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코피가 나는 아이
침착하게 아이를 어디 앉히세요. 않을 곳이 없다면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주 약간 고개를 숙이게 하고 엄지와 검지로 코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꼭 잡아 누르세요.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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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코피를 흘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


“엄마, 아빠, 빨리 와 보세요. 큰일 났어요!”


“아니, 얘가?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뛰어 오고 그래?”


“현우가 코피 나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요.”

 

숨이 턱에 닿은 큰 애를 따라 급히 달려 나갑니다. 머릿속에서 걸음만큼 빠른 속도로 몇 가지 생각이 줄달음질칩니다. 다섯 살 난 둘째는 요즘 부쩍 코피를 자주 흘립니다. 지난 겨울 감기에 걸렸을 때 코 푸는 법을 배워 재미를 붙였는지 자꾸 코를 풀었습니다. 하루는 큰 소리로 세게 코를 풀더니 갑자기 코피가 난다고 달려왔습니다. 그 뒤로 툭하면 코피가 납니다. 코를 풀거나 후벼서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절로 흐르거나 심지어 자다가 이불이 엉망이 된 적도 있습니다.

 

지난 주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낮잠을 자던 아이가 어딘지 불편한 듯 끙끙거리며 일어나더니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습니다. 놀라서 들쳐 업고 한달음에 동네 소아과로 뛰었지요. 선생님은 별로 놀라지 않고 바로 코피가 났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코피가 나서 휴지로 코를 막고 눕혀 놓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코피가 목 뒤로 넘어가 위에 고여있다가 토한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음에는 눕히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지 말고, 코를 휴지로 막지도 말고, 아주 약간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코를 10분간 손가락으로 꼭 잡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라면 지켜보면서 검사도 해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죽 봐왔던 현우는 건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또 코피가 나다니… 이번엔 정말 검사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린이들이 코피를 흘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누구나 어려서 한두 번은 코피를 흘려보았을 겁니다. 신생아는 코피가 나는 일이 거의 없지만,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략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별스런 일도 아니지요. 유난히 코피가 자주 나는 아이도 있는데, 아빠나 엄마가 어렸을 때 그랬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안 내력이지요. 하지만 아무런 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아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저절로 코피 흘리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그러니 우선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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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균을 걸러내는 코

 

그런데 왜 어린이들은 코피가 잘 나지요? 아니, 그보다 왜 “코”에서 피가 잘 날까요? 눈이나 귀나 입에서 피가 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죠. 코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합니다. 첫째는 냄새를 맡는 거고, 둘째는 숨쉴 때 공기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코에서 냄새를 맡는 부분은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뇌의 바로 아래쪽이지요. 어찌나 뇌와 가까운지 이 부분을 통해 뇌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코의 후각세포는 사실상 뇌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부분은 잦은 코피와 별 상관이 없으니 일단 제쳐둡시다.

 

그럼 숨쉬는 기능이 남네요. 우리 몸은 오랜 진화를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엄청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코가 너무 낮다고, 예쁘지 않다고 불만이라면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우선 코는 공기를 “숨쉬기 좋게” 만들어 기관지와 폐에 전달합니다. 숨쉬기 좋은 공기는 어떤 공기일까요? 따뜻하고, 습도가 적당하고, 깨끗한 공기입니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갑고 건조한 날씨 속에서도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기관지로 들어가기 전에 체온과 1도 내외로 데워집니다. 습도도 숨쉬기 좋게 맞춰지지요. 그뿐인가요? 먼지가 많은 곳에서 숨을 쉬더라도 코에서 대부분의 이물질을 걸러내기 때문에 폐에는 (비교적) 깨끗한 공기가 전달됩니다. 그러니 코는 에어컨 히터 가습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한꺼번에 하는 셈입니다.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병원균을 걸러낸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숨을 쉬나요? 예전에도 썼지만 어린이는 분당 20-30번, 하루에 4만 번, 1년이면 1,500만 번 숨을 쉽니다. 그때마다 공기 중에 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들락날락합니다. 숨쉴 때마다 이놈들이 기관지를 거쳐 폐로 들어가면 일년 내내 기관지염이나 폐렴에 시달리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 콧속은 피부가 아니라 점막이라는 조직으로 되어있습니다. “점액을 분비하는 막”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항상 끈끈한 점액이 코팅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콧속에는 “섬모”라고 헤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느다란 털이 나있습니다. 이놈들은 점액을 한쪽 방향으로, 즉 콧구멍 쪽으로 조금씩 이동시킵니다. 숨을 들이쉴 때 공기 중에 있는 바이러스, 세균, 미세먼지가 들어오더라도 콧속 어디엔가 부딪치는 순간 점액에 달라붙어 버립니다. 콧속 깊숙이 있는 점액은 섬모에 의해 콧구멍 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식으로 병원체나 오염물질이 기관지나 폐로 들어가는 걸 막게 되어 있지요. 이 점액이 말라붙은 게 바로 유명한 코딱지입니다.

 

공기를 데우고, 습도를 높이고, 점액을 많이 생산하고, 섬모가 힘차게 운동할 수 있도록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혈액공급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코에는 혈관이 많습니다. 문제는 혈관이 점막 바로 아래 있다는 겁니다. 점막은 아주 얇기 때문에 바로 아래 있는 혈관은 다치기 쉽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속에 염증이 생겨 점막과 혈관이 더 상처받기 쉽지요. 어린이들의 점막과 혈관은 당연히 더 약하겠지요? 게다가 아이들은 코감기에도 잘 걸리고, 코를 후비거나, 심지어 콧속에 뭘 집어 넣기도 합니다. 그러니 코피가 잘 날 수 밖에 없지요.

 

침착하게 아이를 어디 앉히세요.

 

코피가 나면 이렇게 하세요. 우선 침착해야 합니다. 피를 보면 겁이 나지요. 자녀의 피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불안해 하면 아이는 몇 배 불안합니다. 침착하게 아이를 어디 앉히세요. 앉을 곳이 없다면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주 약간 고개를 숙이게 하고 엄지와 검지로 코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꼭 잡아 누르세요. 세게 누를 필요는 없지만 10분은 눌러야 합니다. 멎었는지 자꾸 들여다 보지 말고 10분을 진득하게 누르세요. 손을 떼보고 멎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10분을 누릅니다. 차가운 걸 코에 대주면 좋지만 없어도 됩니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 피가 멎습니다.

 

코피는 당황스럽긴 해도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창백해 보이거나, 땀을 많이 흘리거나, 의식이 좋지 않을 때, 양쪽 콧구멍에서 동시에 피가 날 때, 부모가 보기에 출혈이 너무 많은 것 같을 때, 머리나 얼굴에 큰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그리고 10분간 누르기를 두 번 시도해도 피가 멎지 않을 때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혈액응고에 문제가 되는 병을 앓고 있을 때도 병원에 가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미 부모와 아이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몸이 허약하다는 둥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코피는 코를 후비는 습관이나, 지나치게 건조한 집안 환경 때문에 생깁니다. 보약이나 영양제를 먹이는 것보다 손톱을 짧게 깎아주고, 실내습도를 유지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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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어린이 #병원균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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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