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이것은 삶에서 나온 말입니다”
글을 처음 배운 사람들이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막힌 둑을 뚫고 터진 생각들을 아무 꾸밈없이 연필 끝에서 나오는 대로 썼는데, 말 그대로 거침이 없는 시였어요. (2018.05.24.)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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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으로 사는 설움을 우리가 어찌 알까? 글을 모르면 간판 하나 읽을 수 없고, 버스를 탈 때도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은행 일을 보거나 택배라도 보낼라 치면, 서명도 못 하냐고 핀잔을 받기 일쑤다. 온갖 설움 속에서 못 배운 한이 가슴에 사무친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배워 당신들의 마음을 시로 그려냈다. 

 

『엄마의 꽃시』 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가운데서 100편을 엄선해 김용택 시인이 엮고 감상을 보탠 책이다. 시를 쓴 할머니들은 이제 겨우 글눈이 트여서 맞춤법도 서툴다. 하지만 저마다 꾸밈없는 진솔한 시로 시인을 부끄럽게 만들고 시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섬진강변 서재에서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며 생각을 보탠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인도 아닌 할머니들의 시를 책으로 엮고, 그분들의 시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궁금해요.

 

지자체가 운영하는 대중강연이나 교양강좌에 가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오세요. 그분들에겐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게 별 의미가 없어요. 나는 그분들이 어떻게 잘 살아오셨는지를 확인시켜 드립니다. 글쓰기로 말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쓴 글을 통해 글쓰기가 얼마나 쉬운 것인가를 보여드립니다. 어느 날은 한글학교 학생들과 하루를 보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분들이 글을 아주 잘 쓴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글을 처음 배운 사람들이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막힌 둑을 뚫고 터진 생각들을 아무 꾸밈없이 연필 끝에서 나오는 대로 썼는데, 말 그대로 거침이 없는 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시집의 원고를 건네받고 내 생각을 보태라는 편집자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며 목이 메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특히 어떤 대목에서 그러셨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지 58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한글을 깨친 분들이 있다니요. 아마 여기 시를 쓰신 분들이 문맹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호미를 들고 들길로 나갈 때 이웃집 또래들이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것을 보며 그 어린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많은 시들이 그런 가슴 아픈 시들입니다. 놀랍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 때로 행복한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슬픔이 복받쳐 글을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꽃시』 를 읽고 눈물 흘렸다는 분들이 많은데요,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고 보세요?


이 시집의 시를 쓴 분들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분들입니다. 역사가 무엇인지, 산업화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이죠. 이념으로 살지 않았고, 오직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시집살이 고된 노동 속에서, 글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무시와 멸시 속에서 억눌려 살아오신 분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인간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시집의 시들 중에 우리들을 가장 눈물짓게 하는 것은 ‘그랬음에도’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시들입니다. 놀랍지요. 감동입니다. 이 시집은 진정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 그 길을 가르쳐주는 교과서입니다.


할머니들의 시를 보면 상투적이지 않고 재미난 표현이 참 많습니다. 시작법을 배우지도 않은 분들이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삶이지요. 삶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구구절절한 삶 속에서 절로 터진 시들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농부들은 헛짓을 하지 않습니다. 괭이 끝은, 호미 끝은 정직합니다.


시를 잘 읽지 않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때 시험 문제가 시를 짓는 것이었어요. 시제에 맞게 시를 잘 쓴 사람들을 뽑아 관리를 시켰어요. 놀랍지요. 시를 잘 쓴 사람이 나라를 관리하다니요. 지금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요. 시를 이해하면 문리가 터져서 세상의 순리와 이치대로 나랏일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거예요. 시를 이해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얻습니다. 시를 이해하면 세상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돼,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한 편의 시를 이해하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을 얻게 되지요. 받아들여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힘이 생깁니다. 시는 받아들이는 힘을 갖게 합니다.


글을 쓰실 때 염두에 둔 독자가 있나요? 특히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딱히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어머니들의 시가 삶의 외침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목이 메고 설움에 복받쳐도, 내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속극을 볼 때 주인공이 서럽게 울어버리면 우리는 그냥 덤덤하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이 울어버리면 우리는 웃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슬픔은 깊이 감출수록 더 슬프지 않을까요? 책이 출판되고 나서 다시 읽어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아내는 엉엉 우느라 다음 시를 읽지 못했어요.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에 아마 이 나라 딸들이 가장 많이 울 거예요. 우리는 그만큼 격정의 시대를 살아왔고, 또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 나라에 반드시 있어야 할, 우리 어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는 해원(解寃)의 시집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어르신부터 학생까지 어머니들의 시를 읽고 인생에 대한 감사함과 희망을 배우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시를 쓰거나 글을 쓰려는 분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세요.


시를 쓰려고 하면 시를 쓸 수 없습니다.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쓰면 됩니다. 생각을 쓰다 보면 글을 쓰는 요령이 생기고, 생각도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또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생기고, 자기가 살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호미질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호미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서툴게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어허, 어깨 힘 빼고.”


 

 


 

 

엄마의 꽃시김용택 역 | 마음서재
우리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 용기를 주는 시, 다시 희망으로 살아가게 하는 ‘엄마의 꽃시’는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 주는 엄마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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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시 #김용택 시인 #까막눈 #할머니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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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

2018.05.30

저도 모르게 힘주고 있던 어깨를 툭 하고 내려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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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