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건축과 도둑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책 『도둑의 도시 가이드』 , 차분하게 음미할 수 있는 포토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뇌의 놀라운 역할에 대해 알려주는 『스스로 치유하는 뇌』 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저/김주양 역 | 열림원
저자가 도둑은 아니고요(웃음). 전공은 미술사이고, 원래는 기자로 여러 매체와 대학에서 강의와 기고를 하시는 분이에요. 2004년에 건축 전문 블로그를 시작해서 건축, 범죄, 환경에 관련된 글을 쓰다가 그걸 다 아울러서 『도둑의 도시 가이드』 라는 책으로 묶은 겁니다. 이 분의 주장이 흥미로운데, 도둑만큼 건축을 잘 이해하는 자들이 없다고 말해요. 도둑은 항상 매의 눈으로 ‘내가 저 건축물에 어떻게 침입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자들이잖아요. 그리고 건축물에서 ‘이곳으로 들어가시오’라고 하는 문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죠. 아예 문을 만들거나 건물 외벽에 아주 작은 벽돌을 이용하는 식으로, 새로운 길과 경로를 개척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이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문과 상관없이 건물을 뚫어버리고 천재이자 바보이다”라고 말하는데요. 정말 천재적으로 건물을 이용하는데 한편으로는 바보 같잖아요. 문을 놔두고 모든 힘든 길을 만들어서 들어가려고 하니까요.
이 책은 ‘도둑들이 어떤 식으로 도시를 털었는지’ 관련된 사례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그 결과 도시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보여줘요. 사실 도시와 건축이 발전하는 데 도둑의 영향이 크거든요. 수시로 도둑이 들락거리니까 방범 시설, 경찰 순찰도 강화하게 되는 거예요. 16~17세기 파리에서 길에 조명을 설치한 것도 사실은 방범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길에 조명을 설치하니까 파리가 빛의 도시, 아름다운 도시로 명성이 난 거예요.
또 도둑만큼 건물의 생태까지 포함해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어요. 직원이 몇 시에 출근하는지, 언제 점심을 먹으러 가는지,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건축의 전체 환경을 조망하는 존재인 거죠. 그래서 맥도날드 같은 곳이 오히려 털기 쉽다고 해요. 전 세계적으로 매뉴얼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직원이 언제 들어가고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서 일을 하는지 다 똑같으니까, 바늘구멍 같은 작은 흠집만 찾아내면 전 세계의 맥도날드를 다 털 수 있는 거죠.
『도둑의 도시 가이드』 는 도둑이 어떻게 도시를 발전시켰는지, 도시 계획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인데요. 정말 재밌어요. 사례도 웃기고요. ‘건축을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의 선택 -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헤르츠티어 저 | 싱긋
이 책은 포토에세이인데요. 헤르츠티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는 강건모 저자님이 찍고 쓰신 책이에요. 이 분은 낮에는 편집자이시고요. 밤에는 도시를 다니시면서 사진을 찍으세요. 촉촉하기도 하고 스산하기도 한 이미지들이 실려 있습니다. 독일어로 헤르츠가 ‘마음’, 티어가 ‘짐승’이라고 해요. 소설 『마음 짐승』 속의 한 문장에서 따와서 지은 필명이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지난 한 주 동안 조금 우울했어요. 머릿속에 많은 양의 지식을 빼곡히 넣고 싶지 않고 마음의 템포를 늦추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차분하게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한 거죠. ‘이 ‘갬성’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갬성’이다’라는 생각으로 선택했습니다. 사진도 정말 느낌 있고요. 글도 너무 좋아요.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이야기를 끌어내는 저자의 남다른 시각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가지고 오신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사진을 찍을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을 적은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요.
「슬픔의 중력」이라는 제목의 글은 많은 분들께 읽어드리고 싶어요.
“저 홀로 엎드려 아득한 것. / 우는 사람의 밤에 바치는 짧은 수사. // 슬픔은 기쁨의 과도기가 아니라 /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 슬픔은 부끄럽지 않다. / 슬픔은 틀린 것이 아니다. / 슬픔은 다친 자의 권리다. // 그러니 당당히 슬픔을 허하라.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세상에 없다.”
우리에게 암묵적인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슬픈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는. 슬픔은 빨리 털어버려야 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강요하는 것 같은데요. 그럴 때 이런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도 프롤로그에 이렇게 쓰셨어요.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사랑하고 상실의 슬픔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랑뿐 아니라 그 슬픔 역시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톨콩의 선택 - 『스스로 치유하는 뇌』
노먼 도이지 저/장호연 역 | 동아시아
얼마 전에 박연준 시인이 <측면돌파>에 출연하셨을 때 말씀하셨던 책인데요. 그때 제가 박연준 시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같이 좋아하는 책도 있었고요. 그래서 박연준 시인이 재밌게 읽으신 책은 저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뇌과학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요. 또 장호연 번역가가 옮기신 책이에요. 저는 장호연 번역가를 아주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더더욱 읽어봐야겠군’ 하는 생각으로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쓴 노먼 도이지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 주로 토론토에서 지내고 있어요. 교수이자 작가, 평론가, 시인으로 활동하고 『기적을 부르는 뇌』 라는 베스트셀러를 써서 100만부 이상 판매했던 사람이고요. 그 책이 출간된 이후에 심화된 다른 이야기들도 담아서 『스스로 치유하는 뇌』 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만성통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교통사고가 나서 급성통증을 다 치료했는데도 그것이 만성통증이 돼서 오랫동안 굉장한 통증에 시달린다든가 하는. 그런데 그건 아픈 신체부위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라는 거예요. 몸은 나았는데 뇌는 아직 아프다고 인식하고 있고, 그래서 뇌가 스스로 ‘너는 지금 그곳이 아파’라고 신호를 줘서 아픈 거라는 이야기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서 실제로 만성통증을 겪던 사람들이 아팠던 부위가 낫고, 못 걷던 사람들이 걷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재밌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빛으로 뇌를 재배선하다’라는 4장이었어요. 햇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뇌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데요. 우리는 건물 안에 들어와서 조명 아래에서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하루 종일 햇빛이 차단된 곳에 있는 건 뇌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은 거예요. 뇌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좋지 않은 거죠. 4장의 제일 앞에 이런 이야기가 놔요. 나이팅게일이 한 말인데요. “내가 환자들을 돌보면서 거듭 확인한 사실은 신선한 공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빛이라는 것이다. 꽉 닫힌 문 뒤에서 환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캄캄한 방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냥 빛이 아니라 햇볕을 직접 쬐는 것이다. 사람들은 빛의 효과가 정신에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태양은 화가일 뿐 아니라 조각가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많이들 하잖아요. 앞으로는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가 많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게 신체적인 아픔, 질병에 대응하는 데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스스로 치유하는 뇌』 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65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