그래픽이 갖는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의 폴라그래프(polar graph)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죽는 병사의 대부분은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에 벌어진 크림전쟁(1853~1856)에서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이때 참전한 영국 병사들 가운데 정작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염병으로 인해 죽어갔다. 부상병 간호를 위해 전쟁터로 파견된 나이팅게일은 이 사실을 현장에서 깨닫게 된다. 이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설득하기 위해 그녀는 그러한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한 그래프를 개발했다. [그림3]에서 회색 부분은 ‘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자를 표시하고, 빨간 부분은 전투로 인한 사망자, 그리고 검은색은 기타 사망자를 표시한다. 나이팅게일의 그래프는 누가 봐도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위생 대책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림3-나이팅게일 그래프.jpg 

[그림3]나이팅게일의 인포그래픽. 크림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대부분은 전투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최근 현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기초해 정보의 인포그래픽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구글 엔그램 뷰어(Google Ngram Viewer)’다. 구글은 지난 1500년 이후 발간된 800만 권의 책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었다. ‘엔그램(n-gram)’이란 컴퓨터 언어로 주어진 텍스트에서 n개의 단어나 아이템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뜻한다. 엔그램 방식을 취하면 빈도수가 적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케이스들을 제거할 수 있다. 구글의 엔그램 뷰어는 데이터가 풍요로울수록 강력해지는 인포그래픽의 효과를 한눈에 보여준다. 아울러 단순히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인포그래픽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통찰을 가능케 하는 계기까지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활자화된 문서에서 언급되는 단어의 빈도수로부터 우리는 해당 단어의 역사적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 구글 엔그램 뷰어에서 ‘Korea’와 ‘Japan’을 검색해보자. 그 결과는 [그림4]와 같다. [그림4]로부터 우리는 서구 문헌에서 언급된 ‘Japan’은 1941년과 1942년에 가장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던 해다. 그러나 ‘Korea’의 경우, 그 내용이 조금 다르다. ‘Korea’는 1990년에 가장 빈도수가 높았다. 그 다음으로 높았던 해는 1953년이다. 1953년은 한국전쟁의 휴전이 이뤄진 해다. 왜 서구 문헌에서 ‘Korea’의 빈도수가 높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에 ‘Korea’의 빈도수가 왜 높았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리는 1990년에 있었던 사건들을 추적하며, 그 이유에 대한 가설을 찾기 시작한다. (1990년에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는지 난 아직 찾지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들의 관계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 뜻밖의 통찰을 얻게 되는 것을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림4-한국일본엔그램뷰.png


[그림4]‘구글 엔그램 뷰어(Google Ngram Viewer)’에서 ‘Korea’와 ‘Japan’을 검색한 결과. 서구 문헌에서 언급된 ‘Japan’은 1941년과 1942년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던 해다. 한편 ‘Korea’의 경우, 1990년에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 높았던 해는 1953년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화된 정보를 이용한 인문학적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다. 디지털 인문학 분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연구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는 ‘편지공화국 지형도(Mapping the Republic of Letters)’ 프로젝트다. 17~18세기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지식을 공유해왔는가를 ‘편지 교신’을 추적하여 밝혀내려는 시도다. (이 프로젝트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republicofletters.stanford.edu .)

 

예를 들어 [그림5]는 1650년부터 1785년 사이에 유럽 계몽주의의 주요 인물인 볼테르(Francois-Marie Arouet Voltaire, 1694~1778)와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편지 교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노란색은 볼테르의 흔적이고, 파란색은 로크의 흔적이다. 이 그림을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볼테르 사상과 로크의 사상은 각기 다른 적용 범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크의 편지는 대부분 영국에서 주고받은 반면, 볼테르가 주고받는 편지의 흔적은 전 유럽 대륙에 걸쳐 있다. 이 같은 아주 단순한 데이터로부터도 우리는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5-볼테르와 로크.jpg

[그림5]로크와 볼테르가 각기 주고받은 편지의 흔적. 이 간단한 데이터로부터 우리는 아주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전신과 전화가 발명되기 전, 서유럽 지식인들에게 ‘편지’는 자신의 지식을 전파하고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이 편지의 흐름을 추적하면 유럽 대표 지식인들의 사상과 철학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즉, 지식의 계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편지의 발신지, 수신지, 발신 날짜 등의 데이터를 통해 그동안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편지공화국(the Republic of Letters)’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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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문화심리학자이자 '나름 화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에디톨로지> <남자의 물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현재 전남 여수에서 저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