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질문을 던지는 희극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극이자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준대로 받은대로>가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다. ‘Measure for Meeasure’라는 원제를 갖고 있는 이번 작품은 ‘자에는 자에로’, ‘법에는 법으로’, ‘말은 말로 되는 되로’ 등 다양한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준대로 받은대로>를 문제작이라 일컫는 이유는 희극과 비극, 그 어느 범주로도 묶을 수 없는 까닭이다. 연출가 오경택은 “희극의 외형을 쓴 채 비극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고전 작품 속에서 동시대성을 발견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날카롭고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빈(비엔나)의 통치자인 공작은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대리인으로 앤젤로를 지목한다. 앤젤로는 원칙주의자이자 금욕주의자로 알려진 인물로, 공작은 그를 통해 국가의 부패와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력한 권한을 위임 받은 앤젤로는 잠들어 있던 법을 깨워 엄격하게 집행해 나간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나 오랫동안 적용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에 따라 혼인을 앞두고 연인과 관계를 맺은 클로디오가 사형을 선고 받는다.
클로디오의 여동생인 수녀 이사벨라는 앤젤로를 찾아가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간청한다. 그녀를 보며 욕정을 느낀 앤젤로는 자신과 잠자리를 한다면 오빠를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자신의 순결과 오빠의 목숨,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사벨라의 앞에 공작이 나타난다. 신부로 위장한 그는 빈에 머물면서 모든 과정을 지켜봐 왔다. 클로디오와 이사벨라 남매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진 후 드러난 앤젤로의 이중성을 목격하게 됐다. 공작은 이사벨라에게 묘안을 제시하고, 이야기는 공작이 연출한 한 편의 연극처럼 흘러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항할 수 있는가
<준대로 받은대로>의 원제인 ‘Measure for Measure’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함부로 남을 비판하거나 단죄하면 그대로 되갚음을 당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과응보라는 명확한 주제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해석이 분분한 작품이다. 통치자의 권한뿐 아니라 의무까지 위임한 공작, 그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듯 일방적으로 맺어버린 이야기의 결말은 다양한 해석을 불러왔다.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해 모든 혼란을 불식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공작이 한 일이라고는 두 쌍의 연인에게 결혼을 ‘명령’하고 자신 또한 이사벨라에게 청혼한 것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희극이 그러하듯 <준대로 받은대로> 역시 결혼으로 막을 내리면서 해피엔딩을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 안에서의 결혼은 거스를 수 없는 절대 권력자의 요구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은 침묵으로써 이에 항변한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반응은 오늘의 우리를 비춰 보인다. 오경택 연출가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러한 폭력 앞에 약자들이 제대로 소리 내고 저항할 수 있는 기제가 충분히 있는가” 묻는다.
<준대로 받은대로>의 이야기는 독특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이중으로 이뤄진 회전무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이 투영된 것이면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정의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그 위에 선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시대정신과 정의에 대해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의 굵직한 주제부터 자유와 통제, 욕망, 자비 등 다양한 화두를 곱씹게 된다. 작품은 오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