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허기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을 담은 『헝거』 , 읽다 보면 바다가 그리워지는 시집 『사랑으로도 삶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 , 전업주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를 준비했습니다.
톨콩의 선택 - 『헝거』
록산 게이 저/노지양 역 | 사이행성
이 책은 자신의 몸과 허기에 대한 정말 진실 된, 너무나 용기 있는 고백이에요. 내 안에 있는 수치스러움이라든가 남들의 시선 앞에 나를 꺼내 놓는 것도 굉장한 두려움이잖아요. 그 두려움을 용기 있게 끝까지 직시해서 썼기 때문에, 읽으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런 진실한 글쓰기가 저한테 영향을 많이 줬어요. 최근에 읽었던 어떤 책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고요. 내 스스로에게 정말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오르더라고요. 한편으로는 ‘하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쓸 수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록산 게이가 열두 살 때 성폭행을 당했어요. 굉장히 끔찍한 기억인데, 그런 일이 있기 전과 후의 이야기도 다 꺼내놓고 있는데요. 그 기억으로부터, 남자로부터, 자신의 수치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엄청난 폭식을 하고 자기 자신을 막 했던 거예요. 그와 관련된 기록도 정말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 못 한 새로운 풍경, 새로운 인식의 장들이 펼쳐졌어요. 자신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펼쳐놓는다는 게 이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경험이고, 그 이야기를 꺼내 놓음으로 인해서 뭔가를 바꿔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어린 나이에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 성적인 경험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잖아요. 그래서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자신의 부분들까지 다 토로를 해놨어요. 자기가 가진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쓴 후에 어떤 것들이 다시 돌아올지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쓴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를 악물고 써나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냥의 선택 - 『사랑으로도 삶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
양광모 저 | 푸른길
이 시집을 일단 제목이 시선을 확 사로잡았고요. 뒷면을 봤더니 시집에 실린 시 한 편이 쓰여 있었어요. 「바다 68」이라는 제목의 시인데요.
“시 한 편만 달라고 / 새벽부터 찾아왔는데 / 저녁이 오도록 / 시어時語 한 마리 보이질 않아 / 바다가 흘리고 간 / 조개껍질이라도 하나 주워 들고 돌아오면 / 그날 밤은 온통 꿈이 파랬다”
이 시집에는 ‘바다’라는 제목으로 67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요. 양광모 시인이 1년 동안 바닷가에 머물면서 쓴 시들이라고 해요. 읽는 동안 ‘마지막으로 바다에 간 게 언제였지?’ 싶더라고요. 다시 한 번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가 바닷가를 찾아갔을 때 느껴지는 고유한 감성 같은 게 있지 않나 싶은데요.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시집이었어요.
가장 좋았던 시는 「바닥」이었어요. 청취자 여러분께 읽어드릴게요.
“살아가는 동안 /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생각될 때 / 사람이 누워서 쉴 수 있는 곳은 천장이 아니라 바닥이라는 것을 / 잠시 쉬었다 / 다시 가라는 뜻이라는 것을 / 누군가의 바닥은 / 누군가의 천장일 수도 있다는 것을 / 인생이라는 것도 / 결국 바닥에 눕는 일로 끝난다는 것을 / 그래도 슬픔과 고통이 /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 이제야말로 진짜 바닥이라는 것을”
톨콩 님이 좋아하실 만한 시들도 실려 있는데요. ‘애주가’라는 제목으로 10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웃음). 양광모 시인님이 위트 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 「애주가 6」이라는 제목의 시에는 “술을 마시니 / 술병이 생겼네 / 팔아서 또 한 잔”이라고 쓰여 있어요.
너무 어려운 시집은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손이 잘 가지 않는데요. 이 시집은 가볍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단호박의 선택 -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최윤아 저 | 마음의숲
최윤아 저자는 기자로 활동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야근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한테 남는 게 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전업주부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회사를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전업주부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았던 거죠.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는 자신이 1년 간 전업주부로 살면서 경험한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회고하는 책이에요.
집에 전업주부가 있으면 그 사람이 가용 인원처럼 느껴지잖아요. ‘9 to 6’로 일하는 게 아니라면 그 시간 동안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면 당연하게 간병을 해야 되는 존재로 부각된다든가, 그런 불합리를 여러 모로 겪는 거죠.
『하우스와이프 2.0』 이라고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책이 있는데요. 여성들이 고학력을 가지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순간 전업주부가 된다는 거예요. 성공한 여성들이 왜 자꾸 하우스와이프로 돌아가는지를 분석한 책인데요. 최윤아 저자도 『하우스와이프 2.0』 을 보면서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자신이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 사회적인 모순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책 속의 내용을 하나 소개해 드리면, 전업주부는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한테 주어진 자본이 돈이 아니라 시간뿐인 거예요. 그래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걸 자꾸 시간으로 하는 거죠. 저자의 경우에도 직장에 다닐 때는 씻은 파를 샀대요.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까 한 단에 1500원 하는 흙 묻는 대파를 사서 다듬었다는 거죠.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이 책은 전업주부와 일을 고민하는 분들, 지금 전업주부의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이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iuiu22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