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 제가 몇 주 전에 우리 단톡방에 링크를 하나 공유했죠. 제 시 「청춘」을 인피니트의 엘님이 낭독한 영상이었어요. 그런데 첫 댓글이 뭐였냐면요, “얼굴이 미래다” (웃음) 그때 우리의 엄프로, 프랑소와 엄님께서 다음 <어떤,책임> 주제로 이걸 패러디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래서 정한 주제! 오늘 <어떤,책임> 주제는 ‘표지가 미래다’ 입니다.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은유 저 | 유유
이 책은 얼핏 심플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초록색 표지에 흰색 글씨만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게 뭐지?’ 하게 되거든요. 표지가 특이해요. ‘쓰기의 말들’이라는 제목이 가운데에 있고요. 나머지는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서 디자인했어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가운데 있는 ‘쓰기의 말들’이라는 말을 빼고는 쓰기의 말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죠. 이것은 마치 ‘쓰기’라는 것은 다 쓰기 전까지는 아직 쓰는 과정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책 읽고 나니까 더 좋더라고요.
이 책의 부제가 또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예요. 왠지 이 책을 읽으면 쓰고 싶은 마음과 쓸 수 있는 용기가 다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아니나다를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글을 마구마구 쓰고 싶고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서 마음에 일렁임을 가져다 주고 싶더라고요. 디자이너를 찾아봤더니 저의 책이죠. 『너랑 나랑 노랑』 을 디자인 해주신, 이기준 디자이너께서 디자인 해주셨더라고요.
책 왼편에는 어떤 책에서 뽑은 문장이나 작가가 한 이야기가 있고요. 오른편에는 거기에서 발아한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비법, 글쓰기를 하면 좋은 점 등이 설명되어 있어요. 일상과 작가님의 철학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책이 풍부해진 느낌이 납니다. 책 프롤로그에는 은유 작가님이 이렇게 쓰셨어요.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부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이 책이 그들의 존재 변신을 도울 수 있을까.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이 표지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개인만의 사연으로 담길 것 같아요. 또 이 책이 재생종이로 만든 책이라고 해요. 저는 이 책을 통째로 사랑하게 됐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노세 나쓰코, 마쓰오카 고다이, 야하기 다몬 저 / 정영희 역 | 남해의봄날
남해의봄날 출판사에서 아주 최근에 출간된 책이고요. 일본의 북디자이너, 사진작가, 책 편집자 세 명이 인도의 출판사 '타라북스'라는 곳을 취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먼저 표지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 이 이미지는 타라북스를 세계적으로 알린 책 『나무들의 밤』에 수록된 이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타라북스의 창업자 기타 울프는 "우리는 작게 존재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다시 『나무들의 밤』 이야기를 조금 하면요. 여기 사용된 종이는 면으로 된 폐직물을 재활용한 거예요. 또 중요한 것은 화학약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나무들의 밤』 본문 종이가 검정색이거든요. 이 종이는 검정색 폐직물로만 만든 것이라는 거예요. 멋지죠? 게다가 실크스크린 인쇄를 하는데요. 한 색깔씩, 한 쪽씩, 『나무들의 밤』은 책 한 권당 찍고 말리는 작업을 82회나 반복했다고 합니다. 제작 기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거죠. 『나무들의 밤』이 2008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거든요. 그러니까 세계 각지에서 얼마나 주문이 많았겠어요. 그런데 이 출판사는 직원을 더 늘리거나, 작업량을 늘리지 않습니다. 주문 전화를 받으면 "6개월 걸린다"라고 말하는 거죠. 오히려 그렇게 답변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그 자체도 타라북스에게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창업자 기타 울프의 말을 읽어드릴게요.
우리는 규모를 크게 만드는 것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일의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직원이 스무 명 정도라면 일을 하며 그들 개개인과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러나 오십 명으로 늘어난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됩니다. 그게 잘 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책의 질, 동료들 간의 관계, 일과 사람의 관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희한하죠. 그냥 출판사의 철학과 제작 과정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되게 위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이 책은 출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나 책 편집자 분들이 읽으셔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프랑소와엄이 추천하는 책
『책섬』
김한민 저 | 워크룸프레스
이 표지, 어떠신가요? 여기 주인공 두 명이 있죠. 한 명은 ‘저자’예요. 주인공 이름이 ‘저자’이고요. 한 명은 ‘책병’에 걸린 어린이입니다. 제 옆에도 천재 시인이 앉아 계시지만(웃음) 김한민 작가님도 제가 천재 같다고 생각하는 작가님 중 한 분이고요. 『책섬』 은 2014년에 나온 책인데요. 딱 봐도 4년 지난 책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이 책을 처음 펼치면 도입부에 서문 같은 글이 있어요. 마야콥스키라는 러시아 시인의 말이에요.
“책! 책이라니? 나도 한때는, 책이란 게 그렇게 써지는 줄 알았지.”
너무 멋있고요. 시작부터 이 책이 무슨 책인지 궁금해 하게 돼요. 그림 소설인 동시에 자전 소설의 느낌도 있는데요. “나도 어느새 폭싹 늙어버렸어. 책이 쇠락하는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태어난 죄지. 시대와 호흡할 재간이 없어 자발적 귀양을 택해 평생 혼자 살아왔으니.”라는 문장을 보고 이 책을 작가분들이 읽으시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어요. 시인, 소설가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 생각했고 책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분들도 읽으시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저자’는 혼자 책을 짓다가 문득 독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 짓는 기술을 전수해 줄 한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린 아이가 걸렸는데 이 아이는 ‘책병’이라는 병에 걸렸어요. 이건 모든 물건을 책으로 상상하고 생각하고 착각하는 병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눈이 멀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거죠. 하지만 이 아이는 “사람들은 병이라는데 나는 내 병이 싫지 않아요”라고 말해요. 저자도 “책병은 치료할 만한 병은 아닌 것 같구나”라고 말하고요. 이들이 책을 지으러 책섬으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1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