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전하는 진심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잔잔한 통기타 선율 위로 들려오는 서정적인 노랫말은 가을 밤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극대화 시켜준다. 故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가을과 어울리는 노래, 옛 청춘을 떠올리는 노래들을 라이브로 연주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 멤버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그들이 함께 불렀던 주옥 같은 노래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1988년 여름, 오직 노래밖에 모르는 패기 넘치는 20대 청년 5명은 작은 연습실에서 ‘동물원’이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보컬 김광석, 작곡 보컬 김창기, 건반 박기영, 기타 유준열, 드럼 박경찬으로 구성된 다섯 청년들은 두려울 것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청춘의 한 순간들을 함께 보낸다.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진 노래를 데모 테이프에 녹음해 세상에 발표하고, 그들의 노래는 곧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우정도, 식을 것 같지 않던 열정도 세월 앞에 조금씩 바래져 간다. 노래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 다섯 사람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된다. 평생 노래를 부르며 상업가수로 활동 하길 원했던 김광석과 달리 다른 멤버들은 상업가수로의 활동보다는 또 다른 꿈이 있었고 이러한 갈등 끝에 결국 다섯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그 과정들을 과거 회상 방식으로 그려나간다. 김광석이 죽고 나서 수 년이 흐른 후, 그의 기일에 연습실을 찾으며 추억에 젖는 중년의 김창기 옆에 여전히 파릇파릇한 청춘의 모습을 간직한 김광석이 나타난다.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에 있는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함께 그렸던 추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어간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오랜만에 만나도 술 한잔에 긴 세월의 공백을 메꿀 수 있고, 말 없이 등만 두드려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편하고 오래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전국민을 추억 여행하게 만든 “응답하라” 시리즈 처럼, 복고 냄새를 물신 풍기는 투박하고 수수한 작품 덕분에 관객들은 쉽게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사실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여름 동물원> 역시 스토리는 다소 부실하다. 갈등구조는 급작스럽게 전개되고, 다소 맥없이 끝나버린다. 허나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인 가을밤, 김광석의 노래로 2시간을 빈틈없이 채워주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한 자 한 자 진심을 꾹 눌러 담은 가사로 써 내려간 故김광석의 노래를 마음 껏 들으며 가을의 분위기에 취하게 해주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내년 1월 7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