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소망
극장에 들어서자 마자 관객들을 반겨주는 건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소박하디 소박한 막걸리 집 풍경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다 오늘 하루쯤은 이곳에서 술에 취해도 좋을 것 같은 편한 분위기의 막걸리 집. 시골 마을에 위치해 찾아오기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신기한 집. 연극 <돌아온다> 의 배경이 되는 막걸리 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게 한 쪽에는 막걸리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이 붙여 놓은 포스트 잇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연극 <돌아온다> 는 막걸리 집을 배경으로 주인 남자, 욕쟁이 할머니, 스님, 교사, 필리핀 이주여성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주인 남자는 다소 과묵하고 무뚝뚝하지만,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귀 기울여 들어준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극 중 인물들이 주인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막걸리를 앞에 두고 주인 남자와 주거니 받거니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듯 <돌아온다>는 잔잔하게 자신들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어느새 그 이야기 속에 관객들 또한 깊게 빠져들게 된다.
연극 <돌아온다> 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결핍되어 있다. 그 결핍은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지 못해서, 그 상대를 다시 보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리움이다. 주인 남자는 치매에 걸려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스님은 출가 한 이후 연락이 끊긴 어머니를, 욕쟁이 할머니는 잃어버린 아들을, 청년은 자신을 떠나버린 필리핀 아내를 애타게 찾고 그리워한다. 그 결핍을 오롯이 채울 수 있는 것은 그리워하는 상대가 돌아오는 방법 하나뿐이지만, 그 일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는 그 희망 하나로 힘겹고 고달픈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들과 또 함께 하며 조금씩 결핍을 채워 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막걸리 집을 찾아오고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액자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막걸리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가 그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의미 있고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돌아온다> 는 담담하고 잔잔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과정 속에서 담아내는 가족의 소중함에대한 메시지는 내내 가슴을 울린다. 사실 예측할 수 있는 사건, 어디선가 본 듯한 진부한 이야기와 캐릭터로 인해 작품이 마냥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진 않고, 다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장면이나 캐릭터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다소 아쉬운 부분을 채워준다. 특히 스님 역할을 맡은 최성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속세를 떠난 스님이라는 입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입장을 표현하는 그의 연기력은 압도적이다. 최성준 배우 말고도 주인 남자역의 강성진, 욕쟁이 할머니 역의 김곽경희, 청년 역의 김수로 등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작품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도 역시 제 각각으로 끝을 맺는다. 허나 그 이야기들이 다른 방향으로 끝을 맺게 됐더라도, 그 이야기가 마냥 행복하진 않더라도, 그들은 늘 그랬듯 또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위로를 받고 위안을 주면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한 가지 희망을 안고서.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인 건 아닐까. 사람 냄새를 풍기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돌아온다> 는 오는 5월 5일까지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