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가 개막했다. 이 작품은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 기획 연극으로, <하나코>, <해무> 등에서 고난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특유의 세밀하고 진중한 글로 선보여온 김민정 작가의 창작극이다. 그녀는 지난 2007년 <해무>에서 호흡을 맞춘 안경모 연출과 함께 우주에서 바라보면 한낱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 그 지구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이번 작품은 25년 만에 연극무대에 서는 최불암 씨의 출연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됐는데, 정작 무대에 오른 공연은 어땠을까?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을 보고 생각한, 객석에서 들었던, 그리고 관객들이 생각했음 직한 이야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A블록 8열 7번 : 작품이 쉽지 않네. 뭘 얘기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디테일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A블록 8열 8번 : 뭘 얘기하는 작품인데?
A블록 8열 7번 : 사람은 다 힘들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다, 힘들다고 다른 곳에서 별을 찾으려 하지 말라, 별은 내 가슴 속에 있다,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아름답다... 뭐 그런 거 아닌가(웃음)?
A블록 8열 8번 : 훌륭하네(웃음). 김민정 작가가 천문대에서 별을 바라보다 영감을 얻었대. 그래서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인의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애틋함을 소재로 했다는군. 지구, 별, 우주 등 장치는 뭔가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상처 받고 또 위로 받는 우리네 이야기인 것 같아. 뜻밖의 사고로 불구가 된 남편을 돌보는 아내, 그런데 이 여인이 힘든 건 남편 수발이 아니라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마음을 나눌 수 없다는 점이지. 10년 전 히말라야 트래킹 중 사고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준호는 자신마저 잃어가고, 항상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는 진석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 정작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잖아. 이들의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회로애락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작품이 아닐까.
A블록 8열 7번 : 사는 게 다 그런가? 다들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잖아. 누군가는 상처를 지닌 채 버티고, 그러다 세찬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 무너지기도 하고, 때로는 툴툴 털고 새롭게 나아가기도 하고 말이야.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미스터리한 노인이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이들을 위로하는데, 최불암 씨가 맡은 이 노인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든 살 노배우가 이 모든 걸 관통하는 역할로 나오니까 좀 더 설득력이 있긴 하더라.
A블록 8열 8번 : 그러게, 최불암 씨에게 흔히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잖아.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 기자간담회 때 ‘나이를 먹으니 대사도 금방 잊어버리고, 무대가 어두워서 등퇴장에도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던데, 웬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마이크를 쓰지 않는데도 최불암 씨 소리는 쩌렁쩌렁 울리더라고. 존재감이 대단한 것 같아.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이 짧고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솔직히 대사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등장만으로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뭔지 깨달아야 할 것 같고(웃음).
A블록 8열 7번 : “왜 울고들 있어. 별은 여기 있다니까. 수천 개의 별이 여기 있는데 왜 그걸 몰라. 그러니까 부서지지.”라는 말이 찡하더라. 우리도 하늘을 보면서 별이 안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별이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건 아닌데 말이야. 내가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고 좀 더 껴안을 수만 있어도 보이지 않던 별이 반짝일 수 있겠다 싶었어.
A블록 8열 8번 : 이번 작품은 최불암 씨가 1993년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한 <어느 아버지의 죽음>으로 무대에 선 뒤 25년 만에 참여하는 연극이래.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가 김민정 작가가 2016년 초연한 연극 <아인슈타인의 별>을 재구성한 작품인데, 초연을 눈여겨 본 최불암 씨가 ‘이런 메시지를 담은 연극이라면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는군.
A블록 8열 7번 : 다른 배우들 6명의 연기도 돋보였어. 불구가 된 남편을 연기한 정찬훈 씨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 연기는 물론이고 아내를 무시했다, 매달렸다, 상황에 따라 간사하게 변하는 인간의 심리를 찔릴 정도로 잘 표현하더군.
A블록 8열 8번 : 나는 천문학자인 준호가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히말라야를 다시 찾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 웜홀(Wormhole)을 통한 시간여행으로 연인의 죽음을 막으려고 하는데, 세 번이나 시간을 되돌리지만 과정이 살짝 다를 뿐 결국 연인은 죽잖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잖아.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후회를 많이 하는데, ‘그때 그랬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는 묻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이겠지?
A블록 8열 7번 : 그 생각까지 못했는데. 그럼 마지막 장면에 준호의 죽은 연인과 노인이 만나잖아. 그 장면이 의미하는 건 뭘까? 노인이 날개가 펴지지 않는다며 이젠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잖아. 그건 무슨 말이야?
A블록 8열 8번 : 하나하나 다 이해되면 그건 기사가 아닐까? ‘원래 연극은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라고 말해 볼게(웃음). 요즘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너무 많아서인지 솔직히 내용이나 무대가 썩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별처럼 빛나던 조명은 계속 기억에 남네. 그리고 공연장을 나서는 내내 생각했지. 내 별은 반짝이고 있을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