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하다 보면 작가를 이 책이 저 책을 비춰주어서, 전에는 흐릿했던 것이 또렷해지기도 하지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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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세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정영목 옮김’에서 처음으로 ‘정영목 지음’으로 나온 책인데, 느낌이 어떠신지요?

 

제 주위에도 옮긴이에서 지은이로 바뀐 것을 축하하는 분들이 계신데, 마음은 고맙게 받지만 사실 그 자체가 축하받을 일은 아니죠. 저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글 쓰는 분들 가운데 존경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건 그 분들이 지은이라서가 아니라 훌륭한 지은이라서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제가 지은이가 된 것도 그 자체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옮긴이에서 영전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얼마나 좋은 지은이일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안타깝게도 점수가 높지는 못합니다만). 이건 제가 옮긴이일 때 그 자체로 무엇보다 못하거나 낫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얼마나 좋은 옮긴이이냐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유학 경험이 없단 걸 알면 많은 독자와 번역가 지망생이 의외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번역가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91년에 시작하셨지만 번역이 생업이라는 자의식은 10년쯤 뒤부터 가지셨다고요.


유학을 안 가서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지만, 그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적은 많습니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는 “어쩌다가”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그 시절만 해도 번역은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저 또한 자유롭게 내 시간을 쓰면서 생계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앞의 “어쩔 수 없이”가 서서히 떨어져나간 것 같고, 그러면서 자유롭기는커녕 제 생활이나 생각까지 번역에 얽매이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 생업이라는 건 그렇게 사는 방식까지도 받아들였다는 뜻이겠죠.

 

번역 의뢰를 수락하는 기준과 기본적인 번역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수락’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어쨌든, 어떤 것이든 한 가지라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면이 중요한 듯합니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것은 꽤 긴 작업이므로 그런 유인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겠지요. 물론 그밖에 해당 저자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작용하고요. 번역 작업은 누구나 할 만한 ‘표준적인’ 방식으로 합니다. ‘동시에 여러 권’이라는 말은 소설과 인문을 병행하면서 내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는 말이 좀 와전된 듯하네요. 하지만 집중력이나 지구력이 약해서, 한 권을 오래 진득하니 잡고 있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를 보면 번역가가 추구해야 할 번역은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했을 때, 그건 어떤 면에서는 외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가 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회색의 언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것을 굳이 기존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묶어두려고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물론 미숙한 한국어 구사를 정당화하자는 뜻은 아니지만요). 외국어에서 오는 자극을 즐기고, 그것을 활용해 우리말의 외연, 우리말의 회색의 영역을 넓히는 게 번역의 중요한 재미이자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삶도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을 보면 필립 로스나 알랭 드 보통 등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럿 번역하셨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새로이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에 대한 마음도 일반 독자들과는 다를 것 같고요. 최근에 필립 로스의 타계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요.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하다 보면 작가를 이 책이 저 책을 비춰주어서, 전에는 흐릿했던 것이 또렷해지기도 하지요. 또 번역이라는 건 일차적으로 매우 꼼꼼한 읽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미세한 버릇이나 작은 변화도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그럼 왠지 작가 본인보다 작가를 더 알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왜 우리도 가까운 친구의 경우에는, 친구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 같은 걸 알게 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큰 작가의 경우에는 쉽게 자신을 알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산맥처럼 커서 산 하나만 올라가 봐서는 전모가 잘 안 들어오는 거지요. 사실 산 하나를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요. 몇 개를 올라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전모를 조금은 알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말 가볼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로스는 그런 큰 작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과 무관하게 평소 즐겨 읽는 책은 어떤 책인지,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업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읽는 양으로만 따지자면 우리 소설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꼴지로나마 흐름을 따라가 보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그 외에 다른 여러 분야에도 아직 호기심이 남아 있고, 또 새로 배우고 싶은 분야도 생겨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또 제 즐거움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만화인데,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권하고 싶네요. 그 책 한국어 번역판을 들고 가마쿠라를 어슬렁거리는 중늙은이가 눈에 띈다면, 그게 저일 확률이 아주 낮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두 책은 언뜻 성격이 달라 보이지만, 번역 작업의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권에는 그 작업 자체에 대한 생각, 즉 번역 작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주로 담겨 있습니다. 미리 주의를 드리자면, 번역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또 한 권은 그 작업에서 파생된 작업, 예를 들어 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생각이 주로 담겨 있습니다. 역자후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자리에서 하게 된 이야기를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번역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글들도 조금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데까지 관심이 미치신다면, 자랑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내서 한번 훑어봐 주시면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정영목 저 | 문학동네
번역 실무에 대한 테크닉보다는 번역의 윤리와 역할, 번역가의 글쓰기 문제 등 번역가 지망생이 생각해봄직한 화두를 다루어 ‘번역가의 일’에 대한 저마다의 성찰을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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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