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판 추리 사극
연극 <여도>는 단종의 죽음과 관련 된 미스테리를 다루는 작품이다. 계유정난으로 발생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사건이라는 팩트를 기반으로, 그 안에 새로운 픽션을 가미한 팩션(Faction) 연극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지난 겨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되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이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여도>의 시작은 단종의 죽음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각기 다르다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실제 연려실기술을 포함한 다른 역사 책에는 그 날짜가 10월 24일로 기록 되어있으나, 세조실록에만 단종의 죽음이 10월 21일로 기록되어 있다. <여도>의 창작진들은 그 사실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하고, 인물을 창조하며 작품을 풍성하게 채워 나간다.
작품의 주인공은 세조와 혜빈 정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성. 이성은 부군인 세조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총명하고 품위 있는 왕자로 성장한다. 이성이 성인이 되고, 왕자의 봉군을 받는 봉군식 연회날, 의문의 자객이 침범하여 봉군식은 엉망이 된다. 자객이 쏘고 간 화살에서 “홍위(단종)의 죽음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 이성은 선왕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각기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역사책,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이성의 의문은 커져만 간다. 이에 이성은 이를 반드시 밝혀내리라는 강한 의지로 궁 밖으로 나가기 위해 미친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소문을 꿰고 있는 거리의 광대 패거리와 어울리며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 과정 속에서 이성은 자신이 세조의 아들이 아닌, 단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동안 숨겨져 왔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여도>는 그 흐름이 굉장히 정직하리만큼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출생의 비밀, 복수, 새드엔딩 등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이 전체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많이 닮아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숙부의 추악한 욕망이 만든 엇갈린 운명, 그 진실을 밝히는 복수의 방법 등 모든 과정이 햄릿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때문에 이미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다소 진부하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그 큰 줄기를 이어가는 세세한 스토리의 힘이 약하다보니, 그 진부함을 씻어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그 복수를 통해 이성이 어떤 것을 얻어 내려고 했으며, 이 픽션을 더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다소 불분명하다. 세조의 캐릭터 역시 기존에 그려졌던 바와 다르게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부각 시켰으나, 그 설정의 힘도 다소 약하다. 불필요한 장면이나 깊은 사유가 없는 단편적인 대사,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력 등 또한 <여도>가 주는 아쉬움을 더한다. 각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을 관객이 충분히 이해하기엔 연기력도, 그 캐릭터가 주는 설득력도 다소 모호하다.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충분히 흥미를 유발할 수 있기에 작품을 보다 더 보완하면 더 탄탄한 완성도를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소리꾼을 해설자로 등장시키고 국악 연주를 라이브로 진행하는 등 사극 연극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다양한 요소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도>는 오는 5월 23일까지 예술의 전당 CJ토월 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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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