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꼭 일이 몰리는 주간이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액션 영화처럼 어딘가에 매달려 광란의 스피드를 온몸으로 맞는 때, 할 일 목록을 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당장 들이닥치는 일부터 해결해야 하는 때. 그럴 때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하나의 일만 붙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대개 돈이 안 되는 것들을 나는 취미로 다루지 않고 일이라고 부른다. 돈을 버는 밥벌이가 아니더라도, 재밌거나 의미 있어 보이거나 도의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일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최근에는 (회사 일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고, 독립잡지를 만들고, 책방을 지키고, 행사를 기획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합창을 하고, 자산관리 세미나를 듣고, 시를 쓰는 모임을 시작하고, 1인 미디어 채널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괄호에 들어간 일 빼고 어느 것도 나에게 시간을 뺏어갈지언정 돈을 주지 않는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나는 틈만 나면 일하기 싫은 사람인데, 문제는 일을 안 하면 끝날 고리를 하기 싫은 일 대신 다른 일을 만들어서 계속 이어나간다. A가 싫으면 B를 하고 B가 싫으면 C를 하다가 ABC가 차례대로 속도가 붙으면서 슬렁슬렁 걷던 일이 겅중겅중 뛰다가 종래는 녹초가 될 때까지 뛰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괜찮지 싶어 시작한 일들은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어 쳇바퀴에 미친 햄스터처럼 한 달을 증발시키기를 반복한다. 돈은 티끌을 모아 티끌인데 왜 일은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되나.
기억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재테크에서 여러 수단에 투자하면서 자본을 잃을 위험을 줄이듯이, 나는 내 인생에서 위안이나 성취감을 하나의 일에만 몰아넣는 게 불안하다. 전문가가 되지 못할지언정 이 일이 힘들면 다른 일에서 위안을 찾고, 저기 일이 잘 안 되면 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모든 일이 다 엉망이 되더라도 하나씩은 소소한 기쁨을 주는 일이 생긴다.
하나의 일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기쁨도 크지만 잘 안 될 때마다 슬픔과 절망도 커진다. 나중에는 일이 꼭 나인 것만 같고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내가 무시당한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술 먹고 집에 간다는 사람 붙잡아 놓고 "내가 싫어요? 우리가 남입니까?" 하면서 투신과 헌신의 부탁을 빙자한 화풀이를 하는데, 볼 때마다 안타까우면서도 몰빵 투자의 위험성을 곱씹고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일과 관계는 얼마나 우리를 쉽게 배반하는가.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시대에 일을 늘리는 것은, 게다가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늘리는 행위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까. (신체 건강은 분명 해를 끼친다. 저번 주에는 커다란 구내염이 생겼고 비타민 B와 마늘 주사를 들이부어서 간신히 잠재웠다) 그러나 모두가 자아존중감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존감 인플레이션 시대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바닥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 리스크 헤지 차원에서 뭔가 일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많이 성취하고 싶은 것도, 어쨌든 뭐라도 하고 있다는 위안으로 인생을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이고, 일은 일이다. 일이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중요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일을 벌이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당위와 헌신은 일과 사람 모두를 피곤케 한다. 언제까지나 즐거워지자고 하는 게 일이다. 뭐라도 크게 얻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덤벼들면 금방 나가떨어진다.
일과 나 자신이 분리된 척, 인생의 경험이 흘러 넘치는 척 말은 많이 하면서도 사실 언제 잡아먹힐지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일은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는 습성을 가졌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대로 말려들어간다. 그래도 성격이 이런 걸 어쩌나. 성실하게 일과 일 사이를 저글링해야지.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면 일을 늘리면 늘렸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달에는 취미로 하던 농구를 일로 만들어서 아마추어 농구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워커홀릭이다. 그저 남한테 내 일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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