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을 때 싫다고 말하고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그러기는 어렵다. 그래서 최현정 작가는 자신을 대신해서 “싫어도 좋아해야 하고, 울고 싶어도 웃어야 하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NO!”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엉뚱한 생각과 낭만적인 상상을 즐기는 『빨강머리 앤』 을 오마주해 캐릭터 이름을 ‘빨강머리N’이라고 지었다.
저자는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 현실에서 느낀 삶의 애환을 ‘웃프(‘웃기다’와 ‘슬프다’가 합쳐진 신조어)’게 풀어낸다. 매일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빨강머리N’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최근에는 두 번째 책 『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 를 내고 전시도 했다. 이쯤 되면 더 욕심 낼 만도 한데, 저자에게는 책임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전작에 비해 한 뼘 더 어른에 가까워진 『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 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빨강머리N으로 두 번째 책입니다. 책에 담긴 그림으로 전시가 열리고, 큰 아트웍이 제작되기도 했어요. 빨강머리N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빨강머리N을 그려 SNS에 올리고, 반응이 좋아 두번째 책까지 나왔습니다. 가시적인 결과물들이 눈 앞에 보이니 뭔가 제게 큰 변화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주변 사람들도 조금 있는데요. 사실, 빨강머리N 전과 후로 나누어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정신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는 점 외에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사실은 그게 가장 큰 것 같기도 하지만요. 작업을 시작했던 동기 자체가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데, 어디든 토해내고 싶다’였던 터라, 이 작업들을 하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많이 해소 되었어요. 빨강머리 N에게 제가 참 고맙습니다.
『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 라는 제목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사는 얘기를 나누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글에서는 말해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책을 엮을 때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전작 『빨강머리N』 은 위트와 유머 위주였습니다. 재미있는 콘텐츠 자체로서도 의미 있고, 독자 분들도 그 점을 좋아해 주셨는데, 사실 제 입장에선 살짝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어요. 작가인 저는 심각한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표현 방식이 웃기다 보니 독자 분들이 그냥 하하하 웃고 넘기시더라고요. 그게 조금 아쉬워서 두 번째 책 『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 에서는 조금은 진지해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빨강머리N의 중점 이야기가 ‘힘들고 거친 삶’에 관한 이야기인데, 너무 진지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제 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달하고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바람에 텍스트가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책에서 어른을 “늦어버린 적성 찾기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존재들”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최근, 자신이 어른스럽거나 아이 같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조금씩 제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긴 합니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물론 그만 둘 수도 있는 일도 나 자신과 가족들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에 움직이게 됩니다. 제 아버지도 그러셨을 테고요.
최근에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쇼트트랙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 서른 중반에 쇼트트랙 선수가 되겠다니, 허무맹랑한 이야기죠. 만약 제게 아무런 현실적인 걱정이 없다면 나이는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겁니다. 당장 스케이트를 사러 갈 테죠. 하지만 저는 어른이니까,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가늠하며 오늘도 회사에 갑니다.
책에서 ‘안녕하세요?’는 진심으로 상대의 안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렇다면 ‘안녕하세요?’를 대신하거나 보완하는 나만의 인사말이 있나요?
그 말을 대체할 다른 인사말은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안녕하세요’가 ‘반드시 해야 할 형식적인 인사’가 필요할 때 외에는 잘 나오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면서 입모양으로만 ‘안녕하세요’를 말합니다.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으니 물어보는 느낌이 없어 마음이 편합니다. …네. 좀 이상하긴 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회사를 다니며 그림을 그리시죠. 어떤 계기로 빨강머리 N을 시작하셨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피폐해졌어요. 도저히 하루도 더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경이었고, 고통은 ‘내 정신력이 약한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자책감으로 이어졌죠. 결국 저 자신과의 정신력 싸움에서 패하고 회사를 쉬게 됩니다. 3달 정도 천장만 바라보며 잠만 자고, 하루에 한 끼만 먹었어요. 식욕마저 없었거든요. 깨어 있을 때엔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계속 생각났어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그래서 ‘마이너스한 감정들을 해소할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가 집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고, 그림 그리기 밖에 없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두 가지를 병행해온 방법 혹은 태도가 궁금합니다.
나름 딱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어쨌든 회사는 제게 월급을 주는 곳이니, 월급 루팡을 하지 않기 위해 회사에선 회사 일만 합니다. 일하는 동안은 제 컨텐츠 제작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야근이 없을 때, 그리고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만 작업을 합니다. 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제 개인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하고 있어요. 남들이 연애 하고 결혼해서 애를 보 듯이, ‘나는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했으니 그 시간에 이걸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생각이 ‘회사 일’과 ‘제 일’의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어요.
‘회사원의 삶’ 말고도 ‘나란 사람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스윙댄스를 배우기로 결심하셨다고요. 잘 지켜졌는지, 아니라면 퇴근 후 어떤 활동으로 ‘진짜 나’를 찾아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 결심, 지켰을 리가… 퇴근 후 딱히 다른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빨강머리N 작업을 제외하고요. 하지만 이 작업이 ‘나를 찾아가는’ 일이긴 하니까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사람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한가 봐요. 제가 저 스스로를 위해서 시작한 작업인데, 많은 분들이 제 그림을 보며 위로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씀들은 또 제게로 돌아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위로의 선순환이랄까요. 여전히 ‘좋아요’ 눌러주시고, 책 구매해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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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최현정 저 | 마음의숲
익살스러운 일러스트와 촌철살인으로 청년들의 현실과 사회를 일갈했다면 이번에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대단히 보편적인 내밀한 이야기가 한층 더 깊은 시선과 감성으로 펼쳐진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